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코스피 풍문 추적해보니…

▲ 증시에는 다양한 기업 풍문이 떠돈다. 그러나 기업의 답변은 “검토 중이다”로 비슷하다. [사진=뉴시스]
증시에는 다양한 기업 풍문風聞이 떠돈다. 거래소는 투자자를 위해 해당 기업에 사실 여부를 묻는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항상 같다. “검토 중이다. 하지만 확정된 게 없다.”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애매하다. 그래서 더스쿠프가 2013년 1월 유가증권시장에 떠돈 풍문의 사실 여부를 조사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57%가 현실이 됐다.

# 개인투자자 A씨. 그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B기업의 풍문 답변을 확인했다. “시장에 ○○기업 인수설이 돌고 있는데 사실이냐”며 거래소가 B기업에 공시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B기업은 “검토 중이지만 확정된 내용은 없다. 추후 확인되면 재공시하겠다”고 공시했다. 이날 B기업의 주가는 소폭 상승했다. 그러나 A씨는 애매한 답변에 혼란만 가중됐다. “도대체 인수한다는 거야. 안 한다는 거야.”

증권시장에는 수많은 기업 풍문風聞이 떠돈다. 그래서 거래소는 풍문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기업에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한다. 바로 ‘풍문 답변’ 공시다. 주로 인수합병(M&A)ㆍ자금조달ㆍ횡령ㆍ공급계약ㆍ지분매각 등 경영상 중요한 내용이다. 때문에 투자자가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기업 주가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투자자들은 풍문 답변 공시를 투자 판단의 기준으로 보지 않는다. 단순히 참고하는 선에서 그친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이 하는 답이 뻔하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원하는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다. 기업의 답변 공시는 대개 이렇다. “검토 중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확정된 내용은 없다.” “추후 내용이 확인되는 시점 또는 1~6개월 이내 재공시하겠다.” 이후 기업은 계속해서 재공시를 낸다. 역시 답은 “검토 중이다”로 똑같다. 그러다 기간이 길어지면 거래소와 협의를 통해 주요 경영사항 자율공시로 돌린다. 똑같은 답을 계속해서 공시할 필요가 없어서다.

 
투자자들은 이렇게 답변 공시가 된 풍문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풍문 답변 공시를 보고 투자에 나서진 않는다. 이때 들어가면 한발 늦기 때문이다. 풍문 공시가 떴을 때는 이미 소문이 퍼지고 한참이 지난 경우가 많아서다. 투자의 기본 법칙 중 하나가 바로 ‘끝물에 들어가지 않는다’다. 그러나 초보 투자자는 다르다. 그들은 거래소의 풍문 조회에 따른 기업의 답변 공시를 소문의 시작이라고 본다. 또한 거래소를 믿고, 조회 공시를 요구한 풍문이 사실이라고 여긴다. 기업이 “검토 중”이라며 다소 모호하지만 긍정적인 액션을 취한 것도 한몫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풍문은 사실이 될까. 더스쿠프가 2013년 1월 한 달간 유가증권시장에 떠돈 풍문을 추적했다. 동양ㆍSTX 등 법정관리에 들어가 구조조정이 진행된 기업은 제외했다. 법원ㆍ채권단이 사실상 기업의 주요 경영사항을 결정하기 때문에 기업 자체 경영과는 거리가 멀어서다. 거래소는 1월 한 달간 총 17개 기업에 풍문 조회를 요구했다. 그중 14개 기업이 풍문을 “검토 중이다”고 공시했다. 무려 82%에 달한다.

사실 관계를 보면, 검토 중이라고 밝힌 14개 기업 중 8건(57%)은 시간이 지난 후 현실이 됐다. LG상사(오만 석유화학 플랜트 공장 건설)ㆍ깨끗한나라(유상증자)ㆍ금호산업(베트남 금호아시아나플라자사이공 지분 매각)ㆍ대우조선해양(아랍에미리트 인공섬 설비 공사)ㆍ미래산업(1공장 매각)ㆍLG디스플레이(OLED 양산라인 투자)ㆍ네이버(게임본부 회사 분할)ㆍKG모빌리언스(웅진패스원 인수) 등이다. KT(모로코 통신사 마록텔레콤 인수)ㆍ한국가스공사(모잠비크광구 지분 추가 매입)ㆍ금호석유화학(아시아나항공 지분 매각)ㆍ코웨이(수처리사업 매각)ㆍ키스톤글로벌(웨스트버지니아 광산 인수) 등 5건(36%)은 풍문에 그쳤다. 1건(두산건설, 네오트랜스 매각)은 여전히 검토 중이다.

기업들은 왜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일까. “검토 중”이라고 말하는 게 가장 안전한 답변이기 때문이다. 풍문이 확실히 아니라면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밝힌다. 그러나 진행되고 있는 건에 대해선 미래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확답을 하지 못한다. 만약 “사실이다”고 밝혔다가 결과가 반대로 나오면 불성실 공시로 지정된다. 이때마다 감점을 받고, 이는 상장 폐지 요건이 된다. 풍문이 아니라고 단정했을 때 주가가 하락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풍문 답변 공시를 한 18개 기업 중 “검토하지 않고 있다” “사실이 아니다”고 답한 3개 기업(포스코ㆍKG케미칼ㆍKG이니시스)은 모두 주가가 하락했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나랴

포스코는 2013년 1월 15일 프랑스 엔지니어링업체 GTT 인수설을 부인했다. 이날 포스코의 주가는 전일 대비 0.97 % (3500원) 하락했다. 같은 해 1월 31일 KG케미칼과 KG이니시스가 웅진패스원 인수와 관련 “검토 또는 추진 중인 사실이 아니다”고 공시하자 주가는 각각 0.88%(100원), 3.46%(450원) 떨어졌다. 반면 “검토 중”이라고 공시한 기업 15개 중 10개 기업(67%)은 주가가 상승했고, 5개 기업(33%)은 하락했다.

물론 기업이 풍문과 관련 가능성이 크고, 낮고를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자세한 부분까지 공시할 필요는 없다. 공시 자체가 법률적으로 확정된 정보를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송민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이 공시하는 풍문 답변은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비밀성이 담겨 있다”며 설명했다. “정보의 투명성을 봤을 때 100%가 완전히 투명한 단계라면 풍문 답변 공시는 50% 정도로 볼 수 있다. 100%가 아니다. 투자자가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기업이 진행하고 있는 중요한 사업이 시장에 알려지면 그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점도 정확한 답변을 하지 않는 이유다. M&A의 경우, 거래가 진행되고 있는 게 알려지면 피인수업체의 가격이 올라가고 협상이 결렬된다. 또한 기업이 신사업 투자, 계약건을 공개하면 경쟁사에 정보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나서서 시장에 알리지 않는다. 결국 “검토 중”이라고 공시하는 게 가장 좋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투자자가 풍문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알 수 있는 공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양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거래소가 풍문 조회 공시를 내는 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다”며 “기업이 검토하고 있다고 공시한 풍문이 어느 정도 사실이 됐는지를 수치화해서 투자자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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