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제2차 유동성 시대

▲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성장 문제를 겪고 있는 국가들이 유동성 확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사진=뉴시스]
통화정책을 정상화하고 있는 미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강한 경기회복세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사정은 다르다. 중국, 일본, 유로존이 ‘돈 푸는 정책’을 꾀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은 금리인하, 일본은 2차 양적질적완화를 단행했다. 유로존도 양적완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제2의 유동성 국면’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연말 글로벌 금융시장의 장세가 어지럽게 전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12월은 지나간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계획하는 차분한 시기다. 하지만 적어도 올해 연말 글로벌 시장은 전통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 원자재 시장에서는 석유를 둘러싼 미국과 중동의 패권 다툼이 국제유가의 수직 낙하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시진핑 정권 출범 이후 처음으로 전격적인 금리인하가 단행됐다. 그 영향으로 4년 가까이 잠들어 있던 주식시장은 11월 이후 21.4%의 상승세를 기록하며 현기증 나는 급등세를 펼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일본에서는 엔ㆍ달러 환율이 마침내 120엔을 넘어섰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 매입이 사실상 시기의 문제만 남겨놓고 있는 유로존 역시 증시에 기대감이 미리 반영되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최근의 연말 장세를 단지 어지러운 혼란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내년 글로벌 증시의 핵심 포인트가 경제성장의 추락에 대응하는 유로존과 일본 중심의 지역별 유동성 장세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이 금리인하를 통한 유동성 확대에 나서면서 미국에 이은 제2의 유동성 차별화 장세가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중국과 일본, 그리고 유로존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글로벌 장세의 모습이 2015년의 흐름을 미리 예고하는 사전 예고편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시그널이라는 얘기다.

 
당초 예상보다 일찍 시작된 유동성 확대 시그널의 첫 주자는 일본이었다. 일본중앙은행(BOJ)은 10월 31일 통화정책회의에서 10조~20조엔 규모의 추가 본원통화 확대를 발표했다. 중앙은행의 발표 이후 엔ㆍ달러 환율은 108.95엔에서 급등하기 시작해 11월 마지막주 마침내 120엔을 돌파했다. 이는 2차 양적질적완화 발표 이후 5주만에 엔화의 가치가 11.5% 급락한 셈이다. 엔ㆍ달러 환율이 120엔을 넘어선 것은 2007년 7월 이후 7년5개월 만이다.

BOJ의 2차 양적질적완화 발표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정부는 내년에도 공격적으로 유동성 확대에 나설 공산이 크다. ‘아베노믹스’가 추구하는 최대 목표는 일본의 만성적인 장기 디플레이션으로부터의 탈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세 인상 이후 기업들의 설비투자 활동이나 민간소비 등과 같은 일본 내수경기의 회복세가 아직까지 불안정한 상황이다. 인플레이션을 이끌 수 있는 수요 측면의 동력이 내년에도 크게 높아지기 어려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수경기 회복과 디플레이션 탈출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내는 출발점은 기업들의 설비투자 활동이다. 기업들이 예상하는 경기와 경영환경의 기대치가 긍정적으로 돌아서면 본격적인 설비투자 활동이 이뤄지게 된다. 이는 고용과 임금의 상승, 그리고 소비 증가를 통해 디플레이션을 벗어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기업들의 설비투자 활동은 본격적인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베노믹스가 시작된 이후 설비투자가 플러스 증가율로 돌아서 올해 3분기에는 전년 대비 5.5% 증가세를 기록했지만 과거 수분에 비하면 여전히 취약한 수준이다.

민간 소비 역시 소비세 인상 여파의 조기 회복 여부가 관건이나 상황이 녹록지 않다. 1차 소비세 인상 이후 마이너스 성장률로 떨어진 민간 소비 회복 속도가 생각보다 더디게 나타나고 있어서다. 일본 정부는 내년으로 예정됐던 2차 소비세 인상을 18개월 늦추면서 소비 경기 회복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민간 소비 둔화의 영향으로 일본의 물가상승률도 주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가상승률은 ‘아베노믹스’의 시작에 힘입어 플러스 성장세로 돌아섰지만 4월 소비세 인상 이후 월간 상승률이 1.4%에서 0.9%까지 떨어지며 반등 탄력을 잃어 버렸다.

아베노믹스, 제2의 유동성 확대책 시동

특히 소비세 인상 이후 시장의 기대인플레이션이 크게 떨어지며 BOJ를 긴장시키고 있다. 게다가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의 급락은 전세계적인 물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며 디플레이션 탈출 계획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에 따라 내수경기 촉진과 물가상승률 제고를 위한 BOJ의 유동성 공세는 내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또한 조기 총선에서 집권당인 자민당의 승리가 점쳐지고 있어 ‘아베노믹스’의 동력은 다시 강화될 공산이 크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엔화 추가 약세의 수혜는 일본 증시가 누릴 것으로 보인다.

인민은행의 금리인하 이후 중국 증시는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상해종합지수는 금리인하 발표후 10거래일 만에 19.8% 상승하며 3000포인트선에 바짝 다가섰다. 이는 시진핑 정부 최고치이자 2011년 4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문제는 증시의 급등세 속에서 중국의 거시 환경이나 미시 환경은 오히려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도성장기의 중국 경제 성장을 책임졌던 산업생산과 고정자산투자가 가파른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2011년 초 13.5%의 성장률을 기록했던 산업생산은 올해 10월 7.7%까지 낮아졌다. 같은 기간 고정자산투자 증가폭은 24.5%에서 15.9%로 떨어지며 14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 증시의 급등세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변수는 없다. 하지만 몇 가지 배경을 사후적으로는 종합해 볼 수 있다. 우선 시진핑 정부의 금리인하가 사회ㆍ경제적 개혁과 구조조정에서 치중하던 정부의 정책 초점이 금융시장 부양 시그널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다. 둘째, ‘후강퉁沪港通’ 시행ㆍ예금자 보험제 도입ㆍ기업공개(IPO) 등록제 시행 등의 발표가 금융시장의 개방ㆍ개혁을 앞당길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연초 이후 그림자 금융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통제와 최근의 부동산 시장 침체가 증시로의 자금 이동을 촉진했을 가능성이다.

결국 폭발적인 반등의 핵심 모멘텀을 금리인하를 통한 유동성 확대에 있다고 본다면 일본 증시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추가 상승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인민은행이 목표치를 크게 밑돌고 있는 물가상승률과 시중유동성 흐름을 개선하기 위해 추가적인 금리인하 혹은 지급준비율 인하를 통한 유동성 확대에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의 10월 인플레이션은 전년 대비 1.6% 증가를 기록해 인민은행 목표치인 3.5%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유동성 확대 나선 시진핑 정부

또한 국제 원자재 가격 급락에 중국 경제지표 둔화까지 나타나고 있어 1% 중반대의 물가상승률은 디스인플레이션 리스크를 높이고 있다. 시중 유동성 지표인 광의통화(M2)증가율 역시 12.6%로 정부 목표치 13%를 3개월째 밑돌고 있다. 이에 따라 인민은행이 추가로 금리인하에 나서거나 지급준비율을 낮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정책은 중국 증시의 유동성 랠리를 연장하는 효과를 가져 올 전망이다.

12월 초 ECB의 통화정책회의는 양적완화에 관한 회원국 사이의 이견을 좁히지 못해 구체적인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독일의 완강한 반대에도 양적완화의 규모와 대상을 확대하고자 하는 ECB의 발언은 점점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ECB의 발언이 수위를 높여가는 것과 비례해서 유로존 증시도 기대감을 유지하며 상승폭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이 중앙은행의 주도로 적극적인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는 것에 비해 ECB의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점은 증시의 상승폭을 제한할 전망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ECB의 양적완화가 국채 매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장의 기대심리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란 것이다. 또한 유로화 약세 흐름 역시 추가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유로존 증시는 여전히 높은 메리트를 가질 전망이다.
김중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 jkim1@shinh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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