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일선 복귀한 김승연 한화 회장

▲ 경영 일선에 사실상 복귀한 김승연 회장. [사진=뉴시스]
재계 10위인 한화그룹 김승연(62) 회장이 최근 ‘사실상’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그 과정은 무척 조심스럽고 치밀하며 화려하다는 느낌을 준다. 강한 승부사 기질을 가진 그답다. 집행유예 상태인 점을 의식한 듯 삼성과의 2조원대 빅딜을 일선 복귀 최대 명분으로 삼았다. 이라크로 날아가 해외건설 현장을 격려하기도 했다. 내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긴 쉼표 끝에 재개된 그의 경영 활동이 과연 순항하게 될까.

지난 3일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그룹 사옥. 김승연 회장이 모처럼 기자들 앞에 섰다. 삼성과의 2조원대 대형 ‘빅딜’ 발표(11월 26일) 일주일 만이다. 기자들은 묻는다. 인수 소감은? “기쁘다.” 건강은? “괜찮다.” 삼성 계열사 직원들이 반발하고 있는데? “삼성에서 잘할 것으로 본다.” 앞으로의 계획은? “더 열심히 하겠다.” 얼굴에 웃음을 띤 채 한결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대형 빅딜로 한껏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간이기도 했다. 대중에게 ‘저 한화 김승연, 살아 있어요. 이제 뒤에선 그만 하고 앞에서 잘해 볼게요’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만 같았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간의 과정을 살펴보면 그 심정이 이해가 될 것도 같다. 검찰 불구속 기소(2011년 1월)→서울서부지법 법정구속(2012년 8월 16일)→서울고법 집행유예(5년) 판결(2014년 2월 11일)→금춘수 경영기획실장 등 측근 인사(11월 19일)→삼성과의 빅딜 발표(11월 26일)→사장단 인사(11월 28일)→장교동 사옥 출근 언론 대면(12월 3일)→이라크 건설 현장 방문(12월 7~9일). 특히 올 11~12월의 행보는 마치 시나리오가 있었던 것처럼 치밀하기조차 하다.

 
언론들은 경영복귀 신호탄을 쏜 거라며 복귀를 기정사실화했다. 사실 김 회장은 이번 말고도 8년 전인 2007년 3월, 자신의 2남(당시 23세)이 관련된 소위 ‘보복 폭행’ 사건에 연루돼 큰 곤욕을 치른 바 있다. 그해 9월 사태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1년 만인 2008년 8월 복귀한 전례가 있다. 특별사면을 통해서다. 그때는 가족 관련 파문이었고, 이번엔 회사 관련 송사였다.

오너 2세 경영자인 그는 33년 전인 1981년(29세) 회장 자리에 올랐다. 그동안 한화를 재계 10위권으로 키워냈다.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3~4년 동안의 시련은 전에 없이 혹독했다. 그는 회사에 수천억원의 손실을 떠넘긴 혐의로 지난 2011년 1월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됐다. 2012년 8월, 1심에서 징역 4년에 벌금 51억원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까지 됐다. 그 후 건강 악화로 구속집행정지를 받아 병원을 오가며 재판을 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응급침대에 실려 법정으로 향하는 그의 초췌한 모습이 일반인들에게 묘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지난 2월 서울고법(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ㆍ집행유예 5년ㆍ사회봉사 명령 300시간을 선고 받아 형이 확정됐다. 곧바로 ㈜한화ㆍ한화케미칼 등 7개 계열사 대표이사직에서 모두 물러났다. 경영에서 손을 떼고 치료에 전념했다. 지난 11월 25일 사회봉사 300시간을 채우고는 복귀 수순을 구체화했다. 바로 그다음 날인 11월 26일 한화는 삼성테크윈ㆍ삼성탈레스ㆍ삼성종합화학ㆍ삼성토탈 등 4개 회사를 인수하는 2조원대의 대형 ‘빅딜’을 발표하고 나선다. 집행유예 상태라 일선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김 회장이 후선에서 직접 챙기고 결정한 사안이었다. 어찌 보면 한화의 장래 명운命運이 걸린 중대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발표가 있던 날 재계는 IMF 위기 이후 업계가 자율적으로 한 최대의 빅딜이라며 흥분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치밀한 경영복귀 시나리오

김 회장의 경영 일선 복귀를 놓고도 해석이 분분하다. ‘사실상 복귀’라는 해석에서 ‘반쪽짜리 복귀’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그는 집행유예 중이라 공식적으로 대표이사직을 맡지 못한다. ‘대주주 오너’로서 상징적으로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등기임원이 될 수 없어 이사회 참여나 계약 체결 등의 법적 능력을 갖진 못한다는 얘기다. 한편에선 김 회장의 경영 복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 없다는 말도 한다. 빅딜 발표 때 한화 관계자도 “이미 (김 회장이) 중요한 결정을 직접 내리는 만큼 경영복귀 시기를 논하는 것과 관계없이 사실상 경영일선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너로서 무한 책임과 권한을 가진 만큼 전면에서 일하느냐, 후선에서 일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곱지 않은 여론도 큰 부담이다. 경제개혁연대는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물러 난지 1년도 안 돼 그룹기업의 주요 결정을 내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한화측도 자칫 역풍이 불까 봐 김 회장의 행보에 대해 조심스런 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김 회장이 기자들 앞에 처음 모습을 나타냈던 지난 3일에도 한화 관계자는 “김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것은 아니다”며 “회사 상황을 확인하고자 본사를 방문했을 뿐”이라며 꼬리를 내릴 정도였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김 회장이 전면적으로 경영에 나서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사면복권이 있어야 가능한데 지금 기조로 봐서는 기대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 회장의 일선 복귀를 계기로 한화가 ‘경영 대수술’에 나섰다는 인상마저 준다. 지난 몇 년간 오너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못해 실지失地가 많이 생겼다고 보는 듯하다. 게다가 국내외 경영환경도 예사롭지 않아 위기의식이 중첩된 것 같다. 미래 먹거리 확보가 급한 나머지 지난 몇달간 삼성과의 빅딜 물밑 협상에 혼신을 다했다는 후문이다. 이를 통해 석유화학ㆍ태양광ㆍ금융ㆍ방위산업 등 주력사업에 대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비주력사업 매각 등 추가 사업재편도 예고된 상황이다. 사장단 인사를 예년보다 몇달 앞당기는 등 김 회장이 채찍을 다시 든 느낌도 받는다.

얼핏 보면 그가 고초를 딛고 화려하게 경영 일선 복귀를 하는 것 같지만 그의 앞에는 난제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사면을 받지 못할 경우 상당 기간 ‘반쪽 회장’ 역할밖에 할 수 없다는 점이 먼저 지적된다. 그다음은 그의 건강 문제다. 그는 재판 기간 중 얻은 당뇨 합병증과 만성 폐질환, 우울증 등으로 서울대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법원 판결 후 건강상의 이유로 사회봉사 명령을 3개월 연기하기도 했다. 서울 외곽의 한 중증 장애인 재활시설에서 친환경 비누와 세제 포장을 했던 사회봉사 기간에도 지병으로 제법 고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빅딜 난제, 어떻게 풀지 주목

그래서인지 이번 빅딜과 사업재편 과정에서 자신의 2세 3형제(동관ㆍ동원ㆍ동선)에 대한 후계구도까지 염두에 뒀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올해를 계기로 아들 3형제 모두가 그룹에 들어와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자신이 29세에 회장직을 물려받았던 데다 건강까지 고려하면 31~25세인 아들 3형제에 대한 경영수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룹을 지탱하는 주요 사업들이 큰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도 걱정거리다. 빅딜 대상인 삼성테크윈 등 4개사 인수 자금 2조원 마련도 녹록지않아 보인다. 삼성 직원들의 반발과 서로 다른 문화도 극복 대상이다. 김 회장의 야심적 복귀작인 빅딜 성공 여부가 두고두고 그에 대한 족쇄로 변할 수도 있어 주목된다.
김은경 더스쿠프 객원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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