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기반 소액 기부자 모임 나눔2900

페이스북 기반의 개인 소액 기부자 모임 ‘나눔2900’. 이 모임의 특징은 회원들이 내는 기부금 100%를 후원가정에 전달한다는 것이다. 모금 및 후원액수는 페이스북에 투명하게 공개한다. 지금까지 모금액은 1005만5521원으로, 구청의 추천을 받아 실사를 거친 뒤 세 가정을 지원했다. 

▲ ‘송파 세 모녀’가 집세‧공과금과 함께 남긴 유서.[사진=나눔2900 제공]

“죄송합니다. 그래서 매일 2900원씩 모으기를 시작합니다.” 지난 3월 5일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이렇게 시작되는 글을 올렸다. “먹고살 돈, 병원 갈 돈, 집세 낼 돈이 없어서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분을 비롯해, 이 땅에서 살아가기가 너무도 버거워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이웃이 끊이지 않습니다. 사정이 절박한 이들을 위해 저부터 오늘 나서겠습니다. 저는 주로 학교 식당을 이용하는데 이 식당의 저녁 식대가 2900원입니다. 오늘부터 저녁을 거르고 이 돈을 매일 모으겠습니다. 이렇게 모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드리려고 합니다. 페북 벗들의 동참도 조심스럽게 소망해 봅니다.”

그의 이런 제안에 다수의 페벗이 호응했다. ‘나눔2900’이라는 모임도 만들어졌다. 이 교수가 대표를 맡았고 그를 포함해 13명의 회원이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900이라는 숫자는 동덕여대 식당 저녁 밥값에서 따왔다. 회원 수는 2014년 12월 25일 현재 317명. 기업인, 교수, 학생, 주부 등 종사 분야는 다양하다. 그가 5만8000원을 첫 입금한 4월 3일로부터 8개월여, 지금까지의 모금액은 1005만5521원에 이른다. 기부를 하려 커피값이나 평소 즐기는 생맥주를 500cc 줄였다는 사람도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송모씨는 “남편이 집에서 맛있게 식사를 한 날이면 팁이라고 농담을 건네며 돈을 주는데 이 돈을 모아 송금을 한다”고 털어놓았다.

이 교수가 위 글에서 언급한 고통당하는 사람이란 이른바 ‘송파 세 모녀’로 알려진 사람들이다. 세 모녀는 2014년 2월 16일 저녁 송파구 석촌동 반지하 셋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침대 밑엔 번개탄이 담긴 냄비가 있었고, 침대 머리맡에 있던 종이 박스 속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몸을 웅크린 채 숨져 있었다. 삶의 무게가 버거웠던 주인을 만난 탓에 동반 자살길에 동원된 동반동물이었다. 이들은 ‘죄송합니다’로 시작해 ‘죄송합니다’로 끝나는 짧은 유서를 70만원의 집세ㆍ공과금과 함께 주인 아주머니에게 남겼다. 이 교수는 이 사건을 접하고서 “‘죄송합니다’는 말은 염치를 안 이들이 아니라 내가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페이스북엔 이 사건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제안을 하는 글, 안타까워하고 분노하는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었지요. 그래서 ‘내가 하자’, ‘나라도 하자’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눔2900의 특징은 회원들이 내는 기부금이 100% 전액 후원 가정에 전달된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모임 비용 등 운영비는 자체적으로 조달한다. 2014년 12월 22일 열린 이 모임 운영위원 송년회 때 운영위원들은 회비로 11만원을 걷어 식대ㆍ찻값으로 지출하고서 남은 1만2300원을 기부금 통장에 입금했다.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은 기부금의 15% 이내에서 모집비용, 관리ㆍ운영비, 홍보ㆍ인건비 등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기부금을 받는 2만9509개의 공익법인 가운데 외부 검증이 가능할 만큼 재정상태를 공개한 곳은 전체의 1%도 안 된다.

나눔2900은 모금 및 후원 액수를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groups/227423797455223/)에 투명하게 공개한다. 지원 대상은 국가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차상위계층으로 자활의지가 있는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송파 세 모녀’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 세 모녀는 근로능력ㆍ의욕이 있고 염치도 있었지만 국가의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 국가가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초수급자는 지원 대상에서 원칙적으로 배제한다. 이 교수는 “일정 기간 우리가 지원을 하면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될 수 있는 가정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때 가장의 자활ㆍ자립 의지가 필수적입니다. 자활의 과정에서 우리의 지원이 하나의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거죠.”
▲ 소속 회원들의 기부금이 전액 후원 가정에 전달된다는 의미를 담은 손팻말을 들고 ‘나눔2900’운영위원들이 포즈를 취했다.[사진=나눔2900 제공]

지금까지 송파구에서 하나, 성북구에서 둘 모두 세 가정을 지원했다. 해당 구청에서 추천을 받은 후 실사를 거쳤다. 월 70만원씩 최장 1년간 지원을 한다. 12월에 성북구에서 찾아낸 한 가정은 모자 가정이다. 어머니는 말초신경염, 우울증, 확장성심근증 등을 앓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학 입학을 앞둔 아들 이모군이 이 집의 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 이군은 어머니를 간병하려 고교 2학년 때 자퇴를 하고 생활비를 벌었다.

이군은 검정고시를 거쳐 올해 수시에 고려대 세종캠퍼스 수학과와 홍익대 세종캠퍼스 바이오화학공학과에 합격했다. 하지만 어머니를 간병해야 해 등록을 포기했다. 이군은 수시에 합격했어도 제한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서울의 전문대에 지원하겠다고 말한다. 자신이 조치원 기숙사로 내려가 버리면 어머니를 케어할 사람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의 장래 희망은 해외 의료 봉사자다. 실사 때 그에게 해외로 의료 봉사를 가게 되면 어머니를 두고 떠날 거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가 회복돼 함께 떠나는 게 꿈”이라고 답했다.

나눔2900은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한 개인 소액 기부자들의 모임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SNS 상의 기부 단체가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이 교수는 “삶의 한 조각을 남에게 양보하려는 사람들이 있으면 지속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나눔2900은 운영과 기부금 집행이 투명할뿐더러 이 일에 회원들의 기부금을 일절 쓰지 않습니다. 이 원칙이 흔들리지 않고 지켜진다면 이 기부 모임도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요?”
 

 
MINI Interview 이재현 나눔2900 대표
“기부 효율성 면에서는 100% 이상이죠”

“저희 학교의 한 교수님이, 담뱃값이 올라 담배를 끊기로 했는데 이렇게 해서 절약되는 돈을 나눔2900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한갑 덜 피우면 4500원을 기부하는 셈이죠. 자신의 건강도 지키고 남도 돕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이재현 대표는 개인 기부라는 행위를 어떤 긍정적인 활동과 연계하면 긍정적인 일을 하고서 남도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실천하고서 그 성과에 대한 자기 보상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종의 윈윈 게임.

✚ 국가가 복지제도와 정책으로 빈곤층을 돌보는 데도 개인 기부가 필요한 이유가 뭔가요?
“지원할 가정을 선정하기 위해 실사를 나가면 구청의 사회복지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도울 사람은 많은데 예산이 제한돼 있어 정말 안타깝다’고 합니다. 제도와 정책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구멍이 있게 마련이에요.”

✚ 나눔2900의 비전과 과제가 뭔가요?
“비전은 양보와 나눔을 통해 우리 사회의 안전망을 보완하려는 사람들의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회계 투명성 100%에, 기부금의 누수가 전혀 없어 효율성(총 경비 대비 순수 사업비)도 100%죠. 한 달에 한 가정씩 지원할 가정을 늘려나가 매달 12가정을 지원하는 게 목표이자 과제입니다. 월 150만원가량 되는 현재의 모금액으로는 한 달에 두 가정밖에 지원할 수 없어요.”

✚ 지속적인 개인 소액 기부에 관심은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실행에 옮기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요리조리 재지도 말고 작은 액수로라도 기부를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나눔2900은 단돈 1원도 허투루 쓰지 않습니다. 실사할 가정을 찾을 때 실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해당 가정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사고, 방문 후에도 쌀ㆍ김치 등을 퍼나르니 효율성 면에서는 100% 초과 달성이라고도 할 수 있죠.”
이필재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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