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대형마트 판결 괜찮나

대한민국에서 ‘대형마트’라는 용어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점원이 고객에게 도움을 주는 곳은 대형마트가 아닌 게 돼서다. ‘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소매하는 점포여야 대형마트’라는 서울고법의 판결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이 대기업 유통업체들이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빌미를 줘 문제다.

▲ 서울고등법원의 대형마트 영업제한 위법 판단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서울고법의 ‘묘한 판결’이 강한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행정8부(재판장 장석조)는 홈플러스 등 6개 업체가 서울 동대문구청과 성동구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런 판결을 내렸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영업시간 제한 명령 대상을 ‘대형마트’로 규정했다. 그런데, 홈플러스 등은 이 법상 대형마트로 볼 수 없다.” 판결 근거는 “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소매하는 점포여야 대형마트”라는 것이다.

유통산업발전법은 매장면적의 합계가 3000㎡(약 907평) 이상이면서 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식품ㆍ가전 및 생활용품 등을 판매하는 점포 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홈플러스 등은 매장 면적은 대형마트에 해당하지만 ‘점원의 도움 없이 소매하는 집단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이번 판결의 요지다. 예를 들어 대형마트의 수산ㆍ정육 등 일부 코너에서는 점원을 따로 배치해 소비자들의 구매를 돕는데, 이를 ‘점원이 소비자들의 소매행위를 돕고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번 법원의 판결은 비난을 받고 있다. 참여연대는 12월 15일 성명서를 내고 “이번 판결의 취지대로라면 대한민국에는 대형마트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재판부가 대형마트가 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소매하는 점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대형마트의 영업형태를 무시한 현실성 없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양창영 법무법인 정도 변호사는 “점원의 도움 없이라는 표현은 대규모 점포 중 대형마트의 특성을 분류하기 위한 표현일 뿐”이라며 “소매행위에 있어 점원의 도움 여부가 대형마트의 본질은 아니다”고 밝혔다.

법원의 이번 판결로 유통 관련 규제법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현재 대형마트로 분리돼 있는 창고형할인점 등이 직원들을 배치해 소비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대형마트’가 아니라고 주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또 있다. 이번 판결로 대형마트들이 의무휴업뿐만 아니라 전통상업보존구역에서 등록 제한 등의 법망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은 개설등록 또는 변경등록을 하고자 하는 대규모 점포 및 준대규모 점포의 위치가 전통상업보존구역(전통시장이나 중소기업청장이 정하는 전통상점가의 경계로부터 500m 이내의 범위)에 있을 때 점포 등록을 제한하거나 조건을 붙일 수 있다. 대형마트는 대규모점포에 속해 이같은 법이 적용된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 따르면 이같은 규제에도 구멍이 생기게 된다. 양창영 변호사는 대형마트를 포함해 백화점ㆍ복합쇼핑몰ㆍ전문점 등 총 6개 유통채널이 대규모 점포에 속한다”며 “하지만 이번 판결로 기존 대형마트들이 대규모 점포에서 빠지면 관련 규제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이 전체 유통 규제법을 뒤흔들 수 있는 이유다. 양창영 변호사는 “이번 재판부 판결은 형식적이고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며 “대법원에서 이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소상공인은 “고등법원의 이번 판결은 1심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라며 “대형마트가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하면 유통법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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