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참여연대 義人 유영호 전 감리단장

▲ 2011년 참여연대에서 의인상을 받고 있는 유영호 전 감리단장. [사진=더스쿠프 포토]
그는 ‘의인義人(참여연대 선정)’이다. 구린내 풀풀 나는 건설비리를 소신껏 세상에 알린 후 받은 훈장이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좌절뿐이다. 건설업계엔 발을 붙이기 어렵다. 일을 맡기는 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전북 군산시 M타워의 전직 감리단장 유영호. 그의 눈에 비친 ‘사고공화국’은 어떤 모습일까.

5년 전인 2010년 초. 전북 군산시 복판에서 ‘무서운 루머’가 나돌았다. 전북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목표로 건설 중이던 M타워 상가동이 기울었다는 의혹이었다. 귓등으로 흘리기 어려웠다. 루머를 퍼뜨린 이가 M타워의 전 감리단장(유영호씨)이었기 때문이다. [※ 참고: 감리단장은 공사품질과 건물의 안정성을 관리ㆍ감독하는 이다. 주택 300세대 이상의 건물을 지을 땐 감리단장을 반드시 둬야 한다.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지자체장이 지정한다.]

루머의 불길이 거세지자 시공사와 군산시가 맞대응을 시작했다. ‘유영호 전 M타워 감리단장은 2009년 도덕적 결함 등을 이유로 해고됐는데, 이제와서 딴소리를 늘어놓는다’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그해 10월 검찰도 유 전 단장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이쯤 되자 사람들은 ‘해고된 감리단장이 한풀이를 했구나’라고 단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내사를 마친 검찰은 “M타워의 상가동이 기울어진 건 사실”이라며 유 전 단장의 손을 들어줬다.

그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 사례는 또 있었다. 2012년 12월 한국시설안전공단이 M타워의 안전성을 점검했는데, 뜻밖에도 안전등급이 ‘C’에 그쳤다. 이는 준공 된지 6개월밖에 안 된 M타워에 ‘결함’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가 제기한 의혹 그대로였다. 유 전 단장은 이런 공을 인정받아 참여연대가 수여하는 ‘의인상義人賞(2011년)’을 받았다.

참여연대는 “유 전 단장은 군산 M타워의 감리단장으로 활동하면서 기초공사 부실문제를 지적하는 등 역할에 충실했다”고 의인상 수여의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그의 명예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M타워의 안정성 논란도 깔끔히 해소되지 않았다. 소신껏 문제를 제기했지만 변한 건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비슷한 사고가 잇따라 터져도 바뀌는 게 별로 없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다.

✚ 안전문제를 제기한 M타워의 현재 상태는 어떤가.
“위험해 보인다. 큰 틀에서 안전진단을 다시 해야 한다.”

✚ (감리단장으로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소訴를 제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
“2009년 M타워의 기초공사 부실문제를 제기하니까, 군산시가 ‘청렴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감리단장직에서 해고했다. 3년 후인 2012년 2~8월 군산시 의회조사특위에서 M타워의 부실공사의혹을 조사했고, 그 결과 내 주장에 오류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난 감리단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런데 청렴의무 위반이라니…. 명예회복은 중요한 문제다.”

✚ 군산시가 주장한 ‘청렴의무 위반’은 대체 무엇인가.
“감리단장 시절, 소파ㆍ탁자 등 고가제품을 사달라고 시공사에 요청했다는 거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시공사가 되레 집기류를 사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군산시 의회조사특위에서 사실이 밝혀졌다.”

✚ 잘못을 잘못이라고 주장했을 뿐인데, 대가가 혹독하다.
“관행과 싸우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관행 뒤엔 거대한 기득권이 도사리고 있어서다.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이다.”

✚ 2013년 이후 대형사고가 잇따라 터지고 있다. 대부분 불법 건축물과 관련이 있다. ‘안전단추’가 어디서 잘못 끼워졌다고 보나.
“대형사고는 부실설계ㆍ부실시공ㆍ부실안전관리 삼박자가 맞아떨어질 때 발생한다. ‘안전단추’가 특정 부분에서 잘못 끼워진 게 아니라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다. 체육관 지붕이 내려앉은 경주리조트 붕괴사고는 총체적 부실의 대표적 예다.”

▲ 경주 마오나오션 리조트 붕괴 현장. [사진=뉴시스]
✚ 부실설계ㆍ부실시공은 (건축물) 인허가 과정에서 솎아낼 수 있지 않나.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시공사를 감시하는 위치에 있는 게 지자체다. 그런데 지자체는 시공사를 맘대로 제어하지 못한다. 깊은 유착관계 때문이다. 유착은 ‘부실의 싹’을 틔운다.”

✚ 안전관리라도 잘 하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연하다. 대형사고는 언제나 징후가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건축물 등의 안전진단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느냐다. 당신은 민간안전진단업체를 얼마나 신뢰하는가. 내게 점수를 매기라고 한다면 단 10점만 줄 거다.”

과한 지적이 아니다. 국회 국토교통위 이노근(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한국시설안전공단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민간안전진단업체가 실시한 ‘정밀안전진단’ 161건 중 97.5%(157건)가 시정 또는 부실판정을 받았다. 문제가 없는 경우는 4건에 불과했다. 민간업체의 ‘안전진단’이 부실하게 진행됐다는 거다. ‘정밀안전점검’의 성적도 신통치 않았다. 총 1385건 중 234건(16.8%)이 부실판정을 받았고, 문제가 없는 경우는 21건에 그쳤다. 건축물ㆍ댐ㆍ교량ㆍ상수도ㆍ하수처리장 등을 안전진단ㆍ점검하는 민간업체는 국내에 600여개가 있다.

✚ 1월 10일 발생한 의정부 아파트 화재사건의 원인이 ‘이상한 규제 해제’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 정부는 2009년 건축법을 개정해 ‘도시형 생활주택(이하 생활주택)’을 공동주택에 포함시켰다. 이 과정에서 생활주택간 거리가 짧아졌는데, 이게 불길이 쉽사리 번진 원인으로 작용했다.”

✚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일반 아파트는 동과 동 사이를 6m 이상 띄어야 한다. 반면 생활주택은 1m 이상이면 된다. 대부분의 생활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감안해 건물 외벽에 ‘불연재 사용’을 의무화했으면 불길이 쉽게 번지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2009년 건축법 개정 당시 30층 미만의 생활주택을 ‘불연재 사용 의무화’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나를 풀었으면 하나를 묶는 게 원칙 아닌가. 화재사건 하나만 봐도 우리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까.
“사회가 완전히 비틀어졌다. 소신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걸 지켰다간 나처럼 피해만 보는 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 아닌가.”

✚ 그러니까 해법이 있어야 하지 않나.
“글쎄…. 소신과 양심을 지킬 수 있는 생태계가 마련됐으면 한다. 원론적이지만 이게 정답인 듯하다.”

✚ 감리단장직에서 해고되면 감리업무를 볼 수 없나.
“자격이 1년 동안 정지된다.”

✚ 2010년 자격정지가 풀렸겠다.
“그렇다.”

✚ 감리업무를 계속 하고 있는가.
“누가 나처럼 깐깐한 사람에게 감리를 맡기겠나.”

유 전 단장은 감리단장직에서 해고된 이후 단 한번도 감리를 하지 못했다. 업무를 맡긴 사람도, 시공사도 없었다. ‘의인’이라는 훈장을 달았지만 세상에선 ‘불구不具’가 된 셈이다. 대한민국, 아직 이 정도밖에 안 된다. 안전이 지상과제라면 이런 사람에게 감리를 맡겨야 하는 것 아닌가. ‘사고공화국’의 자화상自畵像이다.
이윤찬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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