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20주년 맞은 LG 구본무 회장

▲ 구본무 회장은 “시장을 선도하려면 실행 속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뉴시스]
LG그룹 구본무(70) 회장이 취임 20주년을 맞아 송구영신送舊迎新을 다짐했다. LG 3대 회장을 맡아 계열분리와 글로벌화에 큰 실적을 쌓았다. 구 회장 특유의 ‘소탈과 끈기의 리더십’이 통했던 걸까. 디스플레이와 2차 전지 분야에선 세계 1등을 기록했다. 에너지ㆍ자동차 분야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는데도 열심이다. 이제 치열했던 20년 총수 자리를 점검하고 후임에게 물려줄 때를 생각할지도 모른다.

LG가家 오너들이 대개 그렇지만 구본무 회장 역시 소탈하고 격식이 없는 성품이 트레이드마크다. 지난 1월 15일 취임 20주년 기념 만찬이 치러진 과정에서도 그의 그런 면모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당초 취임 20주년 기념 만찬은 2월 중순께로 계획돼 있었다. 구 회장 취임이 1995년 2월 22일이었기 때문. 하지만 1월 14일부터 이틀간 경기도 이천 LG인화원에서 열렸던 ‘LG 글로벌 전략회의’ 직후 그는 “기념행사도 이때 해버리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최고경영자(CEO) 40여명이 모인 김에 조촐하게 행사를 치르자고 한 것. 회장 비서팀 등은 LG 계열 서브원이 운영하는 인근 곤지암 리조트에서 부랴부랴 만찬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행사는 특별한 순서 없이 CEO들과 만찬을 나누고 두어 시간 만에 끝났다. 20주년을 기념하는 흔한 기념품이나 선물도 없었다. 언론에서는 구 회장이 ‘조용하고 소박한 취임 20주년 만찬’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LG는 그동안 여러 위기를 극복하며 시장을 선도하는 데 한 걸음씩 다가설 수 있었다. LG브랜드가 고객의 삶을 위한 혁신의 상징이 되고, 진정한 ‘일등LG’로 성장해 영속永續할 수 있도록 하자.” 기념 만찬에 앞서 열렸던 글로벌 전략회의에서는 CEO들에게 유난히 ‘실행’을 강조했다. 구 회장은 “사업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을 선도하려면 실행 속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며 “논의 결과들을 실행으로 옮겨 분명한 성과를 얻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성품은 소탈하지만 그의 사업 DNA에는 특유의 ‘끈기’가 숨어 있다. 단기 성과에 급급하지 않고 부단히 도전해 결실을 보고야 마는 ‘뚝심 리더십’의 소유자란 얘기다.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1995년 취임(2월) 직전(1월) 그의 주도로 그룹 CI(기업이미지)를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꿀 때의 일이다. 당시 사내외의 반대가 심했다. ‘럭키금성이 이처럼 유명한데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느냐’라는 불만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을 꿈꿨던 그는 CI 변경을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취임 일성一聲도 CI변경 의도와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취임사에서 그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남이 하지 않는 것에 과감히 도전해 전 부문의 역량을 세계 초우량 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한 것. 의례적인 취임사로 여겨졌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LG는 그의 말대로 한국의 대표적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해 있다. 다음 사례는 2차 전지를 세계 1등으로 키운 일이다. LG화학의 이 사업은 20여년 전인 1991년 태동했다. 그룹 부회장 시절이었다. 미래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영국 출장길에서 2차 전지에 꽂혔던 그는 당시 럭키금속으로 하여금 즉각 연구에 나서도록 했다. 1996년 전지 연구조직을 LG화학으로 옮기고 연구를 계속토록 했다. 하지만 10여 년의 투자에도 성과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소박한 취임 20주년 만찬

여기저기서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 나왔다. 오히려 그는 임직원들을 독려하면서 사업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LG화학은 중대형 배터리 분야에서 세계 1등 자리에 올랐다. LG디스플레이의 성공도 구 회장의 뚝심이 빚어낸 작품이다. LG디스플레이의 액정표시장치(TFT-LCD) 패널 세계시장 점유율은 21.6%, 초고화질(UHD) TV 패널 시장점유율은 28.1%로 각각 세계 1위다.

구 회장은 1998년말 외환위기 당시 정부가 주도한 빅딜 논의 과정에서 반도체사업 유지가 불확실한 상황에 빠졌다. 그는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했던 TFT-LCD사업을 떼어내 별도의 전문기업인 ‘LG LCD’를 설립하는 용단을 내렸다. 1999년에는 네덜란드 필립스로부터 민간기업 사상 최대 규모인 16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해 LG필립스LCD를 출범시켰다. 2008년 필립스와 결별했고, 지금의 LG디스플레이로 거듭났다.

 
이쯤에서 ‘구본무 LG 20년’의 실적을 개괄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LG는 지난 20년간 전자ㆍ화학ㆍ통신서비스 등 3대 핵심 사업을 집중 육성했다. 그 결과 GSㆍLSㆍLIGㆍLF그룹 등과 계열분리를 했는데도 매출액은 30조원대(1994년말)에서 150조원대(2014년말)로 5배나 급증했다(표 참조). 주식 시가총액은 7조원에서 67조원, 임직원 수는 10만명에서 22만명으로 늘었다. 그룹의 글로벌화에도 성과가 컸다. 1994년말 10조원에 불과했던 해외 매출은 2014년말 100조원대로 10배가 됐다. 해외법인은 90개에서 290개로 불어났다. 디스플레이ㆍ2차 전지는 세계 1위이고, TVㆍ스마트폰도 글로벌 시장 선도에 나섰다. 태양광 모듈, 에너지저장장치(ESS), 스마트카 전장부품 등 차세대 성장엔진 육성에도 열심이다.

2003년 국내 그룹기업 최초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것도 구 회장의 주요한 업적에 속한다. LG가 시작하자 SK와 CJ, 두산, GS 등 주요 그룹들이 줄줄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사업 자회사는 본연의 자기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골자다. 오너 일가의 경영권 방어와 3ㆍ4세들의 경영권 승계에 계열사가 동원될 가능성을 최소화했다는 평가다. 구씨ㆍ허씨 가문이 동업했던 LG그룹에서 4개의 계열그룹을 별 잡음 없이 분리시킨 것도 남이 하기 힘든 큰 업적에 속한다. 1999년 LIG 분리를 시작으로 2003년 LS, 2005년 GS, 2007년 LF를 순조롭게 분리했고 지금까지 서로 우의를 잘 지키고 있다. 탈도 많고 말도 많은 한국 재계에서 보기 드문 케이스다.

LIGㆍLSㆍGS 잡음 없이 분리시켜

구자경(90) 명예회장은 회장 취임 25년 만인 70세에 장남 구본무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했었다. 구 회장도 70세가 됐고, 취임 20년을 맞았으니 차기(4세) 회장 승계에 관심을 가질 법하다. 그런 측면에서 재계는 구 회장의 아들 구광모(37)씨가 지난해 11월 ㈜LG 상무로 승진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연말 지주사인 ㈜LG의 3대 주주로 부상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눈길을 끈다. 구 상무가 4대 회장직을 이어 받을 수 있도록 환경 조성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딸 둘을 둔 구 회장은 동생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아들인 구광모씨를 양자로 입적시켰다. 때문에 언젠가는 그가 구씨 가문을 대표해 총수 직을 넘겨받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재계 한 관계자는 “양자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겨줄 구 회장의 심정이 어떨지 모르겠다”고 촌평했다. 골프와 탐조探鳥를 즐긴다는 그도 세월을 막을 도리는 없다. 앞으로는 그가 총수 전성기 20년을 성찰하고 경영권 승계 등 후반기 관리 수순에 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김은경 더스쿠프 객원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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