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고 데자뷰

1월 10일 의정부 아파트 화재사고가 일어났다. 역시 인재人災였다. 그런데 이 사고가 있고난 후 많은 이들은 다시 지난해 4월의 세월호 침몰사고, 더 멀게는 지난해 초 경주리조트 붕괴사고를 떠올렸다. 형태는 다르지만 똑같은 사고라는 인식에서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 그걸 모르는 듯하다. 그래서 더스쿠프가 준비했다. 사고의 데자뷰다.

▲ 의정부 아파트 화재사고는 유형은 다르지만 여러 면에서 세월호 침몰사고나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사고와 비슷한 점이 많다.[사진=뉴시스]
1월 13일 의정부역. 7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바람을 타고 탄내가 밀려왔다. 10일 아침, 4명이 숨지고 126명이 부상당한 인근의 아파트(대봉그린아파트ㆍ드림타운ㆍ해뜨는마을) 화재 현장에서 나오는 재 냄새였다. 화재 현장에서 경찰수사가 진행 중이라 정리되지 않은 탓이었다.

화재 현장은 출입을 봉쇄하기 위한 경찰과 취재를 하려는 기자들로 붐볐다. 이번 화재로 한순간에 집을 잃은 해당 아파트 주민 몇몇은 불에 탄 집을 바라보며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3채의 아파트 중 그나마 스프링클러가 작동돼 피해가 적었던 해뜨는마을아파트에 거주했다는 40대 후반의 주부 A씨는 “불이 고작 10여분 만에 3개 건물의 외벽으로 옮겨 붙었다는 게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다”며 “하지만 불에 약한 외벽 마감재 때문이라는 걸 알고 나서 분통이 터졌다”고 토로했다. A씨는 “지난해 새 아파트로 부푼 꿈을 안고 이사를 왔는데,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는 게 문제가 될지 꿈에도 몰랐다”며 “집값이 떨어졌으니 집 사라는 정부 말만 믿고 집을 샀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하고 하소연했다. A씨는 또 “벽이 이렇게 종잇장처럼 찢어지는데 이걸 제대로 된 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정부와 건축주, 분양업체 모두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억울하고 분해서 잠이 오질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피해자들도 비슷한 하소연을 쏟아냈다.

이들의 토로는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라는 억울함의 호소가 아니다. 억울함은 구체적이고, 비난의 대상도 명확했다.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를 당한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중요한 건 이런 호소가 이젠 낯설지 않고 매우 익숙하다는 거다. 소재는 붕괴ㆍ화재ㆍ침몰 등으로 다르지만 ‘안전관리대책 미흡으로 인한 인재’라는 똑같은 주제의 사고가 반복해서 터지고 있어서다. 일부에서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쳐야 하는데, 소도 잃고 외양간도 제대로 못 고쳤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인재에는 패턴이 있다

지난해 일어난 인재를 살펴보면 몇가지 공통점이 나타난다. 일단 자본 또는 효율성의 논리에 밀려 안전 관련 업무지침이나 법규정이 대부분 무시된다. 감시는 사라진 지 오래고 이해관계에 따라 눈감아주는 이들도 있다. 설마 하는 생각으로 위험하게 작업을 하거나 관리나 점검을 소홀히 하는 이들도 등장한다. 사고 발생 시 구조적인 문제든 불가항력적인 이유든 간에 초동 대응은 늘 미흡하다. 정부는 사고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강조하지만 위정자들의 관심은 권력 쟁취에 있고, 고위공직자들은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는데 급급하다. 안전사회 구현은 관심사가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고수습이 흐지부지되고, 적당한 대책만 내놓으면 끝난다.

먼저 지난해 2월 17일에 발생한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지붕 붕괴사고부터 보자. 10명이 사망하고, 204명이 부상당한 이 사고의 표면적인 이유는 폭설로 인한 체육관 지붕 붕괴다. 처음엔 모두가 천재지변인 줄 알았다. 하지만 경찰 수사 결과 체육관이 부실하게 지어져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체육관 지붕을 받치는 금속구조물인 중도리(들보에 직각 방향으로 걸어 처마지붕을 떠받치는 역할을 하는 가로대로) 26개 중 14개가 지붕덮개와 제대로 결합돼 있지 않았다. 또 주기둥과 지붕보에 설계와는 달리 강도가 약한 부재를 사용했다. 비용절감을 위해서였다. 공사감리까지 부실했다. 사고 당일 체육관 지붕의 재설작업 등 안전조치도 소홀했다. 안전점검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마우나오션리조트는 허가 이후 단 한번도 안전점검을 받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안전은 죄다 뒷전이었던 거다.

결국 이 사고로 체육관을 짓고 감리했던 관계자들을 비롯해 건물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마우나오션리조트 임원까지 줄줄이 구속됐다. 마우나오션리조트 측은 사고 당시까지만 해도 반성의 기미가 없었고 신속한 사고수습 의무가 있는 최양식 경주시장은 사고 대응에 관한 자신의 미담을 만들어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데 몰두해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4월 15일에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는 인재의 특성들이 모두 드러난 사건이다. 204명이 사망ㆍ실종한 이 사고의 표면적인 원인은 배가 무리하게 급선회하면서 전복, 화물 적재규정을 지키지 않아 배의 복원력이 떨어진거다. 다른 원인도 있었다. 해운사는 비용절감을 위해 선령이 오래된 노후선박을 수입했고, 화물적재량을 늘리기 위해 불법 개조까지 했다. 화물을 더 싣기 위해 배의 안전을 지켜줄 평형수는 줄였다. 그러면서 화물 고박조차 규정대로 하지 않고 엉성하게 해 한번 뒤집히면 절대로 일어설 수 없는 상태로 배를 운항했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안전규제를 완전히 무시한 사례다. 해운사와 안전관리ㆍ감독 기관의 유착까지 드러났다.

그뿐만 아니라 사고를 수습해야 할 이들은 모두 딴청을 피웠다. 선장과 선원들은 먼저 도망치기에 바빴고, 사고 현장에서는 실종자를 찾고 유가족들을 돌보는 것보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의 의전이 더 중요하게 고려됐다. 사고수습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실종자들을 찾는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근거들이 속속 나왔고. 실종자들을 모두 찾지도 못했다.

대책은 난항을 겪고 있다. 물론 사고 이후 유족들의 피해 배상ㆍ보상을 다룬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하고, 사고 책임자 처벌 강화를 위주로 하는 해운법ㆍ선원법ㆍ선박안전법 개정이 이뤄졌다. 하지만 애초에 사고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던 정부는 사고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말을 바꾸거나 유족들을 배제해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로 세월호 사고 진상규명을 담당해야 할 특별조사위원회는 정부의 경제활성화 대책에 밀려 위원 추천만 받아놓은 채 아직 출범조차 못한 상태다.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사고의 추억

5월 26일 8명의 사망자를 낸 5월 26일의 고양종합터미널 화재사고는 효율성 논리에 안전이 뒷전으로 밀리고, 안전수칙을 이행하지 않아 일어났다. 고양터미널 지하 1층 CJ푸드빌 인테리어 공사 도중 발생한 불티가 용접작업자의 부주의로 배관의 가스에 붙은 게 화재의 원인이다. 하지만 공사 편의를 위해 소방시설의 자동연동기능을 차단해 화재 발생 시 비상벨과 대피방송이 나오지 않았고, 방화셔터까지 작동하지 않으면서 유독가스가 빠르게 번져 단순 화재사고임에도 인명피해가 많았다. 또 보온용 마감재로 우레탄을 써 유독가스가 더 많이 배출됐다. 대부분의 시설물이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총체적 안전점검을 실시했지만 이 터미널은 규정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안전점검을 통해 마감재를 대체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도 있었다는 거다. 자체 안전점검이 있었지만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안전에 예외를 둬서는 안 된다는 걸 알려준 사례다. 여야 정치인들은 이 사고 현장을 찾아 재발 방지 대책을 강조했지만, 이후 특별한 후속조치는 없었다.

▲ 대부분의 인재는 자본과 효율성의 논리 앞에 안전이 뒷전으로 밀리면서 일어난다.[사진=뉴시스]
10월 17일에는 판교 테크노밸리 야외광장 환기구 붕괴사고로 1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야외 공연을 관람하던 일부 시민들이 지하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지상 환기구에 올라갔다가 환기구가 주저앉으며 벌어졌다. 가수 초청 공연이 있어 야외광장에 사람들이 많이 몰릴 것을 예상할 수 있었고, 때문에 충분한 안전요원을 두는 등 대책을 미리 세워야 했지만 주최 측은 이를 무시했다. 안전요원 명목으로 배치된 이들은 안전관리교육조차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고의 경우 시민들의 안전의식 미흡도 문제로 지적됐지만, 경기도와 성남시가 서로 사고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행사 주최 자격을 놓고 대립해 비난을 샀다. 그뿐만 아니라 각 지자체들은 이 사고 이후 환기구 안전점검과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기로 했지만, 사고가 났던 당시에만 잠깐 관심을 쏟았을 뿐 결국 흐지부지된 상황이다. 서울의 경우 환기구 접근을 막는 안전펜스는 고사하고, 간단하게 설치할 수 있는 경고 문구조차 붙여놓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4명의 사망자를 내고, 100여명이 넘는 이들을 거리로 내몬 1월 10일의 의정부 아파트 화재사고는 이처럼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에도 안전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어났다. 역시 자본 논리에 안전은 밀렸다. 현재까지는 1층 주차장에 주차된 4륜 오토바이에서 원인미상의 화재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요한 건 초기 화재진압에 실패했다는 것, 이후 화재가 아파트 3개동으로 빠르게 번졌다는 거다. 초기 화재진압에 실패한 것은 아파트를 지으면서 충분한 주차공간을 확보하지 않아 인근 골목이 주차장처럼 쓰이면서 소방차 진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화재가 빠르게 번진 건 건축비 절감을 위해 값싸고 내화력이 없는 자재로 외벽을 마감해서다. 또 아파트끼리의 간격이 1m도 채 안 되게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일부 아파트는 공간을 잘게 쪼개는 불법개조까지 했고, 스프링클러가 적용되지 않은 곳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것들이 전혀 법적으로 하자가 없었다는 거다. 이명박 정부가 전세난 해소라는 명목으로 도시형 생활주택 보급을 장려하면서 안전규제를 대폭 완화했기 때문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세월호처럼 선령을 늘린 것과 같은 사례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지난해 11월에 출범한 국민안전처는 사고 이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거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사고 현장에도 가지 않았다. “기관 관계자들이 의전 부담 때문에 제 할 일을 못할 수도 있다”는 게 이유였다. 사고 이틀 뒤에는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국회에서 열린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 1시간이나 지각 출석했다. 게다가 국민안전처는 사고 당일 중앙긴급구조통제단을 구성했지만, 통제단은 사고가 난 지 이틀이 지나도록 경찰이나 의정부시 등 관계기관과 실무적인 대책회의 한번 열지 않았다.

이처럼 인재로 거론되는 사고들은 유형은 다르지만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던 셈이다. 국민들이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 세월호 침몰사고, 의정부 화재사고 등을 보면서 데자뷰를 느끼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반복될수록 우리 사회가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거다. 사고가 거듭될수록 내성이 생겨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 수 있고, 자본과 효율성의 논리에 따라 안전과 생명의 가치가 뒤로 밀릴 가능성도 크다.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 떨어진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세월호 침몰사고와 비슷한 사고가 또 발생할 시 정부가 신속하게 대처할 것 같냐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69%)’고 응답했다. 정부는 이미 청소년들에게 못 믿을 존재가 된 셈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언론에 대한 신뢰도도 떨어졌다. 경북대가 세월호 사고 이후 학생들을 대상으로 언론의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언론보도를 믿을 수 없다’는 이들이 61%에 달했다.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고, 정부 대처가 미흡할수록 국가 신뢰도도 떨어진다는 방증이다.

정부, 안전에 대한 철학 바꿔야

하태훈 고려대(법학전문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안전보다는 이윤과 효율이 먼저였던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사고공화국’이 됐다. 경제만 추구하다 보면 안전규제는 약해지게 마련이다. 위험을 예방하고 안전을 강구하는 법과 제도가 경제발전의 걸림돌로 여겨져서다. 하지만 경제가 우선시되는 사회에서는 생명ㆍ안전ㆍ미래 등의 가치가 자리 잡을 공간이 없다. 때문에 우리 사회의 안전장치들은 더 느슨해지고, 감독과 감시의 눈도 잠기게 된다. 이런 국가 국격이 높다고 할 수 없다. 국격을 높이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우리 사회의 최고 가치를 자본이 아닌 생명과 안전에 두는 정책을 펴야 한다.” 정부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부터 다시 정립해야 지금과 같은 데자뷰를 없앨 수 있다는 얘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