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부상하는 오너 3ㆍ4세 리스크

▲ ‘조현아 파문’으로 오너기업 3‧4세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제도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사진=뉴시스]

새해 한국 재계에 ‘오너 3ㆍ4세 리스크’가 큰 숙제로 등장했다. 2014년 12월 30일 구속된 조현아(41)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소위 ‘땅콩 회항’ 사건이 일파만파一波萬波로 번진 결과다. 사실 이 사건이 연중 가장 분주한 지난해 12월에 발생했던 관계로 일반인들은 사건 쫓아가기에 바빴다. 따라서 새해 시간을 갖고 ‘오너 3ㆍ4세 리스크’의 제도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질 전망이다. 과연 이 숙제를 풀어낼 수 있을까.

‘땅콩 회항’ 사건은 이미 조현아 전 부사장이나 한진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와 재계 전체의 숙제로 비화한 느낌을 준다. 심지어 대기업 오너가家를 보는 눈이 ‘땅콩 회항’ 사건을 전후로 달라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올 것이 왔다”며 차제에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렸다. 불과 한달 만의 일이다. 이 사건이 왜 그토록 큰 폭발력을 지녔을까.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부모 잘 만난 대기업 오너 3세의 도가 넘는 ‘갑甲질’에 대중의 반발 심리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건 아닐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고 휘슬블로잉(내부고발)이 확산돼 잘나간다는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실시간으로 노출되는 시대 상황도 사태 진전에 한몫했다.

이런 상황에선 영원히 ‘을乙’로 치부되던 회사원들이 예전의 회사원이 아니다. 고발하고 스스로 자존감을 찾으려 한다. 이번 사건의 또 다른 당사자였던 대한항공 사무장이 바로 그런 케이스다. 지난해 세월호 사고를 겪으면서 믿고 기댈 만한 사람이나 기관ㆍ조직에 대한 대중들의 실망감이 유난히 컸던 점도 이번 사태 악화의 요인이 됐다. 재계는 이번 사태 추이를 숨을 죽인 채 지켜보고 있다. 전경련 등은 아무런 논평이나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사건 이후 승진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솔라원 상무(왼쪽)와 세아그룹 오너 3세 이태성 전무.[사진=뉴시스]

한국의 기업 역사가 대개 60년에 이른 만큼 오너 3ㆍ4세 승계가 본격화할 시기도 됐다. 하필 이런 때에 그 사건이 터졌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오너들은 유구무언有口無言이면서도 속으로는 많은 계산을 하고 있어 보인다. 우선 집안 단속부터 하는 분위기다. 3ㆍ4세들에게 말조심, 행동조심하고 회사 일 열심히 하라며 독려하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 집 바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번 여파가 수면 아래로 들어간 경제민주화나 재벌개혁 같은 담론으로 이어질까 부담스러워 한다. 오너 3•4세들의 경영권 승계 움직임에 제동이 걸리지나 않을까 걱정도 한다. 최태원 SK 회장 등 구속 중인 일부 오너들의 연말연시 가석방 움직임이 이번 사태로 오는 2월로 넘어가게 됐다는 분석도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새해엔 경제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반反기업 정서가 확산되고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집중공격이 있을까봐 염려도 한다. 일부에선 이번 일로 오너 3ㆍ4세들이 한꺼번에 욕을 먹고 있다며 반발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런가 하면 오너 3ㆍ4세가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서면 지금보다 문제가 더 많아질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조현아 사건은 문제의 시작”


역시 오너 3ㆍ4세 문제를 한국 경제의 주요 ‘리스크’로 규정하고 제도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은 재계 밖에서 많이 나온다. 오너 3ㆍ4세 경영자들을 일제히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서부터 이사회나 주주총회의 견제 장치를 제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차제에 그룹기업의 오너 3ㆍ4세 교육 강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평사원 때부터 충분한 기간 여러 부서를 돌며 경영수업을 한 다음 엄정하게 능력을 평가해서 경영자 선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처럼 평균 입사 3~4년 만에 보란듯이 임원으로 승진한 사람들이 평균 22~23년 걸려 임원이 되는 일반 직장인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자기 그룹이 아닌 다른 기업에 취업해 훈련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가세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대기업 ‘오너 리스크’를 막기 위해 ‘조현아 방지법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회사를 자기 소유물로, 직원을 머슴처럼 여기는 일부 오너 3ㆍ4세의 시대착오적인 의식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들의 경영 실패가 사회ㆍ경제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미칠 수 있기 때문. 최근까지 창업자에서 2세로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는 형제간 분쟁이 비교적 많았다. 3ㆍ4세로 넘어 오면서는 그런 분쟁보다 ‘경영 능력’이 문제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를 거듭할수록 오너 숫자는 많아지는데 비해 경영을 모두가 잘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 1세가 창업자라면 2세는 일종의 동업자로서 사람을 중시하고 조직의 규율을 중시하는 것을 몸으로 터득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3세부터는 본인이 고생해서 만든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감이 부족하고 능력과 자질도 선대에 비해 뒤처질 가능성이 크다. 기업 성장에 참여하지 않은 채 과실만 향유하는 세대라 사회와 종업원을 대하는 인식과 자세가 다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특권의식은 과도한데 책임감은 부족하다는 얘기다. 또한 오너 3ㆍ4세들이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조현아 사건은 오너 3ㆍ4세들이 사회와의 공감 능력을 상실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게 했다”고 꼬집었다.

한편 오너경영 체제가 오히려 장점이 많다는 반론도 있다. 그간의 사정을 살펴보면 한국에서 전문경영인 체제가 반드시 더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 따라서 오너 3ㆍ4세 스스로가 특권의식을 버리고 책임감과 능력을 갖추는 일이 중요한데 말처럼 쉽지 않은 게 탈이다. 최근 국내 주요 기업그룹 20곳을 분석해 봤더니 3ㆍ4세가 기업경영(경영수업 포함)에 참여하고 있는 곳이 무려 19곳에 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오너 3ㆍ4세가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곳은 롯데그룹뿐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의 오너 3세는 모두 44명. 이 중 34명이 기업경영에 참여하거나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는 것. 기업경영에 참여하지 않은 10명 중 2명을 제외한 나머지 8명은 국내외에서 학업 중이거나 주부였다. 사실상 성인 오너 3세 거의 모두가 그룹 및 전후방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는 분석이다(표 참조).

조현아 파문속 승진한 오너 3ㆍ4세들

2014년 연말 조현아 광풍 속에서도 일부 그룹기업이 3ㆍ4세 승진 인사를 단행해 눈길을 끌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32) 한화솔라원 영업실장이 상무로 승진해 경영 승계의 터를 닦은 것으로 풀이됐다. 세아그룹 오너 3세인 이태성ㆍ이주성(37) 상무가 나란히 전무로 승진해 3세 경영을 본격화한 느낌을 주었다. 지난 11월말 승진한 LG그룹 구광모(37) 상무는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으로부터 ㈜LG 주식 190만주(1220억 상당)를 증여받아 지주회사인 ㈜LG의 3대 주주로 올라섰다. 그가 구본무 LG 회장의 장남인 만큼 4세 경영 승계가 탄력을 받을 것이란 관측을 낳았다. 이래저래 새해엔 오너 3ㆍ4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도가 한층 더 높아질 전망이다.
김은경 더스쿠프 객원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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