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우울한 단어가 꼬리를 물다
참 우울한 단어가 꼬리를 물다
  • 김정덕ㆍ김미선 기자
  • 호수 123
  • 승인 2014.12.31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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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2015년 키워드 | 디플레이션에서 웩더독까지

2015년 한국경제의 전망이 어둡다. 디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서다. 일명 ‘D의 공포’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디플레이션에서 출발하는 연쇄현상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 더스쿠프가 신년 특집으로 ‘대한민국 2015년 키워드’를 뽑아봤다.

▲ 새해가 밝아오지만 2015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들은 죄다 우울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말이 있다. 오늘의 걱정으로 내일을 망치지 말라는 거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2015년을 전망해보면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을 덮은 그림자가 너무 짙어서다.

■디플레이션(Deflation)의 회오리=세계 경제에 디플레이션 우려가 감돌고 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이 2014년 12월 24일 발표한 ‘12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대인플레이션율(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대한 소비자의 전망치)은 11월보다 0.1%포인트 떨어진 2.6%로 나타났다. 한은이 기대인플레이션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2014년 5월 이후 2.8%를 유지하던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올해 10월 사상 최저치인 2.7%로 떨어졌고, 두달 만에 다시 기록을 경신했다.

소비자심리지수도 떨어지고 있다. 2014년 1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11월보다 1포인트 떨어진 102포인트로 1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2003〜2013년 평균치를 기준(100)으로 100보다 크면 소비자심리가 과거 평균보다 높으면 낙관적이고, 낮으면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정부의 경기부양책과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로 2014년 8〜9월 107로 잠깐 올랐지만 10월부터는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의 수치가 아니라 추세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기대인플레이션율이 계속 내려가는 추세라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정부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정부가 내놓는 각종 경기부양책도, 한은이 단행한 두차례의 기준금리 인하도 경기를 살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는 얘기다. 이런 분위기는 2015년에 고스란히 이어질 전망이다.

■ 구조조정ㆍ다운사이징 그림자=저물가는 신체의 저혈압처럼 경제활력을 떨어뜨린다. 경기침체와 맞물리면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공산도 크다. 저물가에 이은 디플레이션으로 경기가 더 어두워지면 기업은 몸집을 줄일 수밖에 없다. 지금이 꼭 그런 상태인데, 삼성그룹이 신호탄을 쐈다. 삼성은 화학ㆍ방위산업 계열사 4곳을 한화그룹에 매각하기로 했다. 선택과 집중으로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다. 2014년 상반기 금융부문, 하반기 전자부문 감원에 이어 건설부문(삼성물산ㆍ삼성중공업ㆍ삼성엔지니어링) 조직개편도 추진 중이다. 기업 통폐합과 일부 사업부 매각 가능성도 거론되면서 인력 구조조정설設이 확산되고 있다.

 
다른 대기업의 움직임도 크게 다르지 않다. SK그룹은 제약ㆍ화학 계열사 중심으로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SK케미칼은 연간 직원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오픈마켓 11번가, 길안내서비스 T맵, 콘텐트마켓 T스토어 등 사업영역이 수십개에 이르는 SK플래닛도 핵심사업에 강화를 위해 사업영역을 줄이는 중이다. 두산중공업은 52세 이상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11월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2014년 실적악화에 시달린 포스코와 현대중공업도 비非주력사업을 매각하는 등 대대적인 사업 개편에 나서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증권과 현대자산운용을, KT는 렌털사업을 매각을 추진 중이다.

문제는 구조조정 대상자가 몸을 의탁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고용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탓에 재취업은 여의치 않다. 퇴직자의 마지막 은신처 ‘자영업계’ 역시 만만한 곳이 아니다. 한때 퇴직자의 블루오션으로 손꼽혔던 창업시장은 작은 파이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살벌한 곳으로 돌변한 지 오래다. 2015년 민생경제가 더 팍팍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 가계부채의 역습=간신히 구조조정을 피해도 문제가 남는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가계부채의 덫에 걸려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가계부채는 2012년말 963조8000억원에서 2013년말 1058조1000억원으로 이미 1000조원을 넘어섰다. 21014년엔 11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가계부채 규모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살리겠다며 추진한 경기활성화 정책 탓에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실제로 정부가 LTVㆍDTI를 완화한 8월 1일 이후 가계 대출은 한달 만에 약 4조5000억원(311조5000억원→316조원)이 늘었다. 그중 중소득층(3000만~6000만원)과 저소득층(3000만원 이하)의 대출 비중은 총 68.8%(3조1000억원)에 달했다. 정부의 경기부양책으로 중ㆍ저소득층의 부채가 늘어났다는 방증이다. 당연히 금융부실이 우려된다. 금융연구원은 “부동산 규제 완화 이후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 향후 가계부실과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악화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경제전문가들도 “미국의 금리인상이 가시화되면 국내 시장의 금리도 상승해 가계부채 상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가계부채, 금융부실 초래할 가능성

중요한 건 부작용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거다. 2014년 1~10월 개인인회생 신청건수는 9만3105건에 달한다. 2013년 같은 기간보다 7.6% 늘어난 수치다. 이런 추세라면 2014년 개인회생 신청건수는 2013년 10만5885건을 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정부는 가계부채를 늘리는 부동산 시장 활성화 정책만을 고집하고 있다. 최근 추진 중인 부동산 3법(분양가 상한제 폐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유예 연장, 재건축 조합원 3주택 분양 허용)이 대표적이다. 2015년 수많은 서민이 가계부채의 덫에 빠져 허우적거릴지 모른다.

 
■ 약자들이여! 뭉쳐라=민생이 갈수록 팍팍해지면서 약자들이 똘똘 뭉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자체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한편 직접 문제해결을 꾀하는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청년층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2010년 결성된 청년단체인 ‘민달팽이 유니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단체는 2014년 3월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민달팽이 협동조합’을 만들고, 일정액(3만~100만원) 이상 출자금을 납부한 조합원에게 주택을 우선 공급하고 있다. 조합원들끼리 모여 주택을 짓거나 조합이 원룸 건물을 통째로 빌려 장기 계약을 하는 방식으로 임대료를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하는 식이다.

힙합그룹 리쌍의 건물 임대차 분쟁을 계기로 결성된 ‘맘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맘상모)’은 2013년 ‘전국상가세입자협회’로 공식 출범했다. 법에 명시되지 않은 상가 권리금과 허술한 임대차 보호 규정 탓에 불이익을 당하는 임차상인들이 모여 단체를 만든 것이다. 이들은 임대인의 계약 갱신 거절이나 매매 등의 이유로 권리금을 보장받지 못하는 지금의 임차법을 지적하고 관련 법개정을 통한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2013년 8월에는 아르바이트 노동조합까지 생겼다. 일반 직장인들의 전유물인 듯 보였던 조직을 아르바이트 종사자들도 갖게 되면서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강자의 횡포도 꾸준히 드러나고 있다. 최근 아르바이트 노조는 글로벌 기업 맥도날드의 임금 착취 행태를 폭로하기도 했다.

■ 반갑反甲 정서의 확산=약자연합의 등장만큼 주목되는 건 권력자, 재벌 등 기득권을 질타하는 ‘반갑反甲’ 정서의 확산이다.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리턴’ 사건이 핫이슈로 떠오른 것도, 대한항공과 국토교통부의 짬짜미 논란이 불거지자 대다수 국민이 공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지금껏 기득권의 잘못에 대한 처벌이 엄정하지 못했다는 거다. 2010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동생 최철원 M&M 대표가 고용승계 문제로 항의하던 노동자를 사무실로 불러 야구방망이로 구타했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건 대표적 사례다. 이번 땅콩리턴의 당사자 조현아 전 부사장의 처벌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기득권보다 강한 집단의 힘

실제로 대중은 이미 갑질을 휘두른 이들에게 응분의 처벌을 내리기 시작했다. 2013년 대리점들에게 갑질을 했다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은 남양유업의 사례는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이후 영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 2012년 637억원이던 영업이익이 2013년 마이너스 174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갑의 추태를 바로잡는 힘은 ‘집단’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 집단지성의 맹활약=2015년엔 이런 집단의 힘이 더 강해질 것 같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고, 그 모임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다. 물론 이전에도 집단지성은 존재했다. 독재에 항거한 이들을 위해 법률 자문을 맡아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학생들의 권익보호에 앞장섰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전과 다른 게 있다면 ‘전파력’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활성화되면서 ‘집단지성’의 목소리가 사회 곳곳으로 전파되고 있다.

▲ 기업들은 몸집을 줄이며 구조조정 중이지만, 노동자들은 갈 곳이 없다.[사진=뉴시스]
특정인의 목소리가 ‘집단의 힘’을 만들어낼 때도 있다. 가수 이효리가 2014년 12월 18일 자신의 SNS에 올린 ‘쌍용차 문제’가 꼬리를 물고 SNS 공간에서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건 대표적 사례다. 이효리는 당시 “신차 티볼리(쌍용차)가 많이 팔려 함께 일하던 직원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던 회사가 안정되고 해고됐던 분들도 다시 복직되면 정말 좋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티볼리 앞에서 비키니 입고 춤이라도 추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이 ‘집단지성’을 자극한 건 SNS의 힘이다. 

■ 웩더독 현상, 그리고 꼼수=2015년 대한민국엔 위험요소가 여럿 숨어 있다. 민생파탄, 갑을 대립, 반갑 정서 등이다. 그러나 이 문제들은 정치권이 제 역할을 하면 불식할 수 있다. 문제는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이 그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 여당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서부터 정윤회씨를 둘러싼 비선 논란까지 사건이 터질 때마다 논란의 핵심을 명확히 밝히고 해명하기보다는 논점을 흐리는 방식으로 국민의 눈과 입, 귀를 막고 있다. 일명 ‘웩더독(Wag the dog)’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주객전도)’는 뜻이지만, 정치에서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연막을 치고, 본질을 흐리는 속임수 정치’를 뜻하기도 한다.

이런 웩더독 현상은 2015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법적 근거가 부족했던 통합진보당 해체 논란, 세월호 특검 추천위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적합성 논란, 4대강 조사위원회의 조사 과정에 대한 신뢰성 논란 등 민심과 다른 정치권의 행보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약자들의 규합, 집단지성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정덕ㆍ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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