재벌 면세점 ‘리베이트 문건’ 단독입수

 

재벌 면세점이 여행사에 지급하는 ‘폭탄급 리베이트’의 실체가 공개됐다. 더스쿠프가 국회 기획재정위 윤호중(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로부터 단독입수한 롯데ㆍ신라면세점의 내부문건에는 재벌 면세점의 리베이트 규모, 지급기준과 방법 등이 낱낱이 기록돼 있다. 내부문건에 따르면 롯데면세점은 최근 ‘여행사 매출왕 프로모션’을 진행하면서 총 2억원이 넘는 상금을 내걸었다. 신라면세점은 여행사에 ‘2중 구조의 리베이트’를 지급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재벌 면세점의 탐욕스러운 ‘머니게임’을 살펴봤다.

 

올 4월, 국내에 ‘72시간 무無비자 환승공항’이 생겼다. 중부권 거점에 있는 ‘청주국제공항(이하 청주공항)’이었다.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 등 외국인 관광객을 유인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복안에서였다. 전략은 통했다. 청주공항을 ‘관문關門’으로 삼은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어났다. 오제세(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청주공항의 입ㆍ출항자는 2011년 7만5169명, 7만4553명에서 지난 9월말 18만9363명, 18만6355명으로 증가했다. 한국공항공사 관계자는 “청주공항의 무비자 체류시간이 지난 9월 72시간에서 120시간으로 확대돼 중국관광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오제세 의원도 “외국인 관광객이 충북지역에서 장기체류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싹쓸이 영업’, 리베이트의 힘

그러나 현실은 ‘장밋빛 전망’을 짓밟고 있다. 청주공항의 문은 활짝 열렸지만 지역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기대치를 밑돈다. 대표적 사례는 청주공항에서 15분 거리(자동차 기준)에 있는 ‘중원면세점’의 실적부진이다. 이 면세점은 연 매출이 30억원에 불과하다. 월 매출로 환산하면 2억5000만원가량이다. 그렇다고 청주공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관광객이 지갑을 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청주공항에 인도引渡되는 재벌 면세점의 물품은 연 400억~500억원어치다. 청주공항으로 입국한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 등지의 재벌 면세점에서 쇼핑을 즐긴 뒤 다시 청주공항을 통해 출국했다는 방증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윤호중(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리베이트’를 그 원인으로 꼽았다. “재벌 면세점이 과도한 리베이트를 여행사에 제공, 지역공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관광객을 서울로 실어 나르고 있다. 이런 ‘싹쓸이 영업’ 때문에 지방ㆍ중소면세업체는 실적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지역공항 통해 입국→여행사가 제공한 버스 타고 서울 시내로 이동→재벌 면세점에서 물품 구입→다시 청주공항으로 이동→출국’이라는 악순환의 복판에 리베이트가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재벌 면세점이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여행사(여행가이드)에 뿌리는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 면세점이 2009~2014년 8월 외국인 관광객을 데려오는 조건으로 여행사와 여행가이드에게 지급한 리베이트는 1조1655억원에 달한다. 그중 83.8%(9768억원)를 롯데면세점(5510억원)과 신라면세점(4258억원)이 지급했다. 더 큰 문제는 리베이트 규모가 해마다 커진다는 점이다. 2009년 1010억원에서 2012년 2201억원으로 117% 늘어났을 정도다. 특히 올 1~8월 리베이트(누적)는 3046억원으로, 지난해 2966억원을 8개월 만에 껑충 뛰어넘었다.

관세청으로부터 이 자료를 입수한 홍종학(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재벌 면세점 업체들이 외국인(특히 중국) 단체관광객을 자기 면세점으로 끌어오기 위해 머니게임을 펼치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풍부하지 않은 중소 면세업체는 설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재벌 면세업 업체들은 발끈한다. ‘법에 근거해 지급하는 리베이트인데, 뭐가 문제냐’는 거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면세점 업체가 여행사와 여행가이드에게 지급하는 알선수수료(리베이트)의 근거는 관광진흥법 제38조, (구)관광사업법 제2조제2호에 있다”며 “불법행위가 절대 아니다”고 반박했다.
 

▲ 신라면세점은 여행사에 2중 리베이트를 제공해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일 계획을 세웠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하지만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참고: 커버스토리 파트1]. 관광진흥법 제38조는 관광종사원의 자격을 정의한 조문으로 별 의미가 없다. (구)관광사업법 제2조제2호는 여행알선업의 정의를 규정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 수수료를 받고 아래와 같은 행위를 영위하는 업業 … 가. 여행자를 위해 운송ㆍ숙박 기타 여행에 부수되는 시설 이용을 알선하거나 그 시설을 경영하는 자와 이용에 관한 계약체결을 대리하는 행위, … 다. 여행자를 위해 안내 등 여행의 편의를 제공하는 행위….” 이 법에 따르면 리베이트의 법적 근거는 분명히 있다. 그런데 (구)관광사업법은 1986년 ‘관광진흥법’으로 전면개정됐고, 그 과정에서 ‘알선수수료’를 인정한 조항이 빠졌다.

“리베이트 법적 근거 없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사라진 구법舊法을 근거로 리베이트의 합법성을 운운하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고 꼬집었다. 윤호중 의원은 “보세판매장ㆍ지정면세점ㆍ외국인전용관광기념품판매업 등 사전면세점과 외국인관광객 면세판매장과 같은 사후면세점이 (구)관광사업법 제2조제2호의 대상이 아니라는 문체부의 유권해석을 받았다”며 “리베이트의 법적 근거가 있다는 재벌 면세점의 주장은 거짓”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백번 양보해 리베이트가 ‘기업간 계약의 산물(A면세점이 B여행사에 ○○퍼센트의 수수료를 준다는 계약)’이라고 해도 문제의 소지는 있다. 그게 지나치면 공정거래를 훼손할 공산이 커서다. 계약을 체결했든 그렇지 않든 리베이트는 ‘과하냐 그렇지 않으냐’를 두고 따져야 부가가치가 있다. 리베이트의 상한선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법무법인 정도의 양창영 변호사는 “재벌 면세점의 과도한 리베이트가 공정행위에 저촉될 순 있지만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위법성을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매출 혹은 구매객단가 등으로 리베이트 지급의 명확한 기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호중 의원도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리베이트가 필요하다면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과하지 않은 적당한 선을 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재벌 면세점은 얼마나 많은 리베이트를 여행사에 지급하고 있는 걸까. 더스쿠프가 윤호중 의원실로부터 ‘폭탄급 리베이트’의 실체를 엿볼 수 있는 재벌 면세점의 내부문건을 단독입수했다. 이 문건에는 재벌 면세점이 여행사에 주는 리베이트 규모, 지급기준과 방법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윤 의원은 “내부문건을 통해 재벌 면세점의 무차별 리베이트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롯데면세점 매출왕 프로모션=이번에 입수한 ‘월드타워점 OPEN 기념 프로모션’이라는 제목의 문건은 10월 13일 롯데면세점 중국동남아판촉팀이 중국 인바운드(inboundㆍ외국인 상대 여행사업) 여행사들에 배포한 것이다[※ 참고: 롯데면세점 리베이트 표]. 1989년 1월 롯데면세점 잠실점으로 돛을 올린 ‘월드타워점’은 올 10월 16일 제2롯데월드에서 이름을 바꿔 오픈했다.

문건에 따르면 롯데면세점은 10월 16일(오픈일)부터 12월 31일까지 77일 동안 월드타워점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여행사 5곳을 선정, 순위별로 리베이트를 현금으로 지급한다. 1등은 1억원, 2등은 5000만원, 5등은 1000만원 등으로, 내년 1월 여행사 인센티브에 반영할 예정이다. 이는 ‘월드타워점 오픈 프로모션’이 기존 리베이트 제도와 별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추가 리베이트 행사라는 거다. 롯데면세점은 여행사에 통상 7~8%의 리베이트를 준다.

여행사만이 아니다. 여행가이드에게도 상당한 리베이트를 지급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본지가 입수한 ‘중국ㆍ동남아 여행사 가이드 인센티브 지급 안내’라는 문건을 보면, 롯데면세점은 2014년 8월 한달간 소공동점ㆍ잠실점ㆍ코엑스점 3개점을 합친 매출을 기준으로 여행가이드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할 계획을 세웠다. 매출 기준은 월 20만 달러, 15만 달러, 13만 달러, 10만 달러 등 19단계다. 여행가이드가 월 20만 달러를 올리면 1000만원(매출 대비 리베이트 4.88%ㆍ원달러 환율 2014년 8월 기준), 15만 달러는 800만원(5.21%), 13만 달러는 500만원(3.76%), 10만 달러는 420만원(4.10%)의 리베이트를 준다. 매출 하한선은 월 3000달러로, 리베이트는 15만원(4.88%)이다. 익명을 원한 중소 면세업체 관계자는 “여행사와 여행가이드가 재벌 면세점에 외국인 관광객을 데려가기 위해 그토록 애쓴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며 한탄했다.

신라면세점의 2중 리베이트=국내 면세점 업계 2위 신라면세점도 ‘머니게임’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본지가 입수한 ‘신라면세점 여행사 인센티브 안내문(이하 안내문)’은 롯데면세점과 마찬가지로 중국 인바운드 여행사에 발송된 것이다. 2장으로 구성된 안내문에는 구매객별ㆍ매출별 리베이트 내용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대상점은 신라면세점 서울점, 기간은 2014년 10월 1일부터다. 종료일은 명시돼 있지 않다.

 

 

안내문 첫장에 따르면 월 구매객이 50명 이상이면 ‘폭탄급 리베이트’를 지급한다. 면세점에서 물품을 구입한 여행객 수만큼 리베이트를 제공하는데, 시쳇말로 ‘두頭당 셈법’이 적용된다. 가령 A여행사가 유치한 요우커 50명이 신라면세점(서울점)에서 총 7만 달러(구매객 평균 1400달러)어치의 물품을 구입했다고 치자. 이 경우, 신라면세점은 1명당 8만4000원의 리베이트를 지급한다. 여행사로선 420만원(8만4000원×50명)의 리베이트를 챙기는 셈이다. 리베이트 비율(구매총액 대비 리베이트)은 5.65%다.

 

2중 구조 리베이트에 중소 면세업체 고사

이런 방정식을 통해 요우커 50명이 1인당 1300달러 이상을 지출하면 1명당 7만8000원, 총 390만원(7만8000원×50명ㆍ5.66%), 1인당 1200달러 이상일 땐 7만2000원, 총 360만원(7만2000원×50명ㆍ5.66%)의 리베이트를 제공한다. 당연히 구매객이 늘어날수록 더 많은 리베이트가 지급된다. 평균 리베이트 비율은 6.30%다[※ 신라면세점 리베이트 표]. 여행사들이 외국인 관광객을 재벌 면세점으로 실어 나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매객 수가 50명 미만이라도 리베이트를 지급한다. 안내문 둘째장은 매출별 일괄리베이트의 방법을 정리해 놨다. 월 매출을 25만 달러, 15만 달러, 10만 달러 등 7개로 분류, 이를 기준으로 (구매객 수가 50명 미만일 경우엔) 차등적 리베이트를 제공한다. 월 25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면 리베이트는 1000만원(매출 대비 리베이트 3.77%ㆍ원달러 환율 2014년 10월 기준), 20만 달러는 800만원(3.77%), 15만 달러는 525만원(3.30%) 등이다. 월 매출 3만 달러가 하한선인데, 리베이트는 90만원(2.83%)이다. 평균 리베이트 비율은 3.23%로, 매출이 많을수록 상승한다.

그럼에도 재벌 면세점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프랑스 루이뷔통, 스위스 스와치 등 글로벌 리테일 업체들도 리베이트를 지급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익명을 원한 중소 면세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반박했다. “글로벌 리테일 업체가 여행사에 천문학적인 리베이트를 제공해 롯데ㆍ신라면세점을 찾는 고객이 부쩍 줄어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재벌 면세점 업체들이 앉은 자리에서 당하고만 있겠는가. 더 큰돈을 시장에 풀든가 아니면 외국계 기업의 머니게임을 언론을 활용해 비판하고 나설 게다.” 그렇다. 지나친 리베이트는 불공정거래의 원흉이다. 돈을 이기는 장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리베이트를 합리적으로 규제할 방도를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윤찬ㆍ강서구 기자 chan487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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