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오른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

▲ 임단협 타결에 실패한 권오갑 사장이 특유의 경영솜씨를 발휘해 난국을 돌파해 낼지 주목된다.[사진=뉴시스]

취임 4개월째인 현대중공업 권오갑(64) 사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큰 기대를 모았던 2014년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노사 잠정합의안이 1월 7일 노조원 투표에서 부결된 것. 지난해 9월 취임 이래 임단협 타결에 혼신을 다했던 그의 리더십에도 일단 상처가 났다.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마련한 합의안이 가결되기를 애타게 바랐던 그의 속이 무척 탔을 것 같다. 새해 진짜 목표는 ‘흑자 전환’인데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현대중공업의 임금 및 단체협약 노사 잠정합의안은 2014년 12월 31일 노사 양측이 한발씩 양보해 마련됐다. 7개월이란 긴 협상 기간과 무분규 20년이란 기록을 깬 끝에 얻어 낸 것이다. 해를 넘길 수 없다는 절박감이 작용한 듯 새해를 불과 10시간 남겨둔 시점이었다. 재계는 현대중공업 노사 양측의 용단을 반겼다. 권오갑 사장과 정병모 노조위원장의 구사救社 정신을 높이 사기도 했다. 당초 현대중공업 안팎에서는 “반대 기류가 없지 않아 어려움은 있겠지만 조합원 투표에서 가결은 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7일 잠정합의안에 대한 노조원 찬반투표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반대 66.47%로 부결된 것. 잠정합의안 부결은 1998년 이후 18년 만의 일이다. 전체 조합원 1만6762명 중 1만5632명(투표율 93.26%)이란 많은 인원이 투표에 참가했다. 결과는 찬성 5183명(33.16%), 반대 1만390명(66.47%)으로 집계됐다. 노사 잠정합의안은 ▲기본급 3만7000원(2% 인상) ▲격려금 150%(주식으로 지급)+200만원 ▲직무환경수당 1만원 인상 ▲20만원 상품권 지급 ▲상여금 700% 통상임금에 포함 ▲특별휴무 실시(2월 23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날 노조 관계자는 “개표 전부터 현장에는 부결 분위기가 높았다”며 “젊은 조합원들에게 혜택이 별로 없는 미흡한 임금인상과 사측의 연봉제 도입이 막판 표심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밝혔다. 기본급 인상안(3만7000원)이 당초 노조 요구(13만2013원)에 크게 못 미친 점이 반대표를 불러왔다는 분석이다. 노사 양측 모두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20년 연속 무분규 기조가 깨진 데다 교섭도 해를 넘긴 만큼, 타결이 순탄하지 않을 전망이다. 노조 측은 “조직력을 재점검해 다시 협상에 나설 것”을 다짐했고 회사 측은 “조합원들이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아 안타깝고 유감스럽다”고 맞섰다.

권 사장은 투표 전날인 지난 6일 임직원 호소문을 통해 “임단협을 마무리 짓고 모든 임직원이 심기일전해 우리 경쟁력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자”고 당부했었다. 벌써부터 일부에서는 “권 사장의 리더십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대주주(정몽준)의 신임을 받아 지난해 9월 적자 현대중공업의 ‘구원 투수’로 발탁됐지만 경영 솜씨는 아직 미지수라는 얘기다.

지난 5년간 현대오일뱅크에서 좋은 경영 성적을 냈다지만 거함巨艦 현대중공업 경영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는 지적. 현대중공업이 어떤 회사인가. 종업원 2만5000여명의 세계 최대 조선사다. 한해 매출과 수주 규모만도 각각 25조원 상당을 오르내린다. 과거 1980~ 1990년대에 “울산 현대중공업에 노사분규가 났다” 하면 전국이 들썩거릴 정도였다. 그만큼 업종이 거친 데다 회사 덩치가 크고 역동적이어서 그에 걸맞은 경영 능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물론 어려운 회사 사정보다 내 호주머니부터 먼저 챙기는 노조원들을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권 사장이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판단하지 못해 일단 실패를 맛봤다는 지적이다.

재계가 현대중공업의 이번 투표 결과에 관심이 많았던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현대중공업이 창사(1972년) 이래 최악의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만큼 임단협 타결은 실적개선의 ‘필요조건’이 된다고 봤다. 또한 현대중공업이라는 회사가 갖는 상징성과 파괴력에도 주목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은 3조원 상당의 사상 최대 영업적자에 허덕였다. 이런 가운데 현대중공업은 올해 매출 목표를 24조3259억원으로, 수주 목표는 229억5000만 달러(약 25조4653억원)로 각각 책정했다. 매출과 수주 기대치를 당초보다 20% 전후씩 줄였다. 세계 경기부진과 기록적인 유가 하락, 중국 등 경쟁국 추격, 자체 경쟁력 저하 등을 감안한 결과다.

임단협 타결 순탄치 않을 전망


권 사장은 “쉽지 않은 목표지만 우리가 한마음으로 경쟁력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면 충분히 달성할 것”이라며 “2015년을 경쟁력 회복을 통한 재도약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취임 후 4개월 동안 임단협 타결에 몰두한 것은 재도약의 전제조건이 임단협 타결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새해 경영 방침으로는 원가경쟁력 강화, 생산현장의 안전, 관료적 조직문화 개선 등을 내걸었다. 특히 경쟁력 저하 문제를 심각히 지적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해 11월 26일 위기 타개 동참 호소문을 통해 “공사 단위당 인력 소요를 나타내는 ‘공수工數’가 경쟁사보다 많이 발생해 최근 입찰에서 여러 차례 탈락했다”며 “이것은 우리 회사가 경쟁사보다 거품이 많다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 권오갑 사장은 취임 이후 낮은 자세로 노조원을 대했다. 하지만 임단협 결과는 그의 리더십에 상처를 안겼다. 지난해 11월 울산 본사 정문 앞에서 출근길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권오갑 사장.

문제는 현대중공업의 효자 역할을 했던 해양ㆍ발전 플랜트 부문 수주가 올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 일부 애널리스트는 “의미 있는 이익 개선은 2016년에나 가능할 것”이란 분석마저 내놓는다. 권 사장은 노사분규가 한창이던 지난해 9월 취임했다. 그동안 낮은 자세로 현장 경영, 스킨십 경영에 주력해 왔다. 노조원들의 마음을 얻어야 회사 재건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 취임 후 4개월 동안 임직원들에게 4차례의 편지를 보냈다. 호소문 형식의 편지를 통해 자신의 진정성을 알리는 한편 노조원들의 이해와 회사 재건에의 동참도 요청했다. 취임 직후인 지난해 9월 23일(파업 찬반 투표일)과 9월 29일, 11월 26일(첫 부분 파업 전날), 그리고 올해 1월 6일(임단협 잠정합의안 찬반 투표 전날) 등이었다. 9월 23일엔 울산 본사 정문에서 비를 맞으며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회사가 잘못했다. 책임을 다할 수 있게 시간과 기회를 달라”며 읍소하기도 했다.

첫 좌절 딛고 회사 재건 이뤄낼까

지난해 10월 13일에는 ‘전 임원 사직서 제출’이라는 초강수 끝에 그룹 임원 31%(81명)를 줄이며 위기에 빠진 현대중공업에 대한 개혁과 변화를 모색했다. 취임 후 첫 방문지로 노조 사무실을 선택했다. 지난 4개월간 점심은 울산 현대중공업 내 56개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했다. 지난해 11월엔 회사에 이익이 날때까지 자신의 급여 전액을 회사에 반납하겠다며 배수진을 치기도 했다. 그의 ‘인화와 소통’ 중시의 리더십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입사 후 현대중공업 서울사무소 전무(1997년)가 된 이래 현대중공업과 연관된 축구 관련 직책을 유독 많이 맡았다. 대외 업무를 많이 한 경험이 그의 경영 스타일(현장 경영, 스킨십 경영)에 배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권 사장이 새해 일단 좌절을 맛봤지만, 특유의 경영 능력을 발휘해 회사 재건에 성과를 얻어 내기를 기대해 본다.
김은경 더스쿠프 객원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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