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춘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 사장

▲ 박양춘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 .[사진=지정훈 기자]
케이블 없이 움직이는 엘리베이터가 나온다. 꿈의 엘리베이터. 독일의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사는 최근 자기부상열차에 적용된 기술을 사용해 케이블 없이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멀티’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에 따르면 멀티를 설치하면 승강로 공간과 승강기의 무게를 각각 50%씩 줄일 수 있다. 소음과 진동을 크게 줄여 승차감이 뛰어날뿐더러 무엇보다 승객 운송 능력을 50%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한다. 하나의 승강로에서 동시에 여러 대의 승강기가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이 멀티(multiful operation)다.

하나의 지하철 노선, 즉 같은 레일 위를 거리를 두고 여러 대의 전동차가 다니는 격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케이블 없이 자기부상 기술을 사용하기 때문에 승강기가 수직 방향뿐만 아니라 수평으로도 움직인다는 점이다. 박양춘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 사장은 “자기부상열차 기술과 엘리베이터 부문의 기술이 융합돼 일어난 획기적인 혁신”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을 만나 이 혁신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경쟁사인 오티스엘리베이터코리아 부사장으로 있다가 2년 반 전 스카우트됐다. 만년 3~4위이던 티센크루프는 지난해 말 그의 친정인 미국계 오티스를 제치고 업계 2위(신규 설치 시장점유율 기준)로 올라섰다.

✚ 엘리베이터가 어떻게 수평으로도 다닐 수 있나요?
“티센크루프가 개발한 독일의 자기부상열차 트랜스래피드는 자기부상 리니어 모터 기술을 사용합니다. 이 모터가 동력 장치인 로프(케이블) 대신 승강로에 자기장을 발생시키는 것이죠. 수평 이동은 우리가 이미 상용화한 자기부상 무빙워크 ‘액셀’을 연상하면 됩니다. 캐나다 토론토 공항 등에 설치돼 있는데 외관은 일반적인 무빙워크와 차이가 없지만 리니어 모터에 의해 구동됩니다. 이 무빙워크를 수직으로 세운 것이 말하자면 멀티라고 할 수 있죠. 무엇보다 수직 상승을 실현시킨 로프(케이블)가 없어지고, 수직으로 이동하다 수평 방향으로의 전환 운행이 가능해지면 초고층 빌딩의 형태가 바뀔 수 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다양한 디자인의 건물이 설계되겠죠. 이래저래 승강기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뀔 거로 봅니다.”

✚ 케이블이 없으면 이용자로서는 공포감을 느낄 수도 있지 않나요? 만의 하나 엘리베이터가 운행 중 정지했는데 케이블에 매달려 있지도 않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데요? 더욱이 여러 대가 같은 승강로로 다니면 서로 충돌할 가능성도 있지 않나요?
“승강기 간의 충돌 가능성 문제는 우리가 자체 개발한 트윈을 상용화할 때 이미 해결했습니다. 트윈 역시 같은 승강로에서 두 대가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이죠. 트윈은 현재도 독보적인 제품입니다. 국내엔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사옥 등 7개 현장에 설치됐거나 설치 중이죠. 엘리베이터 기술의 발전엔 안정적인 제어 기술이 수반됐습니다. 엘리베이터에 응용된 도르래는 오래 전부터 사용됐지만 1856년 오티스가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전까지는 이 수직이동 장치가 엘리베이터로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첨단 기술은 상용화될 수 없고 상용화돼서도 안 됩니다. 멀티의 상용화 가능성은 독일 슈투트가르트대와의 산학협동 연구를 통해 검증이 이뤄졌죠. 멀티는 엘리베이터 자체의 발명에 버금갈 만한 획기적인 제품이 될 겁니다. 하나의 승강기 통로로 여러 대의 엘리베이터가 다니고 필요하면 수평 방향으로도 이동한다는 아이디어는 사실 새로울 게 없습니다. 다른 회사들도 그런 발상을 했을 거고, 오티스는 구체적으로 검토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질을 중시하는 기업문화 및 200년 역사의 기술 역량, 고객 마인드를 갖춘 티센크루프가 이 싸움에서 승자가 된 것이죠. 아마 엘리베이터의 역사는 멀티를 기준으로 멀티 전과 멀티 이후로 나뉠 거고, 그래서 어쩌면 엘리베이터와는 다른 이름으로 불릴지도 모르죠.”

 
✚ 이용자가 체감할 수 있는 멀티의 장점이 뭔가요? 건물주로서는 어떤 이점이 있죠?
“승강기 대기 시간이 15~30초로 줄어듭니다. 건물주로서는 건축 비용이 크게 줄어드는 반면 건물의 가용 면적이 약 25% 넓어져 임대수익이 늘어납니다.”

✚ 상용화는 언제 되나요?
“2016년 말 독일 로트바일에 신설될 243m 높이의 세계 최고 테스트 타워에서 시제품을 시험 운행할 예정입니다. 그 후 안정화 과정을 거쳐 상용화될 겁니다.”

국내 엘리베이터 시장은 토종인 현대엘리베이터, 미국계 오티스, 독일계 티센크루프, 일본계 미쓰비시엘리베이터가 각축하는 격전장이다. 현대엘리베이터가 대수 기준으로 독보적인 1위. 한국은 매년 2만5000여 대의 엘리베이터가 새로 설치되는 큰 시장이다.

“엘리베이터 역사 멀티 전후로 나뉠 것”

✚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의 올해 실적은 어떤가요?
“신규 설치 기준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말부터 국내 2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10월 현재 시장점유율 19.7%로 3위인 오티스와의 격차를 7% 이상 유지하고 있죠. 명실상부한 업계 2위는 전체 매출액 기준 2위를 해야 실현되는데 2~3년 내 달성할 거로 내다봅니다. 2013~2014년 매출액(9월 결산법인)은 전년도보다 30%가량 성장했고, 영업이익은 전년도의 2.5배로 늘어났습니다. 그 덕에 몇몇 대학과 경영대학원에 불려가 그 배경에 대해 설명도 했습니다.”

✚ 고성장의 요인이랄까 비결이 뭔가요?
“지난해 4월 엘리베이터에 패키지 디자인을 도입해 제품을 표준화하고 고객 가치를 높인 것이 주효했습니다. 세계 최단 거리의 승강로를 구현한 유럽산 모델 ‘시너지’를 들여와 4종의 럭셔리한 패키지 디자인을 입히는 한편 고급 옵션을 표준으로 도입했죠. 이들을 각각 밀라노, 피렌체, 맨해튼, 벨라지오로 명명했어요. 소형 건물 시장을 겨냥한 이 한국형 시너지 엘리베이터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습니다. 고급 옵션을 채택했지만 디자인을 표준화한 덕에 원가가 절감됐고 가격을 올렸는 데도 되레 판매량이 늘어났죠. 한국 고객은 품질은 물론 고급 디자인에 대한 기대치가 높습니다. 그 후 업계 1위인 현대엘리베이터가 이 제품을 벤치마킹했습니다. 그동안 패스트 팔로워였다면 퍼스트 무버 자리를 노려볼 수 있게 된 셈이죠.”

그는 이런 전략을 소형차이지만 비싸게 팔리는 BMW의 미니쿠퍼에 비유했다. 시너지는 로컬라이즈의 성공 사례로 꼽을 만하다. 엘리베이터 수요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것이 빌라, 원룸 등 도시형 생활 주택이다. 과거엔 이런 건물에 건축주가 요구하는 대로 엘리베이터를 주문 제작해 설치했다. 철저한 맞춤 제작 즉 커스터마이즈 전략이었다. 티센크루프코리아는 시장의 니즈를 파악해 소형 엘리베이터에 대한 수요를 네 가지로 유형화했다. 일견 다양해 보이는 제품 수요를 무시하고 업체가 임의로 디자인을 표준화해 공급한 것이다. 프리미엄 스탠더드라고 할까? 이 점에서 반反 커스토마이즈의 역발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독일 본사의 기본 기술과 한국 시장의 틈새 수요를 접목한 전략이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반커스토마이즈 전략이 셀러즈 마켓을 창출한 것이다.

 
“식당에 비유하면 차별성 없이 뷔페식으로 차려 내던 음식을 고급화한 메인 디시 네 가지로 재편한 것이죠. 어떻게 보면 디자인에 대한 고객의 선택권을 회수한 겁니다. 그런데 이들 디자인으로 굿디자인상을 받았습니다. 사실 맛없는 음식들만 잔뜩 차린 뷔페식을 커스토마이즈라고 할 수 있나요? 이와 더불어 천편일률적이다시피 했던 스테인레스 외장재를 다른 재질로 바꿨고 형광등도 발광다이오드(LED)로 교체했습니다. 공기청정기를 기본으로 장착했고요. 그러자 건축업자들이 호응했습니다. 주문량도 늘어났죠. 본사에서도 한국처럼 고유한 제품 콘셉트를 만들어 셀러즈 마켓을 창출하라고 요구합니다.”

국내 시장에서 브랜드 밸류가 상대적으로 낮은 티센크루프로서는 일종의 패밀리룩 도입으로 시장에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뿌리내리는 효과도 있었다. 네 가지로 표준화한 결과 대량 생산이 가능해 졌고 협력업체 수도 줄었다.

✚ 목표가 국내시장 1위인가요?
“당연히 그럴뿐더러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건강한 성장’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해 우선순위에서는 밀렸지만 당연히 업계 1등을 해야죠. 구성원들에게 나는 사장으로서 1등 할 자신이 있으니 각자 경쟁사의 카운터파트에게 이기라고 말합니다.”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는 최근 36일 간의 전면 파업으로 몸살을 앓았다. 통상임금 문제가 쟁점이었다. 기자가 최근에 찾은 한 중소기업 사장은 새로 지은 사옥에 티센크루프측이 엘리베이터를 시공하고도 서비스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 사장과 인터뷰하기 전 날 티센크루프 노사는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그는 무노동무임금에 노조와 합의했다고 말했다.

선진기술과 틈새수요 접목전략 성공

박 사장은 미국계 오티스 부사장 출신이다. 그는 티센크루프에 부임해 구성원들에게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2년 전 기자와의 인터뷰 때 그는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동안 회사가 이익을 내는 데도 구조조정을 하는 게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 장기 파업으로 회사가 어수선했겠습니다. CEO로서 고용 유지를 여전히 중시합니까?
“고용을 유지하고 구성원들을 제대로 대우하는 건 CEO의 의무입니다. 고용 유지는 어쩌면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이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지도 모릅니다. 고용을 유지하는 건 능력이 있든 또는 다소 부족하든 계속 같이 가겠다는 겁니다. 이런 기조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무노동무임금 원칙이 지켜져야죠. 정년도 60세로 연장되는데 말이죠. 구성원들도 경영자와 철학을 공유하고 고통을 분담해야죠. 단 고용 창출에 대한 책임은 개별 CEO의 역할을 넘어서는 거예요.”

박 사장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다. 아너소사이어티는 1억원 이상 개인 기부자들의 모임이다.

✚ 회사 차원에서도 사회공헌 활동을 합니까?
“경남 거창의 한국승강기대학 재학생 12명에게 총 860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하는 MOU를 지난 10월 맺었습니다. 설치 인력도 조달할 겸 탈북새터민들에게 안정된 직장을 제공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올 초부터 운영 중이고요. 일부 직원들이 급여 중 1만원 미만의 단위를 기부하는 끝전기부로 대한적십자사가 주는 상을 받았습니다.”

티센크루프는 2003년 동양엘리베이터를 인수하며 국내에 진출했다. 글로벌 승강기 업체로는 유일하게 국내에서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 외국계 기업 CEO로서 느끼는 애로는 뭔가요?
“우리 회사는 본사에서 들여오는 게 거의 없습니다. 무늬만 독일 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 가운데 특별히 우리 회사에 불리한 건 없습니다. 다만 국내 기업들이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를 우회하고 해묵은 관행을 따르면서 ‘문제가 되면 벌금 내지’ 할 때에 글로벌 기업으로서 법과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켜야 하는 부담은 있습니다.”

✚ 내년 실적은 어떻게 전망하나요? 올해의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요?
“올해의 추세를 이어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부딪쳐 봐야죠. 문제는 늘 내부에 있고 기회는 외부에 있습니다. 가령 고객 지향적인 기업이라는 가치와 비전을 공유한다면 파업에 대한 생각도 달라야 한다고 봅니다. CEO로서 구성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더 열심히 소통하려 하지만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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