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버트 비어만 현대차 부사장

▲ 현대차·기아차가 BMW 출신 알버트 비어만 부사장을 영입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현대차가 고성능차 개발에 나섰다. 이 분야 전문가로 통하는 BMW 출신 알버트 비어만 부사장도 영입했다. 가격이 매력적인 차량에서 이제는 성능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은 벌써 ‘비어만 효과’를 두고 주판알을 튕긴다. K시리즈를 히트시킨 피터 슈라이어 현대차ㆍ기아차 디자인 총괄사장과 비교하는 분석도 나온다. 과연 현대차의 ‘비어만 효과’는 통할까.

현대차그룹이 질적 성장을 위해 새로운 카드를 내놨다. 현대차는 지난해 12월 22일 BMW의 고성능차 개발총괄책임자인 알버트 비어만(Albert Biermann)을 현대차ㆍ기아차 차량시험고성능차 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그는 올 4월 1일부터 현대차ㆍ기아차 남양연구소에서 주행성능ㆍ안전성능ㆍ내구성능ㆍ소음진동ㆍ차량시스템개발을 총괄한다.

현대차는 2000년 후반 들어 고속 성장하며 판매 대수 기준 세계 5위권의 자동차 기업으로 도약했다. 지난해에는 세계 시장에서 800만대를 판매했다. 그러나 동력 성능 등 기술적인 면에선 글로벌 메이커에 비해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연비가 좋으면서도 출력 성능을 향상시키는 기술과 고성능 퍼포먼스 능력이 떨어진다. 비어만 부사장을 영입한 목적이 바로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비어만 부사장은 세계적인 고성능차 개발 전문가로 통한다. 그는 1983년 BMW그룹에 입사해 고성능차 주행성능ㆍ서스펜션ㆍ구동ㆍ공조시스템 개발을 담당했다. 최근 7년 동안에는 BMW 고성능차 개발과 모터스포츠 관련 사업을 맡은 BMW ‘M’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비어만 부사장은 기술력 향상을 위해 영입된 해외 임원이라는 점에서 피터 슈라이어 현대차ㆍ기아차 디자인 총괄사장과 비교된다. 기아차는 2006년 ‘디자인’을 강조하며 폭스바겐ㆍ아우디 디자인 총괄 책임자를 지낸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기아차는 디자인을 확 바꾼 K시리즈를 연이어 출시하며 고속 성장했다. 기아차는 2008년 흑자로 돌아섰고, 2009년 K시리즈 첫 모델을 선보이며 영업이익 1조1444억원을 기록했다. 2013년에는 매출 28조3325억원, 영업이익 1조4816억원을 달성했다.

현대차가 비어만 부사장에게 기대하는 것도 이런 ‘피터 슈라이어 효과’다. 단시간에 기술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를 영입하는 것이다. 비어만 부사장과 현대차는 우선 양산 차량의 주행성능을 유럽 프리미엄 자동차 수준으로 한 단계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선 고성능 자동차 기술 개발이 필수다. 폭스바겐을 보자. 폭스바겐은 고성능ㆍ고급 브랜드인 포르쉐와 아우디를 보유하고 있다. 두 브랜드가 개발한 기술은 폭스바겐의 다른 브랜드에 적용된다.

BMW와 벤츠의 경우, 각각 ‘M’ ‘AMG’ 등 고성능 차량을 개발ㆍ생산하며 기술력을 쌓고 있다. 이 브랜드는 양산차에 비해 높은 가격이지만 소비자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비어만 부사장이 몸담았던 BMW의 경우, M 시리즈가 BMW 전체 이익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이익 기여도가 크다. 이것이 현대차가 바라는 질적 성장이지만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슈라이어 사장의 성과와 비교하면, 기술 개발과 디자인은 차이가 있다. 디자인은 패션과 비슷하기 때문에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기술 개발과 비교해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현대차 ‘비어만 효과’ 통할까

그러나 기술을 쌓는 것은 상당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축적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현대차 안팎에선 고성능차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나 “아직은 이르다” “쉽지 않은 시장이다”라는 의견이 우세했고, 현 상황에 집중했다. ‘품질’을 강조하며 양산차 판매 확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일본 자동차 업체가 고성능ㆍ고급 자동차 시장에서 참패한 것도 고성능차를 향한 현대차의 도전을 막아 세웠다. 혼다ㆍ인피니티가 고성능ㆍ고급차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반짝’ 성과를 내는 데 그쳤다. 그나마 1989년 고급차 브랜드인 렉서스를 출시한 도요타가 세계 시장에서 연간 40만대를 판매하며 선방하고 있는 정도다.

 
현재 고성능 프리미엄 시장은 BMWㆍ벤츠ㆍ아우디 등 독일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다. 연간 500만대를 판매하며 고성능ㆍ고급차 시장의 83%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독일 브랜드는 1920~1930년부터 슈퍼카 경진 대회에 참여하며 고성능 기술을 쌓았다. 이 때문에 고성능차 시장엔 장기적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 특히 기술개발은 돈에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난다. 결국은 현대차가 기술 및 연구개발(R&D)에 얼마나 적극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15조원을 R&D에 투자했고, 도요타는 10조원, GM은 8조원이다. 반면 현대차는 3조원(기아차 포함)을 투자했다. 현대차가 비어만 부사장 한명을 영입했다고, 이 격차를 금세 따라잡는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비어만 부사장이 엔지니어가 아닌 리더로 얼마나 큰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는 한국 자동차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없다. 특히 R&D는 폐쇄적인 파트다. 더욱이 현대차는 해외 기업과 공동으로 기술개발에 참여한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 한 자동차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차가 친환경차 개발에 늦었던 이유는 내연 기관 R&D 파트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이들의 파워가 강해서 친환경으로 가는 게 어려웠다. 전기차로 가지 못한 것도 수소연료전지차 파트가 강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R&D는 ‘풍선 효과’가 적용된다. 한 파트에 투자비용이 늘면 다른 파트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비용이 줄어드는 파트에서 이를 쉽게 놓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는 설명이다. 이런 현대차의 R&D 문화를 비어만 부사장이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현대차 관계자는 “가솔린과 디젤 차량의 판매 볼륨이 높기 때문에 투자 역시 상대적으로 많이 이뤄진 것이지 전기차·수소연료전차 등 친환경차 개발에 소홀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2020년까지 현재 7개 차종인 친환경차를 22개 차종 이상으로 확대해 친환경차 분야의 강자로 부상할 계획이다”고 강조했다.

현대차의 R&D 문화 바꿔야

이를 위해선 비어만 부사장과 현대차 R&D 인력의 조화가 필수다. 업계에선 보통 R&D 부문장이 회사를 옮기면 현 팀원이나 함께 일했던 옛 동료가 같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손발을 맞췄던 사람들과 일해야 성과를 낼 수 있어서다. 이들과 현대차 R&D 인력이 얼마나 뭉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박사는 “현대차의 비어만 부사장 영입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고성능차 개발을 통한 양적 성장이라는 방향은 맞다”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비어만 부사장이 혼자서 하는 것은 무리다. 현대차가 얼마나 R&D에 투자해 뒷받침하고, 실질적인 R&D 인력이 똘똘 뭉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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