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유로존 이중고

▲ 2015년에도 유로존의 본격적인 경기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2010년 재정위기에 빠진 유로존. 벌써 4년째 불황터널에 갇혀 있다. ‘이번에는 빠져나오겠지’라는 기대는 번번이 물거품이 됐다. 그렇다고 카드가 많은 것도 아니다. 미국이 경기회복을 위해 사용한 통화정책도 맘대로 추진하지 못할 정도다. 유로존의 2015년은 어떤 모습일까.

2013년 12월 유로존에 봄바람이 불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의 경기회복과 함께 유로존의 소비심리가 살아나면서 경기가 조금씩 회복세를 보였다. 그 결과, 2014년엔 2012ㆍ2013년 2년 연속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에서 벗어나 1.1%의 성장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대세로 떠올랐다. 재정확대 정책으로 성장부진이 해소되고, 통화완화 정책의 영향으로 유로화 약세에 따른 수출 증가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2014년 유로존의 경제는 기대치를 한참 밑돌았다. 유로존 경기 둔화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내년 유로존 경제성장률 전망을 1.1%로 0.6% 하향 조정했을 정도다.

그렇다고 유로존이 경기회복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 것도 아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14년 6월 통화정책회의를 통해 기준금리를 0.25%에서 0.15%로 낮추고 초단기 수신금리인 ECB의 예금금리를 제로에서 마이너스 0.1%로 인하했다. 9월엔 기준금리를 0.15%로 인하한 지 3개월 만에 다시 0.05%로 인하하고 예금금리는 마이너스 0.20%로 떨어뜨렸다. 비非전통적 통화정책 사용도 결정했다. 목표 장기대출 프로그램(TLTRO)을 실시해 826억 유로의 유동성을 시중은행에 공급했다.

이런 노력에도 유로존의 경제는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일부 회원국의 유동성 부족현상이 실물경제의 회복을 더디게 만들고 있다. ECB는 TLTRO를 통해 최대 4000억 유로의 유동성이 공급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기대보다 크지 않았다. 시장에 풀려 있는 유동성도 많지 않다. 2년간의 재정긴축정책의 영향으로 유동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재만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유로존의 통화량 규모가 계속 줄고 있고 있다”며 “TLTRO 기간이 정해져 있는데다 대출금 상환이 이뤄져 시장에 풀린 유동성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TLTRO를 실시해 봤자 기업과 가계 대출로 이어지긴 어려울 것”이라며 “국채매입 등 공격적인 통화완화 조치가 없이는 유동성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로존의 2015년 전망이 밝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디플레이션과 내수부진의 영향으로 1%대 초반의 저성장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황나영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높은 실업률과 재정긴축, 경기 불확실성이 지속의 영향으로 2014년 2분기 이후 소비와 투자심리가 냉각되고 있다”며 “2015년에도 유로존 내수 수요가 빠르게 회복되긴 힘들어 본격적인 경기회복세를 보이긴 어려울 전망”이라고 밝혔다.

적극적인 통화정책 사용 어려워

특히 갈수록 커지는 디플레이션 우려는 고민거리다. ECB와 EU집행위원회의 2015년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각각 1.1%, 1.5%로 ECB의 물가관리 목표치인 2%보다 크게 낮다. 물론 때마침 찾아온 저유가 덕분에 디플레이션이 깊어져도 소비여력은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반론이 만만치 않다. 유로존 유가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저유가의 영향력이 소비자가 체감할 수준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유로존 대부분의 회원국이 ‘임금 슬라이드 제도(Slidi ng scale plan)’를 채택하고 있는 것도 ‘저유가’의 긍정적 파급효과를 차단한다.

임금상승률과 물가상승률을 연동한 이 제도는 인플레이션 시 실질임금 하락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때는 반대로 작용한다. 다시 말해 지금처럼 실업률이 높은 상태에서 저유가 국면이 지속되면 실질임금이 줄어들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철희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유가하락은 유로존의 임금상승률을 떨어뜨리는 변수가 될 수 있다”며 “이는 다시 경기침체와 물가하락을 초래해 실질금리를 높이는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경제전문가들은 유로존 경기의 본격적인 회복을 위한 유일한 카드는 미국ㆍ일본과 같은 적극적인 통화정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이 카드 역시 유로존이 빼들기 쉽지 않다. 미국과 일본처럼 통화정책을 추진하는 ECB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유로존에서 돈을 뿌리려면 민간은행이 보유자산을 ECB에 매각해야 하는데, 민간은행엔 그럴 이유가 별로 없다. 유로존 은행들이 디레버리징(부채감축)을 더디게 진행하고 있어서다. 양적완화의 규모도 문제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2년 동안 2조 유로의 자산규모를 3조 유로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그 규모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철희 연구원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ㆍFed)만큼 통화량을 늘리려면 2조 유로가량의 자산 규모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경제정책에 관한 정치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유로존이 본격적인 경기 회복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통화정책과 함께 재정확대 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유로존은 여전히 재정확대 정책에 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유로존의 경제대국인 독일이 이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11월 옌스 바이트만 독일중앙은행 총재는 “독일이 재정확대 정책을 통해 유로존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요청은 적절치 않다”며 “통화정책 수단이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영구적으로 키우거나 정규직을 만들어낼 것이란 믿음은 환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적극적인 재정확대 정책에 나서긴 어려울 전망이다. 이재만 연구원은 “유로존이 재정확대 정책을 사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유로존 각국의 경제적 정치적 상황이 모두 달라 쉽게 합의점을 찾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존 경제, 불황 터널을 빠져나가기엔 역부족인 듯하다. 적극적 통화정책 등 동력이 필요하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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