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돈 풀릴까

▲ 유럽중앙은행은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가 1년 전에 비해 0.2%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사진=뉴시스]
유로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0.2%를 기록했다. 유로존 디플레이션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로 인해 1월 22일 열리는 유럽중앙은행(ECB) 이사회에서 전면적인 양적완화 카드가 나올 가능성도 높아졌다. 잃어버린 20년을 겪고 있는 일본을 반면교사 삼으려는 ECB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유로존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하락 전환됐다. 지난해 12월 독일 물가상승률이 5년래 최저치인 0.2%를 기록한 데 이어, 유로존 물가도 시장의 예상보다도 낮은 0.2% 하락을 기록했다. 식품과 에너지가격을 제외한 핵심소비자물가는 상승했지만, 에너지 부문 물가가 6.3% 하락하며 물가상승률 하락을 주도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중장기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2%를 22개월 연속 밑돌고 있다는 거다. 여기에 최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유에 이어 브렌트유 또한 장중 배럴당 40달러대로 하락하는 등 당분간 저유가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유로존 물가 하락세가 지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저유가로 인한 비용 감소가 이끄는 물가 하락은 소비 여력 확대를 이끌어 경기 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문제는 유로존 물가 하락을 저유가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데 있다. 에너지를 제외한 물가상승률이 역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로존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고 해서 유로존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졌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물가하락세가 지속되며 기대 인플레이션이 낮아진다면, 실질금리가 상승하고 부채 부담 증가로 소비와 투자가 위축된다. 디플레이션 압력이 확대되는 일본식 장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1990년대 일본은 수입재 가격 하락과 기술 진보에 따른 공급측 요인이 물가 하락을 견인했다고 판단해 즉각적인 정책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뒤늦게 경기 부양책을 실시했으나, 금리 인하에도 물가가 더 빨리 낮아졌다. 이로 인해 실질금리는 오히려 상승해 통화완화 효과가 제한됐다. 디플레이션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한 결과, ‘수요 침체-디플레이션’의 악순환으로 ‘잃어버린 20년’을 겪어야 했다.

금융위기 기간 미국의 양적완화정책이나 최근 일본의 무제한 양적질적완화정책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과감한 정책 대응 배경에도 과거 일본 정부의 정책 실패가 있었다. 최근 드라기 ECB 총재 또한 낮은 물가에 따른 경기 회복 지연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이하연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본의 장기침체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는다면 ECB의 추가부양책 실시도 멀지 않은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혔다. 드라기 총재는 연초 인터뷰에서 국채 매입을 위한 기술적 준비를 마쳤다고 언급해 국채 매입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일부 시장에서는 유럽중앙은행이 국채매입 등 추가부양책을 실시하더라도 당장 유로존 경기가 반등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은행이 기업이나 가계에 대출을 늘리지 않아, 수요 부진이 지속되고 국채 매입은 일부 자산가격 상승 효과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고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ECB의 추가완화정책 시행은 불가피하다. 이하연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유동성 확대에 따른 위험선호와 자산가격 상승 효과는 장기간 억눌려 있던 소비 수요를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며 “ECB의 추가부양책이 글로벌 경기에 대한 우려를 완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호 더스쿠프 기자 rombo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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