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ㆍ하림 신사업 괜찮나

경기침체기, 대부분의 기업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공격보단 수성에 치중하는 기업도 많다. 하지만 과감하게 신사업에 도전한 기업도 있는데, 부영그룹과 하림이 대표적이다. 부영그룹은 면세점, 하림은 해운업에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문제는 이들 기업의 유동성이 썩 좋지 않다는 데 있다.

▲ 부영그룹과 하림그룹이 신사업 진출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사진=뉴시스]

유례없는 침체기. 수익성을 끌어올리려는 기업의 생존 전략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거나 인수ㆍ합병(M&A) 등을 통해 시장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위험이 따른다. 신사업 진출은 ‘실패의 위험’, 무리한 M&A는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

최근 새로운 사업으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면세점 시장이다. 한국을 찾는 중국관광객이 증가하면서 국내 면세점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어서다. 게다가 정부가 시내면세점 추가 개설을 허용하면서 너도 나도 면세점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특히 주목을 받는 곳은 제주도 시내면세점 사업권이다. 제주도 시내면세점 사업에 출사표를 던진 기업은 롯데ㆍ신라ㆍ부영그룹 등 3곳. 이 가운데 시장의 관심을 받는 곳은 단연 부영그룹(이하 부영)이다. 부영은 롯데나 신라와 달리 주택건설 사업을 핵심으로 하고 있어서다.

부영은 지난해 12월 31일 제주지역 시내면세점 특허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부영은 현재 제주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중문관광단지에 6개의 특급호텔과 리조트 등을 개발하고 있다. 올 3월 개장 예정인 부영호텔에 면세점을 유치해 관광레저산업을 전략 사업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부영 관계자는 “이번 중문 시내면세점 진출은 복합리조트 개발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침체된 서귀포 관광 활성화와 사회공헌 활동에 앞장설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부영의 면세점 진출에 의문을 가지는 시각도 있다. 무엇보다 부족한 자본이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면세점 사업은 다른 사업에 비해 초기 자본이 많이 필요하다. 시내면세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초기에 400억원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문제는 부영에 이만한 자금이 있느냐다. 외형적인 모습만 보면 자금력은 충분해 보인다. 부영은 재계 순위 28위에 올라있는 중견기업으로 자산총액은 15조7000억원에 달한다. 임대주택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다른 건설사와 달리 안전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주력 계열사인 부영주택과 동광주택을 제외하면 안전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전엔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에 돈을 빌려줬지만 최근엔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부영은 계열사인 부영주택과 동광주택으로부터 만기연장을 포함해 10번이나 특수자금차입으로 돈을 빌렸다. 금액은(만기연장 포함) 821억4900만원에 달한다. 지난해 4월엔 86억원의 만기연장과 100억원의 자금차입이 동시에 이뤄지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부영은 계열사끼리의 자금거래를 많이 하는 그룹 중 하나”라며 “하지만 지주회사가 계열사에 돈을 빌려주는 일은 많아도 지주회사가 돈을 빌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말했다. 부영의 케이스가 이례적이라는 거다. 그는 “부영의 경우 보유자산이 워낙 풍부해 초기자본이 부족해 보이지는 않는다”며 “하지만 운영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진다면 사업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부영, 면세점 운영능력 있나

부영이 면세점을 운영할 능력이 있느냐도 논란거리다. 면세점 사업은 초기 자본만큼이나 물품구매력이 있어야 한다. 유명 브랜드의 물건을 얼마나 많이 사올 수 있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결정된다. 지난해 중소ㆍ중견 면세점 업체가 스스로 사업권을 포기한 이유 중 하나는 부족한 물품구매 능력에 있다. 주택건설 사업에 몰두하던 부영그룹이 면세점 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는 힘들 거라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최근 면세점 시장에 진출하는 기업의 공통점은 유통에 경험이 있는 기업들”이라며 “하지만 부영은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론 호텔사업이 면세점 사업과 연관이 있긴 하다”며 “하지만 면세점의 실질적인 경쟁력은 물품구매력에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면세점이 들어설 부영호텔은 아직 개관도 하지 않았다. 부영은 제주특별자치도로부터 제주컨벤션센터를 잇는 지하도를 건설하겠다는 조건으로 지난해 7월 부영호텔 사용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승인 6개월이 지나도록 개관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면세점 사업 진출과 호텔 개장을 맞추기 위해 개관을 일부러 미루고 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 하림이 팬오션 M&A로 해운사업에 뛰어들어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사진=뉴시스]
M&A를 통해 새로운 사업에 나선 기업도 있다. 닭고기업체로 유명한 하림은 국내 1위 벌크선업체인 팬오션을 품을 준비를 마쳤다. 지난해 하림그룹과 JKL컨소시엄이 팬오션 M&A 우선대상자로 선정됐다. 최근에는 본격적인 실사에 나섰다. 사실 하림의 주력 사업은 사료다. 하림의 매출에서 사료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달해 닭고기 부문보다 더 높다. 하림의 목표는 미국의 카길처럼 굴지의 곡물 메이저로 변신하는 것이다. 하림이 운송업체 팬오션에 눈독을 들인 이유다. 하지만 하림의 팬오션 우선협상자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엔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일반적으로 주가에 호재로 작용하는 기업의 M&A 소식이 하림엔 악재로 작용한 것이다. 하림이 팬오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난해 12월 17일 하림과 하림홀딩스의 주가는 각각 10%가 넘는 하락세를 기록했다. 닭고기 전문업체가 해운사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제기돼서다.

해운사 품은 하림, 카길 꿈꾸지만…

인수자금에도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다. 6000억~7000억원으로 예상됐던 최종 낙찰가격이 법원이 내건 8500억원 유상증자 조건으로 1조원선까지 크게 올라갔기 때문이다. 해운업계의 사정이 신통치 않은 것도 문제다. 경쟁이 심한 데다 경기회복세마저 약하다. 최근 국제 유가하락의 영향으로 수혜를 보고 있지만 유가가 언제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하림의 가장 큰 위험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업에 진출한다는 것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하림이 전혀 다른 시장에 진출하면서 오히려 투자자의 불안감만 키웠다”며 “현대차와 현대글로비스와 같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운사업 경험이 없는 하림이 어떻게 팬오션을 운영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며 “곡물 메이저 기업이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기 상황이 좋지 않아 결과를 예상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강서구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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