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後

▲ 만재흘수선을 선박의 화물 과적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지만 관리가 안 돼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많다. 사진은 곧 가라앉을 듯한 과적 선박.[사진=뉴시스]
지난해 12월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은 특별조사보고서를 통해 세월호 침몰사고의 원인을 ‘무리한 선박개조, 평형수 적재 미달, 화물과적, 화물 고박 불량 등으로 인한 선박의 복원력 상실’이라고 발표했다. 화물 과적만 잘 단속해도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화물 과적 규제는 여전히 쉽지 않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지 9개월. 수많은 언론과 여론이 ‘안전’을 떠든 만큼 선박은 안전수칙을 잘 지키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선박의 과적을 막고 선박의 복원력(선박이 평형상태를 유지하는 능력)을 유지하는 시스템이 세월호 사고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어서다. 익명을 원한 지방해양항만청 관계자에 따르면 선박의 화물 과적 유무를 판단하는 기준은 ‘만재흘수선’이 유일하다. 만재흘수선이란 쉽게 말해 최대중량 표시선이다. 선박 외관에 표시된 만재흘수선이 바닷물 밑으로 내려가면 과적이 된다. 그는 “만재흘수선 말고 수치(중량)를 정해놓고 얼마 이상은 안 된다고 하는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만재흘수선만으로는 선박의 과적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거다. 이윤철 한국해양대(해사수송과학) 교수는 “화물적재 기준을 두는 것은 배의 복원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인데, 만재흘수선만으로 이를 판단하는 건 곤란하다”며 “화물의 내용물, 적재 중량, 화물 위치, 고박 상태, 평형수 등의 점검과 더불어 최종적으로 만재흘수선까지 충족해야 제대로 복원력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평형수 등 안전에 필요한 화물량을 줄이고, 돈벌이가 되는 화물을 더 실어도 만재흘수선을 충족할 수 있다는 거다.

만재흘수선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도 불투명하다. 최종 관리ㆍ감독 의무는 지난해 12월 해경에서 지방해양항만청으로 이관됐지만, 실제 현장에선 여전히 해운조합 소속 안전관리자가 만재흘수선을 확인한다. 해운업체의 이익단체인 해운조합이 이런 규정을 칼같이 지킬 리 없다. 물론 선박들은 만재흘수선과는 별도로 선박 복원력 검사를 받는다. 하지만 한국선급이나 선박안전기술공단에 복원성 자료를 제출하고 승인을 받는 서류검토가 전부다.

 
이런 데는 이유가 있다. 법 규정이 세월호 사고 이전과 똑같아서다. 권영국(해우법무법인) 변호사는 “규정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선박에 싣는 화물의 무게를 전혀 점검하지 않고, 만재흘수선만 지키면 그만이라는 식의 현행 선박안전법 규정이 가장 큰 문제다. 현재는 조금만 신경 써도 중량을 조작할 수 있다. 당연히 중량톤수(무게중심)보다 용적톤수(부피중심)에 따라 운임요금이 결정되는 이상한 셈법이 만들어진다. 안전준수 사항들이 서류심사만 통과하면 되는 것도 문제다. 이런 걸 고치지 않고 처벌만 강화하면 무용지물이다.” 세월호 이후 많은 법안들이 나왔지만, 정작 선박 화물 과적을 규제하는 법안은 없었다는 거다.

이처럼 문제와 해법이 명확한데도 관련 규정이 쉽게 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빨리 진상조사를 마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발걸음이 지나치게 느리다. 세월호 특위는 지난해 12월 위원이 추천됐을 뿐 아직 출범조차 못했다. 위원 인사검증이 끝난 후 대통령이 임명을 해야 출범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그 후, 달라진 건 거의 없다. 규제를 피한 과적 선박들은 여전히 ‘안전지대’ 밖에서 질주 중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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