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문제 해결하려면 …

▲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는 회사에 패널티를 주는 대책이 더 실효성이 크다는 의견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사회안전망’의 바깥에 있는 그들. 레미콘 기사, 화물트럭기사, 학습지 교사 등 비정규직. 그리고 하청ㆍ파견ㆍ도급ㆍ용역 등 간접고용의 대상자들. 이들의 권리를 정부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도 없다. 비정규직 보호문제를 ‘노동조합’에서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번 비정규직 보호대책엔 또 이 문제가 빠졌다.

“한 사업장에서 기간제로 일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이 얼마면 좋을까.” 이런 질문을 주변 사람에게 했을 때 열이면 열 똑같은 대답을 했다. “기간제한이 없으면 가장 좋겠다.” 이는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누구나 제한 없이 평생 일할 수 있는 정규직을 원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12ㆍ29 비정규직 종합대책에도 똑같은 설문조사가 등장했다. 기간제로 일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을 물은 질문에서 1년이라는 답은 3.8%에 불과했다. ‘2년(11.8%)’ ‘3년(12.2%)’의 순으로 증가했고, ‘기간제한 필요 없다’는 항목엔 53.0%의 응답자가 방점을 찍었다.

중요한 건 왜 설문에 참여한 다수의 기간제 노동자들이 ‘기간제한이 필요 없다’고 답했느냐다. 일단 설문에 참여한 이들 중 65.4%가 ‘기간제한으로 인해 계속 근로가 어려웠거나 향후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기간제한을 둔 탓에 장기 근로가 어려우니 차라리 기간제한을 없애 비정규직으로라도 오래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더구나 설문 참여자 중 82.3%가 ‘기간제 사용기간을 연장하되 정규직 전환보다 계약 종료시 금전보상에 찬성’했다. 비현실적이고 뜬구름 잡는 정규직 전환보다는 명확한 금전보상이 더 낫다는 얘기다. 종합하면 사용기간 제한을 늘려주는 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년보다 더 일하고 싶어 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내놨다. 설문조사를 이용해 온 국민을 상대로 ‘대형사기극’을 벌였다는 얘기다.  똑같은 결과를 두고 전혀 다른 해석을 하고 있으니, 정부 대책과 노동자가 원하는 대책이 다를 수밖에 없다. 우선 기본적인 ‘틀’ 자체가 다르다. 정부와 기업은 비정규직 사용이 ‘비용절감’ 차원에서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철저하게 사용자의 입장이다. 비정규직은 이윤만 추구하는 경영자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연히 ‘사장님들’을 강제할 수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거다.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 분석도 정부와 노동계의 생각이 다르다. 일단 정부는 모든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정규직의 과보호’로 돌린다. 정규직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지키는데 급급하다 보니 인사 적체가 일어난다는 얘기다. 하지만 노동계는 정규직이 줄어들 때도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았다며, 정부의 주장을 일축한다. 

 
문제 원인 분석부터 다시 해야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선량한 사장’이 전제다. ‘지원금을 주거나 세금을 깎아주면 착한 사장들이 정규직 전환을 고려할 것’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정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정부가 운영 주체인 공공기관만 하더라도 정규직 비율은 2008년 86.2%에서 2013년 79.1%로 7.1% 줄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비정규직은 13.5%에서 20.7%로 7.2% 늘었다. 정규직이 줄어든 만큼 비정규직이 늘어났다는 걸 보여주는 통계다. 정부 예상대로라면 정규직 비율이 줄면 비정규직이 그 정규직 자리를 채워 전체 비율에는 변화가 없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다.

정규직 전환이 이뤄진 사례들을 봐도 정부 정책의 효과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많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인수위원회 시절, 한화그룹은 1900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정권 초기에는 신세계 이마트가 1만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했고 곧이어 SK그룹도 5800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그런데 이 사례들은 공통점이 있다. 한화그룹과 SK그룹은 각각 김승연ㆍ최태원 회장이 구속된 상태였다. 무언가 선처를 호소하기 위해 ‘정규직 전환’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신세계 이마트는 직원 사찰을 비롯한 엄청난 부당노동행위가 폭로되면서 이를 무마하기 위한 성격이 짙었다.

다시 말해 비정규직을 채용하면 지원금을 주는 방식은 순진한 발상일 수 있다는 거다. 오히려 비정규직을 의도적으로 채용하지 않은 회사에 강력한 페널티를 가하는 게 훨씬 실효성이 있다. 그 지원금은 비정규직 차별을 시정하고 정규직 전환을 위해 온몸을 던져 싸우고 있는 노동조합에 주는 것이 마땅할 수도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 C&M 케이블방송 노동자, 청소노동자, 건설노동자 등을 조직하는 노동조합 말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 10년간 줄기차게 외쳐왔다. 상시적인 업무에는 정규직을 사용하고 임시ㆍ간헐적 업무에만 비정규직을 사용하라고 말이다.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엄격히 제한해 그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업무에는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하는 ‘사유 제한’을 근로기준법에 명시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사용사유 제한을 두면 기업이 아예 비정규직을 쓸 수 없게 되니 그럴 수는 없다며, 기간제한만 주장한다. 사용사유 제한과 더불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비정규직을 위한 자유로운 노동조합 설립이다. “내가 일하는 곳은 상시업무이니 비정규직을 쓰면 안 됩니다. 당장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세요”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노동조합이 있다면 비정규직을 적당히 쓸 만큼만 쓰고 해고하는 기업들의 행태에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비정규직에게는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가 봉쇄돼 있다는 점이다. 현재 특수고용으로 분류되는 화물차 기사ㆍ간병인ㆍ학습지 교사ㆍ보험 모집인ㆍ퀵서비스 등은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노조를 만들 수 없다. 또 하청ㆍ파견ㆍ도급ㆍ용역 등 간접고용은 진짜 사장인 원청과 교섭해야만 임금ㆍ고용ㆍ노동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지만, 원청에 교섭 의무가 없기 때문에 노조를 만든다고 해도 무용지물이다. 

▲ 노동조합법을 수정해 노동자의 권리를 증진하면 간접고용과 특수고용을 사용할 이유가 사라질 수 있다.[사진=뉴시스]
사용제한과 비정규직 노조 필요

사용자들이 비정규직을 즐겨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기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만들더라도 교섭을 거부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용자들이 이런 형태의 비정규직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이들에게 노조 결성의 자유를 온전히 보장하는 것이다.

노동조합법 2조 1항의 ‘근로자’ 개념을 조금만 확장하면 특수고용도 노동자로 인정받아 노동조합 결성이 가능하다. 2조 2항의 ‘사용자’ 개념을 확장하면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 사용자와 직접 교섭할 권리가 생긴다. 이렇게 되면 사장들 입장에서 간접고용과 특수고용을 사용할 메리트가 사라진다. 노동조합법 2조를 개정해 글자 몇개만 수정하면 되는 일이다. 노동조합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업무 현장의 분위기도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magu@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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