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거래금지법과 저축성 보험

▲ 차명거래금지법이 시행되자 부자들은 은행예금을 빼 보험상품으로 갈아탔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차명거래금지법이 시행됐다. 간단히 말해 다른 사람 명의의 계좌를 빌려 금융거래를 하지 말라는 얘기다. 부자들은 난리가 났다. 세금을 왕창 떼일 위기에 처해서다. 하지만 안전장치가 있다. 보험상품이다. 보험은 불법 차명거래 금지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명 ‘차명거래금지법’이라 불리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11월 29일부터 시행됐다. 부정한 방법으로 획득한 재산을 은닉 혹은 세탁하거나 세금을 탈루하는 등의 불법행위가 일어나는 걸 막기 위한 것으로 차명 거래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이다. 대부분 월급쟁이인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 이 법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우리 아이 세뱃돈 20만원을 내 명의로 된 통장에 넣어 뒀든, 내 용돈을 아이 통장에 적금으로 넣어 뒀든 차명이 불법이라면 그냥 제대로 된 명의의 통장을 만들어 옮겨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다만 옮기는 게 귀찮을 뿐이다.

부자들의 상황은 다르다. 이 법 때문에 난리가 날 수밖에 없다. 거액의 세금을 피할 길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 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다른 사람의 명의로 금융거래를 했다고 해도 ‘합의에 의한 차명’은 허용해왔다. 차명계좌가 법적문제에 휘말리면 기본적인 세금과 가산세만 추징할 뿐 형사처벌 등의 제재도 없었다. 그런데 차명거래금지법은 차명거래 자체를 아예 금지하고, 형사처벌 조항까지 뒀다. 가족 간 합의된 차명거래 역시 금지된다. 금융소득종합과세 등에 대비하기 위해 배우자나 자녀 명의로 거액의 예금을 해온 상당수의 자산가에게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개정된 법은 불법 자금을 숨기거나 세탁하기 위해 차명계좌를 만들 경우, 계좌 실소유주와 계좌 명의자 모두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자 올 6월 차명거래금지법이 입법예고된 이후 많은 자산가들은 은행예금을 빼내 비과세 저축상품이나 다른 금융상품으로 갈아타고 있다. 지난 6~10월 잔액 1억원 이상의 은행 개인계좌 인출금액 추이를 보면 총 484조5467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인출금액 395조6581억원에 비해 18.4%나 많은 금액이다. 은행에서 빠져나간 자금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중 일부는 보험상품으로 흘러들었다. 올해 8월부터 10월까지 비과세 저축성보험 첫회 보험료가 2651억원에서 3526억원으로 24.8% 늘어난 것만 봐도 그렇다. 자금이 은행예금에서 저축성 보험과 같은 비과세 상품으로 이동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보험상품은 불법 차명거래 금지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개정법은 불법 차명거래 금지 대상 상품을 ‘계좌’를 기반으로 제한한다. ‘계약’ 기반 상품인 보험이 차명거래 금지 목록에서 빠진 이유다. 보험상품을 차명으로 가입해도 개정법의 적용대상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뿐만이 아니다. 보험은 10년을 유지할 경우 비과세 혜택이 있고,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다(은행예금 금리가 2%대인 것에 비해 저축성 보험은 3%대 후반). 돈을 돌려놓을 창구를 찾던 자산가들이 보험을 선호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차명이었다는 게 밝혀지면 증여한도를 초과했을 경우, 증여세와 미신고에 따른 가산세는 피할 수 없다.

자산가들은 이미 보험으로 이동

중요한 건 부자들은 어떻게든 세금은 덜 내고, 자산은 더 키워 ‘내 재산’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는 거다. 환경이나 제도 변화에도 굉장히 민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차명거래금지법이 시행되든 전혀 상관하지 않고 살아가는 서민들과 다르다는 얘기다. 문제는 부족한 재산이라도 지켜야 하는 서민들은 그런 정보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거다. 말하자면 돈을 모으겠다며 무작정 은행에 예금할 게 아니라 뭔가 대책을 찾아 자산을 안전하게 키울 방법을 찾아야 할 이들은 부자가 아닌 서민이라는 얘기다. 차명거래금지법이 아무 상관없이 느껴지더라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재무상담을 하면서 느끼는 답답함 혹은 안타까움도 이런 것들이다. 노후 준비 등을 위해 저축을 해야 하는 평범한 이웃들은 ‘어떻게 하다 보면 다 잘 되겠지’라는 막연한 낙관이나 ‘지금 먹고살기도 힘든데 노후준비나 저축은 무슨…’이라는 비관에 젖어 있다. 반면 충분한 자산을 이미 가지고 있는 자산가들은 오히려 노후준비에 철저할 뿐만 아니라 세금을 줄이기 위한 고민도 끊임없이 하고 있다. 관심을 갖고 준비를 하지 않으면 낭패를 당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은 정작 관심이 없거나 포기하고 있는데, 스트레스 받으면서 준비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은 열심히 준비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보험이라 하면 얘기도 듣고 싶지 않다며 귀를 막아버리는 평범한 직장인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실 보험사의 저축보험ㆍ연금보험ㆍ일시납 즉시 연금보험ㆍ변액보험 등은 유용한 자산증식 수단이자 절세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10년 비과세 기간만 충족하면 죄다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도 누릴 수 있어서다. 고액 자산가들이 보험상품에 눈을 돌리고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보험상품은 고액계약에 대해서는 할인 또는 추가 이율의 혜택 등도 있다. 물론 보험상품의 비과세 기간은 꾸준히 늘고 있다. 1994년엔 3년만 유지하면 이자ㆍ투자 수익이 비과세였지만 현재는 10년을 유지해야 한다. 그 기간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보험상품이 주는 혜택은 여전히 누릴 만하다.

비과세 혜택, 서민이 누려야

또 우리나라의 이자소득세율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우리나라의 이자소득세는 현재 15.4%로 주요 선진국 평균인 40%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재산을 증식할 수 있는 방법이 버젓이 있는데, 낮은 금리를 탓하며 예금을 할 이유가 있을지 의문이다. 비과세 혜택은 서민의 노후 준비나 목돈 마련 때문에 생겨난 제도다. 당연히 서민들이 이용하는 게 맞다. 하지만 실제 혜택은 부유한 자산가들이 누리고 있다. 스스로 힘없고 배경도 없는 서민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부터라도 혜택을 찾아 누려보자. 그럼 분명히 손해 보지 않는 방법이 나온다. 
더스쿠프| 곽상인 ING생명 재무컨설턴트 marx9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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