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밀려오는데 明은 ‘딴청’
日 밀려오는데 明은 ‘딴청’
  • 이남석 대표
  • 호수 124
  • 승인 2015.01.1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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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㊼

1592년 6월 1일. 명나라 요동도사사遼東都司使 임세록林世祿이 일본군의 형세를 살피려 평양에 도착했다. 그를 대동관으로 부른 선조는 적병의 흉포함 때문에 조선의 흥망이 조석朝夕에 달렸으니 대명에서 구원병을 보내주길 간청했다. 하지만 임세록은 선조의 말을 믿지 않았다. 선조와 대관들의 마음이 극도로 불안해졌다.

▲ 왜군의 파죽지세와 같은 진군에 선조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일본군이 평양 입구까지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은 유성룡은 수성대장 윤두수에게 이렇게 한탄했다. “적병이 봉산에 도착했으면 그 척후는 벌써 강을 건넜을 것이오. 특별히 영귀루詠歸樓 아래에 있는 강이 두 갈래로 갈려 길만 알면 병이 능히 건널 수가 있소. 마침 이일이 왔으니 보내어 여울을 지키게 하는 게 어떻겠소.” 강이 두 갈래로 갈리기 전에 적을 치겠다는 계산에서였다. 그런 맥락에서 ‘영귀루’는 천혜의 요새였다.

윤두수는 “대감의 지시가 옳소”라며 이일에게 명령을 내렸다. 여울목을 지키라는 거였다. 하지만 이일은 적병을 우습게 보고 있었다. 평안도 군사 300명을 받았지만 그는 질펀하게 술만 먹었다. 큰일 났다고 여긴 유성룡은 수성대장 윤두수에게 ‘이일이 또 술만 먹고 있으니, 빨리 영귀루로 출발하라고 영令을 내리시오’라고 재촉했다. 그제야 이일은 하릴없이 군사를 거느리고 함구문을 떠나 영귀루로 길을 나섰다. 하지만 군사들 중에는 영귀루가 어딘지 아는 이가 없었다.

▲ 경황이 없었던 조선 대신들은 이순신의 승첩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일은 취한 눈으로 남쪽으로만 군대를 몰았다. 그렇게 10여리, 우연히 평양좌수 김내윤金乃胤을 만났다. 이일은 김내윤에게 “영귀루를 이 길로 가는 게 맞느냐”고 물었다. 김좌수는 기가 막힌 말투로 “이리로 가면 보통강普通江이오. 영귀루는 지금 오신 길로 도로 가야 하오”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일은 크게 노하여 “이놈! 네가 진작 와서 길을 인도하지 아니하고 이제야 와서 그런 말을 한단 말이냐”고 따졌다. 이후 김내윤을 길바닥에 엎어놓고 볼기를 10여대나 때린 뒤 “특별히 목숨만은 살려주는 터이니 앞을 서서 길을 인도하라”며 소리를 질렀다.

평양좌수 김내윤은 매 맞아 아픈 다리를 끌고 이일의 군을 인도해 만경대萬景臺 밑에 다다랐다. 대동강 저쪽 언덕 위에 벌써 일본군이 수백명이나 늘어서서 강을 건너려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를 본 이일은 취했던 술이 번쩍 깨 무사를 불러 활을 쏘기를 명하였다. 그러나 군사들은 무서워서 발을 내어놓으려 하지 않았다. 이일이 칼을 빼들고 베려 하니 그제야 군사들이 활을 쏘았다. 조선 사람 하나를 붙잡아 길잡이로 앞세우고 강을 건너던 적병 6~7명이 활에 맞아 넘어졌다. 물에 들어섰던 적병들도 달아나버렸다. 군사들도 적병이 물러가는 것을 보고 비로소 기세를 얻어 용감하게 격퇴하였다.

평양을 버리고 달아나는 조정

그 무렵인 1592년 6월 1일. 명나라 요동도사사遼東都司使 임세록林世祿이 일본군의 형세를 살피려 평양에 도착했다. 그를 대동관으로 부른 선조는 적병의 흉포함 때문에 조선의 흥망이 조석朝夕에 달렸으니 대명에서 구원병을 보내주길 간청했다. 임세록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하지만 말하는 눈치로 본다면 조선 정부의 말을 믿지 아니하는 모양이었다. 임세록의 이런 태도는 선조와 대관들의 마음을 극도로 불안하게 하였다.

믿을 건 이제 유성룡밖에 없었다. 평소 유성룡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서인들이라도 어쩔 수 없었다. 유성룡은 임세록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선은 수백년 동안 전쟁을 치르지 않아 백성들이 병사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졸지에 천하의 막강한 적을 만나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조총이란 군기를 사용해 조선 사람을 말도 못하게 많이 죽였다. 정발, 신립, 심우정, 신할, 유극량 등 여러 장수도 연이어 전사했다.”

임세록은 답했다. “일본군이 부산에 도착했다는 말을 들은지 며칠이 안 돼 국왕이 한성을 버렸고, 또 며칠이 안 돼 개성을 버렸으며, 또 몇날이 안 돼 평양이 위험하다고 하니, 이럴 수가 있소? 조선에도 사람이 있고 군사도 있거늘 이렇게 빨리 적병이 활개를 칠 수가 있겠느냐는 것이오” 이 말 속엔 조선이 일본군을 인도해 명나라를 치려 한다는 풍설이 들어 있었다.

 
유성룡은 조선과 일본이 내통한 적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했다. 또한 조선은 단군과 기자箕子의 감화를 받아 충의와 지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나라를 지켜 왔기 때문에 간사하게 속이는 정책은 옛부터 배척했다고 덧붙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일본군이 벌써 대동강 저편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임세록을 데리고 연광정練光亭에 올라 형세를 보여줬다. 아! 이 얼마나 굴욕적인 일인가. 일국의 수상이자 50세가 넘은 사람이 일개 젊은 외국 군관에게 동정과 호감을 얻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말이다. 때마침 적병이 강 저쪽 수풀 속으로 보이더니 이윽고 2~3인이 뒤를 이어 나와 배회한다. 유성룡이 임세록에게 “저게 적병의 척후라는 것이오”라고 말했다.

임세록은 믿지 아니하는 어조로 “적병이 어찌 그리 적소”라고 반문했다. 유성룡은 답했다. “일본군은 원래 간사하고 교활해 대병大兵이 뒤에 올 때엔 반드시 앞에 정탐을 보내오. 몇명이 안 된다고 마음을 놓았다간 적의 계교에 빠지는 것이오.” 의심을 품은 임세록은 픽 웃으며 믿어지지 아니하는 듯 했다. 선조와 여러 대관은 유성룡에게 “임세록이 의심이 풀어져 갔느냐”고 물었다. 유성룡은 “우리나라에 대한 의심이 매우 깊은 모양이오”라고 답했다.

대신 꽁무니 빼자 어지러운 선조

그러자 선조와 여러 대신이 아우성을 쳤다. “평양을 지킨다는 미명 하에 평양에 주저앉으려 한 건 명나라의 구원을 믿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특별한 계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들에게 명나라의 의심은 세상이 무너질 만큼 큰 일이었다. 일부 대관은 명나 산궁곡으로 들어가 목숨이나 부지하자고 생각했다. 이윽고 꽁무니를 빼는 자가 생기고, 선조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편 다른 도를 다니며 전투를 거듭한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거제ㆍ고성ㆍ사천ㆍ진해ㆍ창원ㆍ웅천ㆍ김해 연안에서 여러 번 승전을 했다는 장계가 올라왔지만 조정은 그 승첩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아마도 육전陸戰에서의 여러 번 참패로 경황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오직 유성룡 등 몇몇 재상만이 수전水戰의 승첩이 육전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누누이 설명했다. 하지만 원견遠見이 없는 그들은 도무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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