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예사롭지 않은 행보

▲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지난 4월 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지식 향연 콘서트’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뉴시스]
재계 순위 13위인 신세계그룹 정용진(46) 부회장의 연말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중국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해외진출 방향을 베트남 등 동남아로 선회했다. 연말 인사에서 자신의 오랜 ‘경영 멘토’였던 구학서 회장을 고문으로 퇴임시키고 젊은 임원들은 대거 기용하기도 했다. 친정체제와 홀로서기를 강화하면서 경영의 새 판을 짜고 있다. 오너 3세인 그의 활달한 행보에 눈길이 쏠린다.

지난 11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ㆍ아세안 CEO 서밋’ 행사장. 이 자리에서 기자들을 만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눈길 끄는 몇 가지 발언을 했다. 쉽사리 재계 오너들을 만나지 못하는 기자들이 모처럼 큰 기삿거리를 낚아 올렸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내년 말 베트남에 이마트 1호점을 오픈한 뒤 성공하면 라오스ㆍ미얀마ㆍ캄보디아ㆍ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국가에 진출할 계획이다.” “아세안 4개국 사업 타당성 조사는 이미 검토를 마쳤다. 내년 2월 베트남에 가서 (1호점 공사) 현황을 살펴보겠다.” “실제 중국 사업을 해보니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7조원대의 매물 홈플러스는) 농협이 인수하는 것이 가장 맞는 시나리오일 것이다. 신세계(이마트)와 롯데마트는 홈플러스와 상권이 상당히 겹친다. 같은 맥락에서 현대백화점도 조심스럽지 않을까.” 삼성전자 지분 추가 매입 여부에 대해서는 “언젠가는 팔 것”이란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40대 후반에 접어든 젊은 오너 3세 경영자의 활달하고 서슴없는 면모가 느껴지는 답변들이었다. 내용 모두가 신세계 경영과 직ㆍ간접적으로 연결된 굵직한 사안들이었다. 여러 답변 가운데 특히 “실제 중국 사업을 해보니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는 말이 가장 강한 느낌으로 전달됐다. 일부에서는 중국 이마트 사업 실패를 언론을 통해 인정한 뼈아픈 발언이었다고 지적한다. 사정이 어떠했기에 그런 말이 나왔을까.

이마트는 중국 톈진天津에 진출했던 아오청점 등 4개 점포를 올해 말까지 폐점할 계획이다. 이마트는 17년 전인 1997년 상하이上海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며 처음 해외 진출에 나선다. 그 뒤 중국 법인 10개, 매장 27개로 늘렸으나 현지화에 실패하면서 실적이 나빠졌다. 2011년 점포 11개를 정리했고 법인도 5개로 줄였다. 이번 폐점으로 중국 내 점포는 상하이 8개점 등 10개만 남게 된다. 남은 점포에 대해서도 인수합병(M&A)이나 폐점 등 다각적인 구조조정에 나설 방침으로 알려졌다. 포화상태의 국내 쇼핑시장에서 벗어나 의욕적으로 중국 진출을 시도했으나 고배를 마신 셈. 일부에서는 이런 사정을 신세계에 “중국은 ‘버린 카드’고 아세안은 ‘히든 카드’”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국내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할인점의 강자 이마트가 중국에서는 쓴맛을 보고 있다고나 할까.  

신세계는 해외진출의 새로운 돌파구 마련을 위해 베트남 등 동남아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중국에 이어 두번째 해외진출이다. 정 회장은 “글로벌 유통기업도 중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로선 중국 사업을 확대할 생각이 없다. 중국 경험을 토대로 베트남 사업을 펼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중국 버린 카드, 아세안 히든 카드”

지난해 베트남 호찌민 고밥신도시 지역에 3만㎡(약 1만평) 규모의 이마트 1호점 부지를 확보하고 공사에 들어갔다. 지난 11월에는 현지 당국으로부터 자본금 6000만달러 규모의 투자 승인을 받았다. 지난 7월 호찌민공항 부근 떤푸 지역에서 이마트 2호점 부지도 사들였다. 그는 40대 초반(41세)이던 2009년 12월 1일 신세계그룹 총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언론은 ‘정용진호 신세계’의 출범을 대대적으로 소개했다. 기대와 걱정이 교차한다는 반응이었다. 그후 5년간 대표권을 행사하며 자기만의 스타일을 구축해 왔다. 물론 모친 이명희(71) 회장과 전문경영인 구학서(68) 회장이 후견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총괄 대표 승진 6년에 접어드는 이번 연말 인사를 통해 ‘진정한’ 홀로서기를 시도한 느낌이 짙다. 지난 5년간의 총수 경험과 47세라는 나이를 바탕으로 한 일종의 자신감의 표현인 것도 같다. 구 회장은 지금까지의 직함을 내려놓고 고문으로만 남게 됐다. 정 부회장의 경영수업 과정에서 후견인 역할을 해왔던 그가 퇴임하면서 정 부회장의 오너 체제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고위경영자뿐만이 아니다. 일반 임원 인사에서도 ‘신세계 색깔내기’에 과감하게 나섰다는 평가다. 신세계 공채 1ㆍ2기 출신들을 대거 임원으로 발탁한 것.

삼성에서 분리된 후 ‘홀로서기’에 부심해온 신세계 오너들의 의지가 많이 반영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삼성과 차별화된 ‘신세계만의 DNA’를 구축해야 한다는 오랜 숙제 해결에 이번 임원 인사가 물꼬를 텄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런 면에서 삼성전자 지분 추가 매입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정 회장이 “언젠가는 팔 것”이라고 한 답변은 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신세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삼성전자 지분 매각을 검토한 적이 없다”며 “지분을 이른 시일 안에 매각한다는 뜻이 아니라 추가 매입 계획이 없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라고 애써 해명했다.

하지만 시장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삼성에는 반가운 소식으로 비쳤다. 삼성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면 큰 이슈는 없지만 아무래도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는 것. 그 발언이 삼성에 대한 일종의 ‘화해 제스처’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그의 사촌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세계그룹은 삼성에서 완전 분리된 1997년 당시 매출이 2조원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매출 17조430억원(공정위 자료), 계열사 29개로 재계 13위에 올라 있다. 최근엔 경기 침체와 출점 규제, 중소기업과의 상생 여론 등의 여파로 성장 정체에 직면해 있다. 시장 여건이 무척 좋지 않은 시기에 정 부회장의 홀로서기가 강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앞서 든 동남아 진출 강화, SSG닷컴 등 온라인 시장 확대, 홈쇼핑 등 유통 채널 다양화 등을 통해 신성장 동력 발굴에 골몰하고 있다. 평소 “유통업의 미래는 시장점유인 마켓셰어(Market share)보다 소비자의 일상을 점유하는 라이프셰어(Life share)를 높이는 데 달려 있다”는 생각을 가진 그는 재계에서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임원 인사에서 ‘신세계 색깔내기’ 

유통업계 최초로 만 60세 정년 연장을 10개월 앞당겨 내년 3월에 조기 시행할 계획으로 있는 등 유통 강자로서의 역할을 나름대로 하고 있다. 지난 11월 28일엔 서울 반포동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근처 복개주차장 상가에 수제맥주 전문점을 열어 화제를 몰고 오기도 했다. 이 역시 그가 주도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여름 이마트 직원 사물함 무단검사 파문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키 180㎝에 당당하고 훤칠한 체격의 그는 쾌남아 스타일이다. 격식을 강조하지 않으면서 젊고 세련된 패션을 선보이는 것도 그의 장기다. 경영 여건이 유례없이 좋지 않은 만큼 그가 얼마나 선제적인 대응을 통해 경영 분위기를 반전시켜 낼지 주목된다. 
김은경 더스쿠프 객원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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