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 재벌가 후손 임원승진연한

▲ 재벌 3~4세가 임원으로 승진하는데는 고작 평균 4.3년이 소요됐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사무직 대졸 신입사원이 임원으로 승진하기까지 소요되는 연수는 평균 22.1년에 달한다. 게다가 신입사원 1000명 중 임원으로 승진하는 비율은 0.47%에 불과하다. 하지만 재벌 3~4세에게 이런 통계는 통하지 않았다. 그들이 임원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4.3년. 일반사원이 사원에서 대리로 승진할 때 그들은 ‘임원 배지’를 달았다는 얘기다.

“당신 내려!” 항공사 임원의 한마디에 출발을 위해 활주로로 향하던 항공기가 다시 게이트로 돌아갔다. 조현아 대한한공 부사장(당시 직함)이 기내 승무원 서비스에 불만을 품고 고함을 지르며 책임자를 항공기에서 내리게 했다. 이를 두고 대기업 오너를 포함한 사회 지도층의 ‘슈퍼 갑甲질’이 또 발생했다며 여론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 사건은 지난 5일(현지시간) 0시50분 미국 뉴욕 JFK 공항에서 발생했다. 뉴욕 공항에 인천으로 출발하는 KE860 항공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가던 중 갑자기 탑승구로 돌아가(램프 리턴) 사무장을 내려놓고 다시 출발했다.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한 승무원이 1등석에 타고 있던 조 부사장에게 ‘마카다미아 너츠’를 봉지째 건냈고 조 부사장이 이를 문제 삼았다. 조 부사장은 “왜 너츠를 봉지째 주느냐. 규정이 뭐냐”며 승무원을 질책했다. 고객의 의사를 물은 뒤 그릇에 담아 제공해야 하는데 봉지째 갖다 준 것이 규정에 어긋난 서비스란 얘기다. 조 부사장은 기내 서비스를 책임지는 사무장을 불러 서비스 매뉴얼을 확인해 보라고 요구했고 사무장이 태블릿PC에서 관련 규정을 즉시 찾지 못하자 고함을 지르며 비행기에서 내리도록 지시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사무장이 당황했는지 매뉴얼을 제대로 못 찾았다”며 “문제가 있다고 보고 사무장을 내리게 한 뒤 부사무장에게 직무를 대신 수행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항공기에 탐승했던 승객 250명은 도착 시간이 예정보다 11분 늦어지는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조 부사장의 ‘땅콩리턴’ 사건의 발단이 된 승무원의 '마카다미아 너츠' 서비스가 대한항공의 1등석 객실 서비스 매뉴얼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승무원의 잘못이 아니라 조 부사장의 착각이 만든 촌극이라는 얘기다. 매뉴얼에는 승무원이 음료와 함께 ‘마카다미아 너츠’를 포장 상태로 준비해 보여준 다음 승객이 원할 경우 작은 그릇에 담아 제공하게 돼 있었다. 게다가 대한항공이 이번 사건의 유출자를 찾기 위해 승무원들의 메신저를 검열하고 관리자들에게는 일괄 메시지를 보내 언론 대응 방향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큰 비난을 받았다. 이번 사건으로 조 부사장을 비롯한 대한항공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임원승진까지 평균 4.3년

조 부사장은 지난 9일 대한항공 기내 서비스와 호텔사업 부문 총괄 부사장 보직에서 물러났지만 ‘무늬만 사퇴’라는 비난을 받았고 10일 부사장직에서 사퇴했다. 대한항공은 참여연대가 조 부사장이 월권을 행사해 법적 근거 없이 항공기를 되돌렸다 고발한지 하루 만에 압수수색을 당했다. ‘램프리턴’은 항공기 정비나 주인이 없는 짐, 승객의 안전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취하는 조치다.

조 부사장의 갑甲질은 큰 비난을 받고 있다. 조 부사장은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재벌 3세’다. 이른바 ‘현대판 귀족’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그에겐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는 게 익숙한 일일 것이다. 쉽게 말해 아래를 내려다볼 줄 모른다는 얘기다. 이는 그녀의 경력에서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조 부사장은 27세였던 1999년 대한한공 호텔면세사업본부에 입사한 후 7년만인 2006년 기내식사업본부 본부장(상무보)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다시 7년 만인 2013년 대한항공 부사장으로 승진한다. 평사원 기간을 오래 거치지 않고 짧은 기간에 임원이 된 케이스다.

▲ 재벌가 후손의 고속승진 사례가 일반 사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사진은 대표적인 국내 재벌 3~4세 삼성과 한진그룹 삼남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조현태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사진=뉴시스]

시민단체 관계자는 “경력과 사회경험을 보면 초고속 승진을 하는 경향이 있는 건 분명하다”며 “하지만 경영 능력과 인성에 대한 충분한 검증 없이 경영권을 이어받는 건 경영권 세습이라는 비판을 받기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재벌 후손의 갑甲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이런 경험 때문에 일반 국민들이 재벌 3세 경영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실 재벌 3~4세가 고속 승진한 경우는 조현아 부사장뿐만이 아니다. 재벌가家 후손들에겐 임원승진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더스쿠프가 대기업 재벌 3~4세 28명의 경력을 검토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이 임원으로 승진하는 데 걸린 기간은 평균 4.3년에 불과했다. 이는 일반사원이 임원승진에 걸리는 시간보다 무려 5.1배 빠른 승진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사무직 대졸 신입사원이 임원으로 승진하려면 평균 22.1년이 걸렸다.

일반 사원이 기업에서 임원이 되는 것은 좁디좁은 취업문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대졸신입사원 1000명 가운데 7.4명만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어서다. 대기업에서 임원이 되기는 더 어렵다. 대기업의 임원 승진 비율은 0.47%, 1000명 중 4.7명만이 임원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임원으로 가는 길은 무척 험난하다. 신입→대리 4.1년, 대리→과장 4.1년, 과장→차장 4.8년, 차장→부장 4.9년, 부장→임원 4.2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텨야 임원자격을 얻을 수 있다.

재벌 3~4세의 ‘고속승진’ 사례

하지만 재벌 3~4세에겐 오랜 시간과 복잡한 과정은 필요 없다. 재벌 3~4세의 임원 승진에 걸리는 시간은 일반 신입사원이 대리로 진급하는 데 걸리는 4.1년과 비슷했다. 재벌 3~4세의 고속승진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땅콩 리턴’의 주인공인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대표적이다.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의 승진도 거침없이 이뤄졌다. 2005년 31세에 금호타이어 기획조정팀 부장으로 입사해 그다음 해인 2006년 전략경영본부 이사로 승진하며 1년만에 임원이 됐다. 조현아 부사장을 포함한 한진그룹 3남매의 사례도 눈에 띈다.

조현민 대한항공 여객마케팅부 전무는 빠른 승진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2007년 25세의 나이로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과장으로 입사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2010년 28세의 나이로 진에어 등기 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상반기 여성 대졸 신입사원의 나이 28.6세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빠른 승진인지 실감할 수 있다.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도 한진그룹에 입사한 지 3년만인 2007년 상무보로 승진했고 2008년 상무B에 이어 2009년 상무A까지 매년 한단계씩 초고속 승진을 이어갔다. 직급상 해당 부서의 실질적인 총책임자인 상무A가 가장 높다. 가장 어린 나이에 임원이 된 경우는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이다. 정 부사장은 25세인 1996년 입사와 함께 등기이사에 올랐다.

처음부터 ‘임원배지’를 달고 입사한 사례도 적지 않다. 조사대상 28명 가운데 17.85%인 5명이 임원으로 입사했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의 차남인 조원국 한진중공업 전무는 2008년 한진중공업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그해 전무로 입사했다. 또한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아들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과 그의 동생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도 입사와 함께 임원배지를 달았다. 허세홍 GS칼텍스 부사장도 2007년 싱가포르 현지법인 부법인장 상무로 입사했다.

물론 재벌 3~4세가 가진 이력은 화려하다. 대부분 28명의 재벌가 후손 대부분이 국내외 명문대학교를 졸업했다. 미국 경영학 석사과정(MBA)를 밟은 인물도 46.4%(13명)에 달했다. 이는 재벌 3~4세의 고속승진의 근거로 활용된다. 또한 입사전 경력을 근거로 현장교육을 받았다는 점도 고속승진의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점이 고속승진의 이유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와 애플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스티브 잡스 등은 MBA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입사전 사회 경험을 쌓기 때문에 고속승진이 괜찮다’는 주장도 허점이 많다. 재벌 3~4세의 사회경험 경력은 고작 2년 남짓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익명을 원한 경영학과 교수는 “재벌 3~4세의 고속승진이 일반 사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있다”며 “그들의 학력과 경력이 고속승진의 이유가 되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단지 재벌가의 후손이라는 점과 경영승계가 고속 승진의 주된 이유일 것”이라며 “명문대를 나오고 2~3년의 대기업 인턴생활로 사회경험까지 한 직원 중에 고속승진을 하는 경우가 몇이나 되냐”고 반문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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