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잡는 비정규직 대책

▲ 비정규직법이 처음 발효된 2007년 이랜드에서는 비정규직 대량해고 사태가 일어났다.[사진=뉴시스]
박근혜 정부가 2014년 12월 29일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종합대책을 내놨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ㆍ남용을 방지하고, 근로조건의 격차를 시정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거다. 하지만 이 대책은 2009년 재계의 주장을 수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2009년 리턴스’, 그 문제점을 파고들어가 봤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 ‘미생’에서 주인공 장그래는 오상식 차장에게 이렇게 묻는다. “이렇게만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거죠?” 오 차장은 “아니, 안 될 거다”라며 단호하게 말한다. 실제로 드라마에서는 최 전무를 비롯해 김 부장, 박 과장 등이 다양한 이유로 원인터내셔널에서 쫓겨난다. 심지어 비정규직 장그래를 정규직으로 만들기 위해 애쓴 오 차장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사한다. 정규직 자리가 그만큼 줄어든 거다. 그런데도 2년간 열심히 일한 비정규직 장그래는 정규직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오히려 회사는 새 정규직 인턴을 뽑는다. 과연 드라마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흔히 비정규직법이라 하면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11월에 재ㆍ개정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일컫는다. 2007년 7월부터는 비정규직 사용기간(2년) 제한을 골자로 하는 기간제법이 시행됐다. 애초 근로기준법에는 고용형태를 유기계약과 무기계약 둘로 나누고, 유기계약을 1년 이상 유지할 수 없도록 돼 있었다. 당시 노동계가 기간제법을 두고 “사용기한을 2년까지 연장하고 문서화함으로써 비정규직을 법적으로 허용했다”고 비판했던 건 이 때문이다. 2년 내에는 언제든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이나 다름없어서다. 노동계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도 커질 것이라 우려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비정규직법이 처음 발효된 2007년 이랜드는 계열사 홈에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해고하고, 2008년에는 결국 홈플러스에 매각했다. 이 내용을 다룬 영화가 바로 ‘카트’다. 2009년에는 GM대우에서 비정규직 1000여명을 대량 해고했다. 방송사인 KBS도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했다. 일부 사업장에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이뤄지기도 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다. 20 10년 4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기간제법 적용 근로자 120만8200명 중 2년 이상 근무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들은 7만4800명(6%)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무기계약직(38만7000명ㆍ32%)이 되거나 이직(48만4300명ㆍ40%)했다. 특히 전체 이직자 67만1700명 중 26만800명(39%)은 본인의 의사가 아닌 비자발적으로 이직을 했다. 고용불안뿐만이 아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118만원(2007년 3월)에서 140만원(2012년 8월)으로 벌어졌다. 

비정규직법 개정 2년, 아픈 성과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비정규직에게 기업은 정규직과 같은 임금과 후생복리를 적용할 이유가 없었다. 차별은 당연했다. 2013년 3월 경제민주화 분위기를 타고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는 비정규직법 개정안이 통과된 건 이 때문이다. 정기 명절 상여금, 성과금, 근로조건과 복리후생 등에 있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별을 받지 않도록 법규로 구체화한 거다.

 
그렇다면 이 개정안은 알찬 열매를 맺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법 개정이 차별금지에만 초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전체 비정규직 수는 2012년 8월 842만명에서 2014년 8월 849만명으로 더 늘었다.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장려 정책이 비정규직의 급증을 부채질했다. 정규직 전환비율도 기대치를 밑돌았다. 2014년 10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2013년 비정규직 이동성 국가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비정규직이 1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11.1%에 불과했다.

3년 뒤에는 22.4%로 올랐지만, 비정규직이거나 실업자가 된 비율은 57.6%나 됐다. 10명 중 단 1~2명만 정규직으로 전환된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은 49.8%에 머물렀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제대로 인상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대량해고도 여전했다. 2013년초 공공부문에 속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약 6500명이 계약만료로 대량 해고된 것은 대표적 사례다.

결과적으로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의 처지나 현실 비정규직의 처지나 똑같다는 얘기다. 비정규직의 확산과 이로 인한 차별적 처우는 사회양극화는 물론 내수진작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고용불안감 확산으로 사회통합도 어렵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혁하겠다며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놓은 이유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종합대책도 비판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정규직 해고가 쉬워져야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정규직 과보호론’에 토대를 두고 있어서다.

문제는 ‘정규직 과보호론’이 이명박 정부 때 나왔던 논리라는 점이다. 2008년 10월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비정규직법으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신분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2009년 7월부터 100만명이 넘는 근로자의 고용이 불안해진다”고 주장하며 고용대란설에 불을 지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기간제와 파견제의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자’는 개정안의 내용도 사실 2010년 3월 이명박 정부의 노동부가 입법예고했던 거다.

▲ ‘정규직 과보호론’은 이미 2009년 정부와 재계로부터 나온 주장이었다.[사진=뉴시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꺼내들었던 ‘정규직 과보호론’과 ‘비정규직법 개정안’은 노동계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 논리와 개정안에 전경련ㆍ경총 등 재계의 바람이 지나치게 많이 투영돼 있었기 때문이다. 전경련과 경총 등은 2010년 7월 “비정규직 문제의 바람직한 해결책은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사용기간 제한 폐지와 정규직의 과보호를 완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렇게 사장됐던 논리와 개정안을 박근혜 정부가 다시 꺼내든 것이다.

‘정규직 과보호론’은 재계 주장

이런 분위기는 이미 예상됐다. 정부가 2014년 2월 발표한 경제정책 3개년 계획에 파견규제 완화, 임금피크제 확산 등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7월 고용ㆍ노동분야 주요정책방향에서도 같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55세 이상 고령자에게 제조업 직접생산공정과 절대금지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에서 파견이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방안, 일정소득 이상 고소득 전문직은 절대금지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에서 파견을 허용하고 파견기간 제한도 완화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10월에는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국정감사에서 “30대 노동자들이 기간연장을 요구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11월에는 이찬우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이 “정규직 해고에 대한 절차적 요건 합리화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기업이 겁이 나 인력을 뽑지 못한다”며 “정규직 처우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공식화했다.

물론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2009년판보다 개선된 것들이 있다. 기간제 노동자를 4년이 지나서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이직 수당을 지급하도록 했다. 3개월만 근무해도 퇴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건 진일보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법률적 해석을 살펴봐도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비정규직 문제를 악화시킬 소지가 크다.

먼저 ‘근로계약 해지 기준 명확화’다. 이는 교육이나 배치전환, 임금조정 등 ‘해고회피노력’이라는 절차적 요건만 갖추면 낮은 성과를 낸 근로자를 언제든 자를 수 있도록 해고요건을 완화한 것이다. 법무법인 원의 김도형 변호사는 “그동안 법원은 저성과를 이유로 징계를 할 경우 그 정당성을 다퉜지 통상적인 해고의 정당한 사유로 평가하지 않았다”며 “해고를 제한했던 법리의 엄격성이 약화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질적 요건보다 형식적 절차에 따라 노동자들이 해고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노조활동에 적극적인 노동자의 경우 인사고과를 낮게 받을 수 있어 노조활동을 막는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취업규칙 변경 관련 기준ㆍ절차 완화’도 문제다. 노동자 과반이 찬성해야 변경 가능한 노사간 근로규칙을 노사협의회나 개별 노동자의 동의만으로 사측이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불안에 떠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근로조건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마저 잃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직무ㆍ성과급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역시 꼬집어 봐야 한다. 비정규직의 임금체계가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사용자 편의에 따라 임금을 조정할 수 있으면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이 더 악화될 수 있어서다. 김도형 변호사는 “연공급 체계를 통해 근속연수가 짧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추고, 정규직에는 직무성과급 체계를 적용해 근속년수가 긴 노동자들의 임금도 낮추는 새로운 저임금구조화”라고 지적했다.

2009년판 대책 왜 다시 꺼냈나

문제는 더 있다.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과 ‘파견확대’는 기간제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장기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으로 숙련도가 높아져 정규직으로 전환될 확률도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사용기간 연장은 노동자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만약 원치 않게 기간연장이 불허되면 경력단절로 이어지고, 그러면 영구적인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할 수 있다.

 
‘파견ㆍ도급 판단기준 명확화’는 불법파견을 합법화할 수 있는 정책으로 비판받고 있다. 원청이 하청의 산업안전ㆍ복지ㆍ훈련제공(직무교육) 등에 관여하는 것은 파견이나 직접고용을 의미한다. 실제로 불법파견 소송에서 모두 불법파견의 징표로 거론되는 것들이다. 이런 경우 노동자는 하청 노동자가 아니라 원청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데 파견ㆍ도급의 판단기준을 명확화한다는 명목으로 불법파견의 기준을 무력화할 수 있다.

김도형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의 ‘정규직 과보호론’의 목적은 사실 자의적 해고와 저임금 순환 고리를 만드는 ‘노동권 일반에 대한 후퇴’”라면서 “노동법상 노동인권 보호의 핵심제도들을 무력화하는 해고ㆍ임금ㆍ근로시간 유연화를 비롯해 비정규직 노동시장을 확대하는 시장 교란책들을 비정규직 보호대책인 것처럼 내놓는 기만행위는 당장 중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2009년에 나온 재계의 주장을 재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비정규직법 오해와 진실’이라는 자료집을 발간했다. 이 자료집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사용자는 2년 범위 안에서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고, 2년을 초과해 사용하면 무기계약직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기업은 2년이 넘기 전에 계약만료 시점에 언제든지 고용을 종료할 수 있다. 기업에 비정규직을 2년 사용하면 반드시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강제할 근거도 전혀 없다.” 당시 노동계가 우려한 것들을 정부 스스로 고스란히 인정한 셈이다. 2009년을 기초로 탄생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결코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대책이 아니라는 얘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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