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㊺

일본군이 임진강에서 도망을 치는 척하자 조선 군사들이 임진강을 넘어 달려들었다. 덫이었다. 조선 군사들이 임진강을 넘자 적의 복병이 사방에서 나타나 조총ㆍ화살ㆍ대도ㆍ장창을 풍우 치듯 쏟아냈다. 우리 군사들은 미처 손을 쓸 새 없이 적의 철환ㆍ시석ㆍ창검에 맞아 수천명이 죽었다.


한응인은 ‘지금 임진강을 넘어선 안 된다’는 강변군사의 말을 듣고 분기가 폭등했다. “이놈들! 시골의 미천한 출신으로 사대부를 몰라보고 무엄이 막심하다!” 칼을 빼어든 그는 “오냐, 네 놈들이 죽기를 무서워하는구나. 주둥아리를 기탄없이 놀려 군심을 요란케 하니 마땅히 베리라!”며 성화같이 재촉하여 강을 건너게 하였다.

하지만 조방장 유극량은 강변군사의 말에 동의하면서 대장 신할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강변군사들의 말을 들으니 지당하오. 경하게 움직이는 것은 만전지계가 아닌 듯하오.” 하지만 거칠고 서투른 신할도 대로하면서 선조가 준 상방검尙方劍을 빼어 들고 유극량을 베려 하였다. 유극량은 “내가 일생을 전장에서 살았거늘 어찌 죽기를 피하겠소마는 나랏일이 그릇되니까 하는 말이오”라며 자기의 부하들과 함께 선봉으로 나섰다. 신할도 강을 건너 군사를 재촉하여 달려갔다.

서도순찰사 한응인과 경기감사 권징은 문관이자 백면서생이어서 무기를 들 수 없었다. 또한 전쟁터에 나서는 게 무서워 군사들을 보내고 자기네들은 강 이쪽 북안에 머물러 도원수 김명원과 함께 승전보가 오기만 고대하였다. 그 즈음, 신할의 군사와 강변군사는 임진강 남쪽 벌판을 지나 문산포汶山浦 뒷산에 다다랐다. 군사들이 피곤하고 목이 마르던 때에 적의 복병이 사방에서 나타나 조총ㆍ화살ㆍ대도ㆍ장창을 풍우 치듯 쏟아냈다.

우리 군사들은 미처 손을 쓸 새 없이 적의 철환ㆍ시석ㆍ창검에 맞아 수천명이 죽었다. 병사 신할과 별장 유극량도 함정에 빠져 적의 창검에 죽었다. 죽기를 면한 군사들은 임진강을 향하여 달아났다. 하지만 적병은 벌써 발뒤꿈치까지 쫓아왔다. 길가에는 우리 군사의 시체들이 쓰러져 누었다. 임진강에서 되돌아온 군사는 1만여명 중 1000명이 안 됐다. 이른 본 김명원과 권징은 처음에는 배를 강의 남쪽으로 보냈다. 군사를 실어 날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중엔 구름 같은 적병이 따라오자 그 배를 빼앗길까 강북으로 도망가 버렸다.

일본군 두려워한 선조와 대신들

뒤떨어진 군사는 건너올 배를 얻지 못하고 부질없이 한응인을 불러 욕하고 배후에 임한 적병의 칼을 피하여 강물에 뛰어들었다. 그 뛰어드는 모양이 마치 바람에 날리는 어지러운 나뭇잎 같았다고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에 기재돼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도원수 김명원 등은 넋을 잃었다. 상산군商山君 박충간은 “일이 글렀으니 하는 수 있나”라며 맨 먼저 말을 타고 달아났다.

▲ 일본 주력부대가 뿔뿔이 흩어져 조선 8도를 유린하기 시작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것을 본 군사들 역시 목숨을 지키기 위해 도망행렬에 합류했다. 면목 없이 된 한응인도 목숨이 아깝던지 그만 달아났다. 그 뒤를 이어 김명원도 달아났다. 경기감사 권징은 그나마 염치가 있었든지 평양의 행재소로는 가지를 못하고 경기도 가평加平으로 달아나 버렸다. 이렇게 10여일을 임진강에서 버티던 소서행장 등 일본군은 유적계 한번으로 조선군을 대파하는 데 성공했다. 또 아무 저항 없이 임진강을 건너 개성을 점령하였다. 소서행장과 가등청정이 같이 개성을 지나서 평양으로 가다가 안성역(황해도 평산과 서흥 사이)에 이르러 청정은 함경도, 행장은 평안도로 향했다.

황해도는 흑전장정, 전라도는 도진의홍에게 맡기고, 경기도와 서울은 대장인 부전수에게 지키도록 했다. 강원도는 모리승신, 충청도는 복도정칙과 장종아부원친, 경상도는 대장인 모리휘원에게 맡겼다. 조선 연해안과 섬의 제해권을 구귀가륭, 협판안치, 가등가명 등 여러 장수에 나눠 장악하게 하라고 수길이 명했다.

이때에 소서행장과 흑전장정 소조천융경 대우의통의 무리가 개성을 점령한 뒤 봉산에 불을 지르고 황해도를 짓밟으며 대동강 남안에 닿았다. 이때에 임진강의 패보가 평양에 들어왔다. 선조와 대신들은 평양을 버리고 다른 데로 가기로 하였다. 믿을 만한 장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사(사헌부와 사간원)와 홍문관에서는 연일로 복합(대궐문 앞에서 임금에게 의견을 알리는 일)하여 평양을 버리고 영변寧邊으로 옮기기를 청했다. 인성寅城부원군 정철도 힘을 다해 평양을 버리기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유성룡은 달랐다. “평양을 지키는 것이 옳소. 인성부원군은 서울도 버렸거늘 평양을 못 버리랴고 주장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시세가 같지 아니하오. 평양은 백성의 마음이 대단히 굳고 앞에 대동강이 있어 지킬 만한 가망이 있소. 여기서 며칠만 있으면 명나라의 구원병이 올 것이니 밖에서 돕고 안에서 응하여 적병을 물리칠 수가 있을 것이오. 그렇지 아니하고 평양을 버리고 떠난다 하면 의주에 이르기까지는 다시는 웅거할 만한 요해지가 없으니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오.” 좌의정 윤두수가 유성룡의 주장에 찬동하였다.

정철과 유성룡의 날선 대립

하지만 정철은 강력 반대했다. “평양이 비록 민심이 굳고 앞에 대동강이 있다 하나 장수가 없이 어떻게 지킨단 말인가”라는 게 이유였다. 적을 피해 떠나자는 ‘피출설避出說’을 고집한 거였다. 유성룡은 분개한 낯으로 정철을 향해 이렇게 꾸짖었다. “영변도 의주도 적만 온다면 또 떠나야 할 터이니 장차 어디로 성상을 모시고 가려 하오? 나는 평소에 대감이 강개한 뜻이 있어서 어려운 것을 겁을 내는 사람이 아닌 줄 믿었더니 오늘 이런 말은 참으로 의외요.”

윤두수도 정철의 무기력함에 분개하여 ‘내가 칼을 빌려서 이 간신을 베고자 한다(我欲借劍斬侫臣)’는 문산(중국 남송 말기의 정치가ㆍ시인)의 시를 읊었다. 정철은 대로하여 소매를 뿌리치고 일어나서 나가 버렸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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