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비정규직 대책의 역주행

▲ 사회보장제도가 탄탄한 유럽의 노동 유연화 정책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사진=뉴시스]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의 필요성을 주장할 때마다 이를 통해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내수 경제가 위축되고, 사회 불안이 가중됐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노동시장의 질이 떨어져서다.

2007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다른 유력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했다. 왜 그랬을까. 노동시장 유연화를 기본으로 한 이명박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이 국민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기업이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되면 경제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노동시장 유연화다. 하지만 노동시장 유연화는 오히려 고용불안정과 저임금 일자리를 늘려 전체 노동시장의 질적 수준을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 개선을 공약으로 내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허덕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숫자에 매몰돼 일자리를 더 만들기보다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비정규직 차별을 시정할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대기업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임기 2년이 지난 지금 들고 나온 비정규직 해법은 또다시 노동시장 유연화다. 12월 29일 발표된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의 골자는 기존 비정규직 고용기간의 연장이다. 정부는 “2년마다 다가오는 해고의 위험을 4년으로 연장해 안정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며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는 근로자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정규직 전환을 유도해 고용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과연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린다고 비정규직 고용이 줄어들거나 고용불안정이 해소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업이 해고가 자유로운 비정규직 노동자를 더 오래 고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거나 다름없어서다. 이명박 정부 때보다 훨씬 강력한 노동시장 유연화다. 물론 4년 고용 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회사가 이직 비용을 지불하도록 했다. 그러나 지금도 비정규직보호법에 명시된 ‘2년 후 정규직 채용’을 회피하는 상황에서 더 쉬운 비정규직 고용을 보장받을 기업이 해당 규정을 지킬 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더구나 이번 대책은 현 정부의 내수 중심 경제성장 기조와도 어긋난다. 정부는 비정규직법을 통해 기업이 고용에 더 큰 투자를 할 것이라고 하지만, 기업의 고용 투자 확대는 인건비 저하보다는 경제성장 수준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크다. 비정규직법 개정으로 기업의 고용 투자 증대를 기대하기 어렵단 얘기다. 또 노동자의 임금 소득 비중이 줄어 소비를 더 위축시킬 수도 있다.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의 정당성을 유럽의 노동시장 유연화에서 찾는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 수준이 낮다는 거다. 하지만 실제 대외협력개발기구(OECD)에 보고되는 노동시장 유연화 관련 지표들은 해당 국가의 고용ㆍ해고 관련 법들을 평가해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거다. 노동조합의 힘이 강력한 유럽과 우리나라를 단순 비교할 수 없다. 또 유럽과 우리나라는 사회보장 수준이 다르다.

과연 노동시장은 얼마나 더 유연해져야 하는 걸까. 노동시장 유연화를 주장하는 정부의 논리를 생각해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정부는 늘 노동시장 유연화를 주장하며 ‘경제성장을 통해 국민 삶을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국민 삶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나빠졌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재고해야 하는 이유다.
김수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원 sida7@saesayon.org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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