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㊽

▲ 성룡이 선조의 총애를 받을 것 같자 서인들이 견제에 나섰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선조는 평양을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또다시 저버리려 했다. 유성룡은 그러면 절대 안 된다며 말렸다. 신의를 버린 임금을 누가 믿겠느냐는 논리에서였다. 유성룡의 간청에 함경도 피출설은 조정에서 조금씩 힘을 잃었다. 그러자 서인들이 유성룡의 주장에 반론을 들기 시작했다.

뜻밖에도 명나라는 조선을 구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되레 “일본과 짜고 명나라를 공격하려는 게 아니냐”며 의심의 불씨를 피웠다. 선조와 조선 대신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에도 이순신은 여러번 승전勝戰했고, 승전보를 조정에 알렸다. 하지만 대신들은 수전水戰의 승첩을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견遠見이 없는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유성룡 등 몇몇 재상만이 수전의 승첩을 반겼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일본군 한 부대가 대동강 저편에서 출동해 조선군 형세를 살피는 것이 보였다. 선조는 은밀히 예조참의 노직盧稷을 시켜 종묘사직의 위패와 궁인을 호위하여 칠성문(평양 모란봉에 있는 성문)으로 나가게 하였다. 하지만 손에 칼과 몽둥이를 든 평양성중 백성들이 이들을 가만히 놔둘리 만무했다. 길을 막은 채 노직과 궁인할 것 없이 두들겨 팼다.

 
백성들은 노직의 문관들을 가리키며 “이놈들! 평일에 국록을 절취하여 먹고 이제 와서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속이니 너희같이 죽일 놈들이 또 어디 있단 말이냐”며 고함을 쳤다. 부녀와 어린아이들까지 모여들어 발을 동동 구르며 읍소했다. “평양을 지키지 않고 달아날 거면 무슨 이유에서 피난을 가려던 우리를 다시 불러들여 적병의 손에 어육지참(사람이 짐승의 고기처럼 됨)이 되게 하느냐! 이 간신 놈들, 나서라, 우리만 죽을 줄 알았더냐?”

여러 대관, 삼정승 육판서는 백성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겁을 먹고 바깥출입을 삼갔다. 그러면서도 시위侍衛(임금을 호위하는 일)하는 의장병을 풀어 백성을 무찌르려 했다. 하지만 의장병들은 백성들에게 물리침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군사들이 백성의 마음을 십분 이해해 스스로 물러선 거였다. 그러자 영상 최흥원, 우상 유홍, 전좌상 정철 이하 대관들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선조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유성룡을 불러라! 유성룡이 어디 있느냐?”라며 애를 태웠다. 연광정에서 윤두수, 이원익 이하 여러 사람과 군사회의를 진행하다가 백성의 소요가 일어났다는 말을 들은 유성룡은 행궁으로 달려갔다. 길에서 백성들에게 봉변을 당할 뻔했지만 백성들이 “유정승은 충신이다. 유정승은 평양을 지키자 하는 대신이다!”라며 길을 열어줬다.

평양에서 소요 일으킨 백성

유성룡이 대동관 행궁안에 들어서니 선조와 백관들은 그제야 산 것처럼 안도의 한숨을 길게 쉬었다. 선조는 유성룡에게 “이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키니 이를 어찌하오”라고 물었다. 유성룡은 “반란이 아니오라, 성상의 거가가 평양을 떠나지 마시라는 것입니다”고 답했다. 이렇게 선조를 안심시킨 유성룡은 곧바로 행궁 문밖에 나서 흰 수염이 많이 난 노인을 가리키며 불렀다. 그 노인은 매우 점잖게 유성룡의 앞으로 왔다. 유성룡은 그 노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 백성들이 성상이 평양을 떠나지 마시고 힘을 다하여 성을 지켜주기를 원하는 건 지극히 충성된 마음이다. 하지만 소요를 일으켜서 성상을 놀라게 하니 이런 해괴한 일이 어디 있느냐? 더구나 성상은 평양을 굳게 지키기로 했는데, 이것이 무슨 일이란 말이냐? 그대는 이 뜻으로 백성들을 타일러 물러가게 하라.”

▲ 명나라는 구원병 파병을 망설였다. 일본군에 밀리는 조선을 믿지 못한 탓이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노인은 손을 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상감께서 성을 버리려 한다는 말을 듣고 분함을 못 이겨 그런 것이오. 대감의 말씀을 들으니 소인네들의 가슴이 터지는 것 같소. 평양 백성이 한명이라도 살아 있으면 적병이 한걸음도 평양성 안에 들어오지 못할 터이니 다시는 백성을 속이고 평양을 떠난다는 소문이 나지 않게 해주시오.” 말을 끝낸 노인이 백성들에게 유성룡의 말을 전하자 무리는 해산해 물러갔다. 하지만 조정 대신들은 감사 송언신宋言愼을 시켜 민란의 우두머리격인 세 사람을 잡아 목을 베었다. 그리곤 평양을 떠날 궁리를 또다시 하기 시작했다. 최흥원, 정철, 유홍 이하 제신들은 대부분이 함경도로 가기를 주장하였다. 언급했듯 자신들의 가족이 함경도에 피난갔기 때문이었다.

유성룡은 선조에게 “백성들에게 평양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를 파기하면 백성은 두 번 다시 임금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선조는 듣지 않았다. 피출설避出說을 주장하는 무리가 워낙 다수인 까닭에 그쪽으로 선조의 뜻이 기울어진 때문이었다. 유성룡은 하릴없어 다시 간했다. “서울과 개성을 버린 것도 명나라 조정에서 의심하거든, 하물며 한 번도 싸워보지도 아니하고 평양과 같은 형승지를 버린다하면 명나라의 의심은 더욱 클 것이며, 명나라가 우리나라를 의심한다면 구원병은 오기가 어려울 것이니 평양을 굳게 지켜서 명나라의 구원병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상책일까 합니다.”

유성룡의 간청에 마음 바꾼 선조

그러자 어떤 대신 하나가 “명나라에 알리기를 평양에서 크게 싸워서 패하였다고 하면 그만 아니오”라고 말했다. 유성룡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제2책으로 평양을 버린다 하더라도 함경도로 피하는 것은 옳지 아니합니다. 원래 평양으로 피난한 목적은 명나라에 의지해 후일을 도모하자는 거였는데, 명나라에 청병請兵을 해놓고 북도北道로 들어갔다가 중간에 적병에 막혀 중국과 소식이 끊어지면 어찌 하시겠나이까. 또한 적병이 각도에 흩어져 있거늘 유독 북도라고 적병이 없으란 이치가 없으니, 북도에 갔다가 거기서도 적병을 만나면 갈 곳이 오랑캐 땅밖에는 없지 아니합니까. 그야말로 왜倭를 피하다 호胡를 만나는 격이니, 이런 위태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일부 대신은 자신들의 가솔이 북도에 가 있어 사사로운 생각으로 북도로 가기를 주장하는 겁니다.”

그러자 일부 대신은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다. 북도피출설을 주장하던 윤두수는 유성룡의 간언에 뜻을 접었다. 하지만 당파싸움 잘하는 지사知事 한준韓準은 유성룡의 말을 반대하여 북도로 가는 것이 좋다고 우겼다. 유성룡이 선조의 총애를 독차지할까 두려워한 서인들이 한준을 내세운 거였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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