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맹점주 죽이는 가맹사업법

▲ 손실 때문에 가맹계약을 파기하고 싶어도 위약금이 무서워 영업을 계속하는 가맹점주들이 많다.[사진=뉴시스]
정부가 자영업 활성화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가맹점주들이 마음 놓고 가맹점을 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다. 가맹본부에 휘둘려 ‘독박’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가맹점주를 위해 지난해 개정된 가맹사업법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 지난해 정년퇴직 후 편의점을 시작한 A씨. ‘내 가게’라는 생각에 아르바이트도 쓰지 않고, 편의점 창고에서 1~2시간 쪽잠을 자며 장사를 했다. 하지만 경기 탓인지 매출은 계속 떨어졌고, 창업 2년 만에 수천만원의 손실을 봤다. 오랜 고민 끝에 A씨는 폐업을 결심했다. 하지만 가맹본부는 폐업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되레 수천만원에 이르는 위약금을 요구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문을 두드려 조정절차를 밟았지만, 결국 1200만원의 위약금을 내고 나서야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

# 3년 전 외국생활을 접고 귀국한 B씨는 지난해 모 백화점 푸드코트에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열었다. 예상보다 매출은 적었지만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기대감에 청결과 서비스를 개선하며 열심히 일했다. 그런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백화점 측의 공지가 날아왔다. 음식점 매출이 좋지 않다며 점포를 빼라는 거였다. 입점계약을 체결했지 않느냐며 따졌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입점계약은 백화점과 가맹본부가 맺었고, B씨는 가맹본부와 투자약정서를 맺은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A씨는 결국 1년 만에 보증금조차 돌려받지 못하고 매장을 철수해야 했다.

가맹본부만 보호하는 가맹사업법

불평등한 갑을甲乙 관계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된 건 지난해 초부터다. 남양유업 사태, 편의점주 자살 등이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이후 거의 모든 업종에서 불평등한 갑을 관계의 실상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그해 5월 ‘을’의 길목을 지키겠다며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가 출범했고, 같은 해 8월에는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사업법)’이 개정됐다. 법 개정을 통해 가맹본부가 가맹점주에게 정보공개서와 예상매출액 등을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했고, 편의점의 경우엔 24시간 영업을 강요할 수 없도록 개선했다. 겉만 보면 가맹점주들의 권리가 한결 나아진 듯하다. 그런데 가맹점주들은 여전히 ‘노예 계약’을 운운한다. 이 법에 허점이 있어서다.

먼저 가맹점주의 실질적 권리보호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장사가 잘 돼 흑자를 보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매출이 적어 적자가 발생하면 가맹점으로선 매장을 계속 유지하기 힘들다. 그러나 가맹점주는 가맹본부와의 협의를 통해 가맹계약 조건을 변경하거나 파기하기가 쉽지 않다. 가맹계약 당시 맺은 ‘약정기간과 위약금’에 관한 조항 때문이다. 일단 가맹사업법은 가맹본부의 손실에 대해서는 ‘과도한 위약금’ 청구가 아니라면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가맹본부가 일정액을 투자하는 만큼 가맹점에 일정기간 영업을 유지하도록 하거나 가맹점주가 약정기간을 어기면 일정한 위약금을 물리는 걸 타당하다고 판단한 거다.

반면 손실은 손실대로 보고 위약금은 위약금대로 물어야 하는 가맹점주를 위한 법적 보호 장치는 가맹사업법 어디에도 없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가맹사업법은 가맹본부가 우월적 지위를 행사해 가맹점주들과의 계약을 해지할 수 없도록 한 것이지 가맹점주의 계약해지를 돕는 법은 아니다”며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이런 위약금 조항이 가맹점주의 목줄을 쥐고 있다는 점이다. 이 조항 탓에 장사가 잘 안 돼도 계약을 파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정신청 유형(2012년 기준)을 보면, ‘가맹점사업자(가맹점주)의 가맹계약해지와 가맹금 반환 신청’은 총 609건의 조정신청 중 46.3%(282건)에 달했다. 현실에선 가맹점주들이 계약 파기를 좀 더 합리적으로 할 수 있도록 원하고 있는데, 관련법은 이런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셈이다.

물론 이 분쟁을 해결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법무법인 화우의 김철호 변호사(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법률자문)는 “‘부득이한 상황에서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상법 조항을 인용해 공정위가 조정에 나설 수 있다”며 “하지만 공정위 관계자들조차 관련 조항을 잘 몰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면 해결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기서도 ‘부득이한 상황’의 해석은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고, 가맹점주는 길고 긴 소송으로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가맹점주를 위한 가맹본부의 정보제공이 여전히 부실하다는 것도 문제다. 사실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간 불평등계약의 문제는 계약 당시에서부터 출발한다. 대부분의 가맹본부는 가맹점을 유치할 때 성공가능성과 수익률이 높다고 홍보하고, 자영업을 준비하는 이들은 대부분 관련 전문지식이 없다. 이러다 보니 계약서에 적힌 문구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도장을 찍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계약서 작성이 사업의 절반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 내용을 꼼꼼하게 따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가맹본부의 투명한 정보제공이 필수다. 개정된 가맹사업법에서 계약 14일 전에 가맹본부가 가맹점주에게 정보공개서와 함께 예상매출액(영업개시일부터 1년간)의 범위를 명시해 문서로 제출할 것을 의무화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이 문서는 법적 분쟁이 생겼을 때 가맹본부의 ‘허위과장’을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그런데 공정위는 이 조항을 시행령에서 뒤틀어버렸다. ‘가맹점이 100개 이상인 가맹본부’를 의무 적용 대상으로 규정해서다. 법 적용 대상을 협소하게 만들어 버린 셈이다. 프랜차이즈 가운데 가맹점이 100개를 넘는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공정위 관계자는 “영업을 해보기 전에는 누구도 예상치를 정확히 맞출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예상매출액 제출 조항 자체를 무력화시킨 거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을’을 대변하겠다는 을지로위원회조차 이 법의 재개정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으니 더 큰 문제다. 을지로위원회 관계자는 “가맹점주 측의 가맹계약 해지가 아직 보편적 사례라 하기엔 무리여서 이와 관련된 재개정 논의는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가맹점주의 ‘손톱 밑 가시’가 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신뢰에 의해 성립된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 일방이 무조건 깰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부득이한 사정’이 발생했을 때는 얘기가 다르다. 그리고 가맹점주에게 부득이한 상황은 지속적인 적자가 계속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결국 계약 당시 신중한 결정만이 가맹점주 스스로를 보호해주는 셈이다.

전문가들이 가맹점주들에게 제대로 된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최보선 가맹거래사협회 회장은 “불법적인 내용이 아니라면 통념상 모든 계약은 합법적이고 효력을 갖는다”며 “때문에 계약을 진행하기 전부터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보선 회장은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무료로 컨설팅을 해주기도 하고, 전문 가맹거래사는 약 20만원에 관련 자료를 꼼꼼히 검토해준다”며 “수천, 수억원의 위약금 소송에 휘말리느니 애초에 분쟁의 싹을 잘라내는 게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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