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고민 ‘디플레이션’

▲ 동유럽 국가들이 디플레이션에 빠지고 있다. 경기회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일부 유럽국가의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경제 회복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디플레이션이 소비 감소와 부채 위기를 심화시킬 공산이 커서다. 부족한 소비와 투자수요가 저물가의 원인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일본식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어서다. 동유럽의 디플레이션 우려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디플레이션이라는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유로존은 1년 이상 0%대의 낮은 물가상승률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 동유럽 국가들은 이미 디플레이션에 들어선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폴란드의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마이너스 0.4%로 하락폭을 계속해서 확대하고 있다. 헝가리는 올해 10월까지 총 다섯번의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체코는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환율 개입에 따라 디플레이션에 진입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7%의 낮은 수준을 기록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글로벌 물가상승률이 점차 낮아지면서 디플레이션이 경기회복을 막는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소비감소와 부채 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 회복의 위험 요소로 작용한다. 선진국보다 먼저 디플레이션에 진입한 동유럽 국가를 통해 디플레이션이 경기 회복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지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선 현재 발생하고 있는 디플레이션의 원인을 살펴봐야 한다. 디플레이션을 유발한 원인에 따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의 디플레이션은 미래에도 가격하락이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됐다기보다는 비용감소의 성격이 크다. 개선되고 있는 고용시장을 바탕으로 소비와 투자 수요가 확대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경기회복에 호재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디플레이션에 따른 실질 부채상환 부담 상승은 일부 국가에서 내수회복의 걸림돌이 될 공산이 크다. 다행인 점은 이런 디플레이션이 글로벌 경기회복을 위협할 만한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저물가가 지속되면 될수록 계속해서 물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될 가능성이 커진다. 물가가 계속해서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면, 현재 소비보다 미래소비가 더 싸기 때문에 경제주체들이 소비를 미루게 되는 이유가 된다. 소비지연으로 현재 수요가 감소하면 기업들은 더 많이 생산할 필요가 없어지고 경제 규모는 축소된다. 주택버블 붕괴 이후 일본이 경험했던 디플레이션 악순환이 여기에 해당한다. 부족한 소비와 투자 수요가 저물가의 원인이라면 일본식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저물가의 원인은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가격 하락의 영향이 크다. 수요 부족보다는 공급 측면에서 비용 절감 효과가 더 크다는 애기다.

디플레이션에 진입한 동유럽 국가

특히 러시아가 유럽으로부터 음식료품을 수입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후 수출용 식료품이 내수시장에 풀리면서 음식료품의 가격 하락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여기엔 정부 정책도 한몫했다. 헝가리의 경우 정부가 여러 차례 전기ㆍ가스 등 유틸리티 가격을 인하해 지난해 1월부터 물가상승률이 둔화됐다. 또한 폴란드 정부가 방과 후 교육비를 인하한 것도 물가상승률을 낮추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와 같이 낮은 비용을 바탕으로 한 수요 회복은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될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요 회복에 따라 기업들도 제품 가격을 인상할 수 있는 여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미 디플레이션에 들어섰지만 동유럽 국가들의 소비 회복을 둘러싼 환경은 긍정적이다. 실업자 수가 감소폭을 확대해 나가면서 가계 수입은 개선되고 있다. 소비자 심리도 개선되고 있다. 소비자 심리는 글로벌 경기 회복세가 강했던 2010년 유럽 재정위기 직전 수준까지 상승했다. 향후 경기 기대가 긍정적인 상황에서의 저물가는 물가 하락기대보다는 가계의 실질구매력을 높이는 역할을 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비 증가로 재고가 소진되고 기업들의 생산 증가 필요성이 커지면서 설비투자도 증가할 전망이다. 실제로 동유럽 기업들의 재고수준은 하락하고 있거나 이미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디플레이션의 또 다른 위험은 부채 상환 부담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물가가 하락할수록 채무자의 실질 부채상환 부담은 증가한다. 하지만 동유럽 국가들은 다른 주요 선진ㆍ이머징 국가에 비해 가계와 비금융 기업들의 부채 비율이 높지 않다.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는 폴란드가 41.1%로 가장 낮다. 헝가리와 체코도 각각 61.6%, 64.7%로 매우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금융 기업의 부채도 평균 이하에 머물고 있다.

물가하락 비용 절감효과 더 커

민간부문의 부채 상환 부담이 크지 않기 때문에 실질 부채상환 부담 증가에 따른 디폴트와 금융위기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면 민간부문의 부채부담이 높은 다른 국가들이 디플레이션에 빠지게 됐을 때 위기가 발생하지는 않을지에 의문이 생긴다. 부채수준이 높으면서 금융위기 이후 디레버리징(Deleveragingㆍ부채 정리)이 이뤄지지 않은 국가들일수록 디플레이션은 가계 소비 여력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용 증가에 따른 가계소득 향상이 부채부담 증가분을 상쇄할 가능성도 크다. 이에 따라 부채부담 증가로 인해 가계 소비가 둔화된다는 주장은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가계 소득 대비 부채 비중이 높은 국가들이 전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을 전망이다. 위기 이후 은행들의 레버리지율 하락과 자산건전성 개선이 이뤄져서다. 디플레이션이 은행 위기로까지 이어질 파급력은 크지 않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 동유럽 국가들이 디플레이션을 경함하고 있지만 디플레이션이 불러올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의 디플레이션은 원자재를 수입ㆍ소비하는 대부분의 경제에는 경기회복에 있어 위협이라기보다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은주 대신증권 연구원 eunjoolee@dash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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