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형 생활주택 공급과잉 폐단

▲ 1월 10일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4명이 숨지고 12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진=뉴시스]
도시형 생활주택이 단기간에 과도하게 공급되다 보니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도시형 생활주택 사업자들이 과열경쟁을 벌이면서 사업지 비용은 증가하고 건설비는 높아졌다. 때문에 분양가가 올라 임대료마저 비싸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문제는 의정부 화재사고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1월 10일 일어난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사고는 예견된 참사였다. 문제는 앞으로 똑같은 화재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에만 이번 의정부 사고처럼 대형 화재로 번질 수 있는 곳이 10만 가구에 육박한다. 도시형 생활주택이 화재 방재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만큼 지역별 특성에 맞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의정부 화재사고의 원인은 어설프게 규제의 빗장을 푼 것이다. 사실상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아파트 건축물대장을 보면 2011년 9월 2일 원룸형 도시형 생활주택 허가를 받았다. 2012년 2월 20일 착공에 들어갔고, 그해 10월 11일 사용승인을 받았다. 불이 번진 ‘드림타운’과 ‘해뜨는마을’도 2011년 허가받은 원룸형 도시형 생활주택이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2009년 이명박 정부가 도입한 부동산 정책이다. 당시 정부는 1~2인 가구와 서민 주거안정 대책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건물 간격이나 주차 공간 확보 등의 규제를 완화한 주거용 건물이 상업지역에 둥지를 틀었다. 또 원룸형 오피스텔이나 다가구주택과 같지만 이름은 아파트로 붙일 수 있었다. 그러나 아파트에 비해 안전과 편의시설 설치 의무는 대폭 줄었다. 상업지역이다 보니 일조권 적용에도 배제돼 건물 간격이 최소 50㎝만 넘으면 됐다.

10층짜리 ‘쌍둥이’ 건물 형태로 지어진 대봉그린아파트와 드림타운의 간격은 약 1.5m밖에 되지 않았다. 두 건물 사이의 좁은 공간이 마치 연통 역할을 해 드림타운으로 불이 옮겨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외벽은 ‘드라이비트’라는 내부에 스티로폼이 들어 있는 단열재로 마감 처리됐다. 이 소재는 값이 싸고 시공이 간편해 많이 사용되지만 불에 약하다. 그래서 도시형 생활주택처럼 다닥다닥 붙은 건물에는 방염 난연 외장재 처리 시공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이번 화재는 1층 주차장에 주차된 오토바이에서 시작된 불길이 차량으로 옮겨붙어 삽시간에 피해가 커졌다. 주민들에 따르면 대봉그린아파트 건물 1층 주차장은 늘 차들로 붐볐다고 한다. 88세대나 거주했지만 주차장 면적이 작아 주차 시비도 잦았다. 차량 화재가 바로 주거시설로 번질 수 있는데도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다. 주차장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은 11층 이상의 건물이기 때문이다. 미국 방화협회(NFPA) 조사에 따르면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건물의 화재 확산 방지 비율은 9%에 달한다. 스프링클러만 설치돼 있었어도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사고 다음날인 1월 11일 오후 화재현장 인근에 있는 19층짜리 오피스텔에도 불이 났지만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면서 불이 꺼진 것과는 대비된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2009년 도시형 생활주택 도입 이후 2014년 11월 말까지 인ㆍ허가를 받은 도시형 생활주택은 전국적으로 35만6074가구에 달한다. 연도별로는 ▲2009년 1688가구 ▲2010년 2만529가구 ▲2011년 8만3859가구 ▲2012년 12만3949가구 ▲2013년 6만9119가구 ▲2014년 5만6930가구 등으로 2012년까지 급격히 증가하다가 최근 감소하는 추세다.

서민 아닌 사업자 배만 불려

도시형 생활주택은 1~2인 가구 증가에 맞춰 도심 속 소형 주택공급을 늘려 전ㆍ월세난 악화를 막겠다는 취지로, 정부의 규제완화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공급됐다. 정부가 저리로 건설자금을 융자해주고 각종 건설기준까지 풀어준 덕분에 너도나도 도시형생활주택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게다가 면적이 작을수록 규제완화 혜택이 크다 보니 전용 30㎡(약 9평) 이하 원룸형 도시형생활주택이 주를 이룬다. 지난해까지 인ㆍ허가를 받은 도시형 생활주택을 유형별로 보면 원룸형 73.9%(26만3291가구), 단지형 다세대 21.4%(7만6130가구), 단지형 연립 4.6%(1만6485가구) 등이다. 면적별로는 30㎡(약 9평) 미만 64.6%, 30~49㎡(약 9~14평) 4.2%, 50~99㎡(약 15~29평) 10.2%, 100~149㎡(약 30~45평) 8.1%, 150㎡(약 45평) 이상 12.9% 등으로 1인 가구에 맞춘 물량이 많다.

그러나 도시형 생활주택이 단기간 내 지나치게 많이 공급되다 보니 부작용이 커졌고, 서민주거안정이란 정책목표를 달성했는지도 의문이라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공급과잉 폐단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도시형 생활주택 사업자들이 과열경쟁을 벌이면서 관련 사업지 비용이 증가하는 등 건설비 자체가 높아졌다. 이 때문에 분양가가 올라 임대료마저 높아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물량 확보를 위해 많은 부분에서 법을 완화해 주는 등 안전은 뒷전이 됐다. 전세난으로 몸살을 앓는 2~3명 중심의 가구에 도시형 생활주택은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더욱이 임대료가 비싼 고급 원룸 형태의 도시형 생활주택도 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정부는 2013년 주택법 시행령과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켜 지자체장의 판단에 따라 원룸형 도시형 생활주택의 입지를 제한할 수 있게 했다. 전문가들은 기존에 지어진 도시형 생활주택 안전 점검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경제성과 편리성만을 강조할 게 아니라 스프링클러 설치, 외장재 방염 난연 소재 사용, 피난계단과 방화문 등 안전시설 규정을 적절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주거용 건물이라도 정기 소방검사를 하지 않고, 소수만 표본 검사하게 돼 있는 법규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장경철 부동산센터 이사 2002c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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