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호 크몽 대표

파격은 파격을 낳는다. ‘형식’과 ‘절차’에 얽매이는 순간 ‘파격’의 씨앗은 사라진다. 재능마켓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박현호(38) 크몽 대표. 그는 단 한번도 ‘형식’에 집착하지 않았다. 실패를 할지언정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았다. 공식을 깨야 길이 보인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그를 만나 화끈한 철학을 들어봤다.

▲ 박현호 대표는 “내가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즐기면서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사진=지정훈 기자]
오전 9시, 강남구 삼성동에 둥지를 틀고 있는 152㎡(약 46평) 규모의 오피스텔에 들어서자마자 ‘꺄르르르’ ‘파이팅’ 하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주방에서 떡볶이 냄새가 풍긴다. 대학생 MT도 아니고, 게스트하우스도 아니다. 사무실이다. 아침에 식사를 챙기지 못한 직원들이 떡볶이를 해먹은 거고, 일 시작 전 파이팅을 외친 거다. 일하는 모습은 더 기가 막힌다. 선 채로 일을 하는가 하면, 컵라면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먹으면서 일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하는 모습만은 진지하다. 벽 곳곳에 커다란 화이트보드가 있고, 해야 할 일이 적혀 있다. 대표라는 이에게 물었다. “회사가 이래도 되는 건가요.” 그러자 날쌔게 현답賢答이 돌아돈다. “일을 꼭 진지하거나 심각하게 해야 하나요. 우리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즐길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러려면 우리부터 재미있게 일해야죠.”

이 회사의 이름은 ‘크몽’이다. 재능을 거래하는 마켓 플레이스다. 오픈마켓에서 상품을 팔고 사듯 이곳에선 재능이 거래된다. 예컨대, 모닝콜, 연애상담도 상품이다. 욕을 들어주는 것도 상품으로 팔린다. 노래 불러주기를 비롯 고양이 목욕, 고양이 산책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전문적인 재능도 많이 팔린다. 웹사이트 구축, 애플리케이션(앱) 제작, 전문 번역, 문서 작성, 등 약 1만개의 재능이 거래된다. 크몽에서 놀라운 일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 디자이너는 크몽을 통해 2년 동안 5000만원 넘게 벌었다. 먹고살기 위해 직장인의 삶을 택했던 한 웹툰 작가는 2년 동안 2300만원의 부수입을 올렸다. 먹고살기 위해 꿈을 포기한 이들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거다. 이 회사 박현호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매일 오후 판매자들의 수익금을 출금하는데, 월 500만~600만원씩 고정적으로 벌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도 부러울 때가 있어요(웃음).” 크몽을 통해 창업을 하는 이도 있다.
 
한 여행 스타트업은 웹사이트 구축부터 로고 제작ㆍ번역ㆍ각종 문서 작업까지 20명의 재능을 50만원에 구매해 창업했다. 박 대표 역시 크몽 로고를 크몽 사이트에서 5000원에 만들었다. 이런 비범한 사이트를 만든 박 대표는 평범하지 않은 삶의 길을 걸었다. 20대부터 줄곧 창업만 했다. 대학교 1학년(1998년) 때 학교 친구들과 재미 삼아 게임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라밤바를 창업한 게 시초다. 그런데 이게 잘 됐다. 5억원의 엔젤투자를 받아 물류센터까지 뒀고 잘나갈 때는 월 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내 재능이 ‘돈’이 된다

하지만 승리의 나팔을 오래 불지 못했다. 온라인 쇼핑몰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가격 경쟁이 심해지면서 2001년 말 사업을 정리했다. 쓰라린 패배를 맛봤지만 그의 창업욕구는 꺾이지 않았다. 대학을 중퇴하고 2005년 게임 아이템 거래 사이트를 열었다. 대출도 받고 투자도 3억원 가까이 받았다. 하지만 중국 사용자들의 사기거래가 급증하면서 사이트의 신뢰도가 추락, 또다시 사업을 접고 말았다. 이후에도 그는 몇번의 크고 작은 창업을 했다.

하지만 나이 서른셋에 그에게 남은 건 대학 중퇴 학력과 1억원의 빚뿐이었다. 그는 고향 진주로 내려갔다. 그리고 집에서 멀지 않은 경남 산청의 지리산 자락에서 팥빙수를 팔며 용돈을 벌었다.  창업을 위한 ‘한보 후퇴’ 시기였다.  2011년 5월 그는 집에서 크몽의 베타 사이트를 오픈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인 피버(Fiverr)를 벤치마킹한 사이트였다. 이 사이트는 어떤 서비스, 어떤 정보라도 5달러에 거래된다. 그는 피버처럼 모든 재능이 5000원에 거래되는 크몽 사이트를 오픈했다. 처음에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사이트에 업로드된 캐리커처 상품이 좋은 반응을 받았다. 카카오톡ㆍ페이스북 등 SNS에 프로필 사진으로 쓰려는 이들이 몰려든 거였다. 가능성이 읽혔다.  그렇게 집에서 혼자 크몽을 운영하던 박 대표는 정부의 보육센터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재기에 나섰다. 2012년 6월 법인을 세웠다. 크몽은 독특한 사업모델은 많은 이들이 주목했고 승승장구했다. 현재 크몽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재능수는 1만개로 월 거래량은 2억원, 월간 방문자수는 15만명에 달한다.

크몽이 이렇게 눈부신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파격적인 시도와 빠른 변신에 있다.  무엇보다 2012년 10월 처음 세웠던 ‘5000원’ 원칙을 깼다. 퀄리티 높은 재능 거래를 원하는 이들의 요청에 따른 조치였다.  모든 재능 가격은 5000원부터 시작하지만 재능의 퀄리티나 업무 정도에 따라 판매자가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당시에는 큰 결정이었는데 크몽이 성장하는 자양분이 됐다. 현재 크몽에서는 수백만원짜리 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

▲ 크몽의 직원들은 누구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한다.[사진=지정훈 기자]
그뿐만이 아니다. 박 대표는 재능 거래 후 14일 만에 판매대금을 입금해주는 피버의 원칙을 깨고 거래 당일 판매자에게 출금을 해줬다.  또 재능 거래가 이뤄지면 구매자에게 판매자의 연락처를 공개했다. 구매자들이 안심하고 구매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어쩌면 위험한 결단이었다.  거래액의 20%를 판매수수료로 벌어들이는 크몽 입장에서 보면 판매자와 구매자의 직거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표는 쿨하게 받아들였다. “시장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우리는 구매자와 판매자간의 거래가 일어나기 전까지의 과정에만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첫 거래 이후에도 크몽을 통해 거래가 되게 만드는 게 우리가 할 일입니다. 예를 들어 판매자에겐 관리ㆍ홍보ㆍ판매대금 회수 등 운영상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구매자에겐 안전거래, 마일리지 혜택을 제공해 만족도를 높여줍니다.”

공식을 깨야 길이 보여

박 대표의 파격적인 시도를 멈추지 않을 작정이다. 지금까진 웹 기반이었다면 이젠 모바일 앱 서비스에 집중할 계획이다. “앱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무엇보다 생활밀착 서비스를 제공할 겁니다. 이를테면 모바일 앱을 통해 전구를 갈아주는 서비스를 바로 구매하는 식이죠. 이제까지 사람들이 크몽을 통해 ‘일’을 했다면 이제 크몽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편리한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앱으로 전구 교체 서비스를 주문한다? 얼핏 허무맹랑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래야만 한다”는 공식 없이 파괴의 길을 걸어온 박 대표다. 그래서 기대가 된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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