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리턴 손익계산서

▲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땅콩리턴’사건으로 대한항공이 엄청난 손실을 입을 전망이다.[사진=뉴시스]
조현아 대한한공 전 부사장이 일으킨 ‘땅콩리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그녀의 갑甲질’이 대한항공을 벼랑끝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로 대한항공이 입은 손실은 3889억원. 더 큰 문제는 기업을 이끌어가는 임직원의 사기와 기업 이미지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엄청난 손실이다.

1990년대 초반.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무서울 게 없었다. 모델 ‘마이클 조던’ 처럼 나이키의 실적은 연일 하늘을 날았다. 미국시장 점유율은 1991년 22.5%에서 1996년 30% 중반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런 나이키의 발목을 잡은 건 1996년 6월 발간된 시사화보잡지 「라이프(Life)」에 실린 ‘작은 사진 한장’이었다. 사진엔 12세 파키스탄 소년이 나이키 로고가 선명하게 찍힌 축구공을 꿰매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나이키는 아동을 착취한다는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영업이익과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1998년 대규모 적자로 인한 구조조정을 겪어야 했다. 1998년 필립 나이트 나이키 전 최고경영자는 “그동안 나이키제품은 노예노동ㆍ강제잔업ㆍ노동학대와 동일시됐다”며 “소비자는 노동자가 혹사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구매하길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잘못을 인정했다. 그 이후 나이키가 ‘이전의 나이키’로 돌아오는 덴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공고한 둑방을 무너뜨리는 건 작은 개미구멍이다.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맏딸이다. 그는 대한항공의 기내서비스와 호텔사업 부문 총괄부사장을 맡고 있었다. 또한 칼호텔네트워크를 포함한 대한항공 주요 계열사의 대표다. 그렇다고 대한항공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적인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지배구조상 최대주주는 32.2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한진칼이다. 한진칼의 최대주주는 조 회장(15.49%)이다. 장녀인 조 전 부사장과 조원태 경영전략 영업부문 총괄부사장, 막내딸인 조현민 통합커뮤니케이션실 전무의 한진칼 보유주식은 각각 2.48%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갑甲질’이 직원 1만8000명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항공사인 대한항공을 벼랑끝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이른바 ‘땅콩리턴’ 사건이 터진 것이다.

 
재벌 기업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것은 주가다. 지난 8일 4만6200원이었던 대한항공의 주가는 18일 4만7600원으로 상승했다. 단순히 인상 유무를 따지면 ‘땅콩리턴’의 부정적인 영향이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대한항공의 주가는 국토교통부가 ‘땅콩 리턴’ 사건을 조사하겠다고 밝힌 이후부터 하락세를 기록했다.

특히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진 직후인 12일에는 2.80% 하락했고 조 전 부사장이 검찰 조사를 받은 17일에는 1.96%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문제는 최근 저유가의 영향으로 항공주가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아시아나항공은 15.29%의 상승세를 기록했지만 대한항공은 3.03% 오르는데 그쳤다. 대한항공은 이번 사건의 영향으로 유가하락의 수혜를 보지 못했다는 얘기다.

땅콩리턴에 사라진 저유가 수혜

정유석 교보증권 연구원은 “최근의 논란에도 대한항공의 주가가 큰 하락세를 보이지 않은 것은 유가하락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라며 “대한항공의 연간 주류비는 대략 4조원으로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40%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는 시가총액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만약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 비슷한 15%의 상승률을 기록했다면 대한항공의 주가는 18일 5만3130원을 웃돌았을 것이다. 이는 실제주가와 5530원의 차이가 난다. 대한항공의 발행 주식은 5867만5438주라는 것을 감안할 때 단순 계산으로 3244억원의 손해를 봤다는 얘기다.

대한항공의 직접적인 손실도 크다. ‘조현아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언론에 낸 광고비로 무려 40억원을 집행했다. 인천~뉴욕 노선 운항수익 3일치 운항수익을 단 한번의 광고로 날릴 위기다. 더군다나 이 노선은 운항정지 처분을 맞을 공산이 크다. 국토교통부도 운항규정 위반 등에 대한 책임을 물어 대한항공에 대해 최대 31일간의 인천〜뉴욕 노선 운항정지 처분을 내릴 방침이다. 이 노선은 하루 약 12억원의 매출을 올리므로 31일 운항정지 시 약 372억원의 매출 손실이 예상된다. 여기에 31일 운항정지로 발행하는 과징금 21억6000만원을 더할 경우 총 393억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할 전망이다.

더 큰 문제점은 이번 사태로 생명과 같은 기업 이미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점이다.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에는 ‘땅콩리턴’ 사태를 조롱하는 각종 패러디물이 등장하고 있다. 사회에 쏟아 부은 엄청난 금액의 사회공헌 예산과 기부금도 모두 물거품이 됐다. 2013년 대한항공이 사회공헌 비용으로 사용한 금액은 104억375만원에 달한다. 지역사회에 낸 기부금 108억원을 포함하면 200억원이 훌쩍 넘는다. 최근 3년치를 따져보면 무려 546억원에 달한다. 땅콩 리턴 사태로 발생한 ‘조현아 로스’의 유형적 부문만 3889억원에 달한다는 얘기다.

떨어진 직원사기 큰 문제

가장 큰 문제는 무형적 로스다. 불매운동이 시작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실제로 뉴욕 퀸즈 한인회와 뉴욕한인학부모협회는 지난 12일 대한항공 불매운동을 선언했다. 국내에서도 금융소비자원 등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불매운동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항공사명을 대한한공이 아닌 한진항공으로 변경하라는 여론까지 생겨나고 있다. 만약 대한항공의 ‘대한’ 상표권이 문제가 되면 천문학적인 비용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숫자’로 표시하기 힘든 직원의 사기다.

대한항공은 1만8000명이 넘는 직원이 근무를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항공사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왔다. 이들은 분명히 ‘재벌 3세’와는 다른 삶을 살아왔을 게 뻔하다. 한 대한항공 관계자의 말이다. “밥을 먹으러 가도, 집에 가도 조현아 얘기뿐이다. 목걸이에 대한항공의 상징이 들어있는 게 이렇게 부끄러운 적이 없었다. 우리가 무슨 죄인가. 재벌 3세가 자기 회사인줄 알고 어깨에 힘주고 다닌 게 문제 아닌가.” 나이키가 무너졌을 때 ‘마이클 조던’이라는 히든카드가 건재했다. 대한항공은 기댈 언덕조차 잃었다. 남은 건 조롱과 핀잔, 그리고 불신뿐이다. 그게 더 큰 문제다. 진짜 조현아 로스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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