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을미대란도 ‘인재人災’ 였다
연말정산 을미대란도 ‘인재人災’ 였다
  • 김정덕ㆍ강서구 기자
  • 호수 127
  • 승인 2015.01.28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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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월급의 배신

▲ 박근혜 대통령은 틈 날 때마다 “증세는 없다”고 강조했지만 이번 연말정신 대란으로 증세를 몰래 추진했다는 비판이 나온다.[사진=뉴시스]
‘13월의 월급’이 배신을 때렸다. 보너스를 받는 놀이쯤으로 인식되던 연말정산이 돈을 더 내야 하는 작업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란大亂’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었다. ‘연말정산 대란’을 초래한 세법,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전문가들은 “개정 세법을 두고 우려가 쏟아질 때 정부 관료들이 귀를 기울였다면 지금 같은 대란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연말정산 대란 역시 ‘인재人災’라는 주장이다.

‘13월의 월급’이라던 연말정산이 ‘13월의 세금폭탄’으로 바뀌었다. 5500만원 이하는 세금이 늘지 않을 거라는 정부와 여당의 주장과는 달랐다. 한국납세자연맹에 따르면 연봉 3000만~5000만원 구간에서 연 17만~31만원까지 세금이 증가한 걸로 나타났다. 특히 부양가족공제, 의료비 공제, 교육비 공제 등에서 서민층의 공제액이 줄면서 세금 부담이 많이 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말정산 간소화’는 되레 복잡해져 근로소득자들의 화를 돋웠다. 체크카드와 신용카드의 소득공제율이 달라져서다.

한마디로 연말정산 때문에 난리가 났다. 1월 11일 연말정산이 시작된 후 일주일 만에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고칠 부분이 있으면 보완하겠다”며 수습에 나섰다. 그리고 수습발표 이틀만에 자녀세액공제 상향조정, 2013년 세법개정에서 폐지된 출생ㆍ입양 공제 부활, 독신근로자 표준세액 공제 상향조정 등의 대책을 내놓으면서 ‘오는 5월에 다시 소급적용’하는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소급적용은 전례가 없고, 복잡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국민의 공제액을 줄이게 되는 일이 생길 수 있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홍기용 인천대(경영학) 교수는 “법리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늘어난 세금을 원상복귀하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소급적용이 모든 납세자에게 유리하면 상관 없지만 불리하게 되는 사람이 생긴다면 헌법소원까지 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얼핏 봐도 간단하게 수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도대체 우리나라의 조세시스템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온 걸까. 이번 사태가 벌어진 세법개정안이 나온 2013년 8월에 그 해답이 있다. 시계추를 그때로 돌려보자.

“증세는 새로운 세목을 신설하거나 세율을 인상하는 것이다. 비과세 감면을 축소해 소득배분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조치를 취한 것이기 때문에 증세는 아니다. 세금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총급여 기준으로 3450만~7000만원을 받는 근로자들이 추가로 부담하는 건 1년에 16만원, 월 1만3000원 정도다. 우리 사회에서 그 정도는 어느 정도 감내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2013년 8월 8일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소득 3450만~7000만원 구간은 1년에 16만원 정도 늘어 월평균 1만원 정도 늘어나는 것이다. 세수정비 필요성이 있어 모든 국민이 십시일반하는 셈이다. 세금이 올라갈수도 있지만 세금폭탄까지는 아니다.” - 2013년 8월 9일 나성린 새누리당 의원(조세소위원회 위원장)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면서 공제액이 줄었다고 표현해야지 증세라고 하면 안된다. 중산층 일부 부담이 늘었다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겠지만, 고소득층보다 많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 2013년 8월 9일 김광림 새누리당 의원(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연말정산 대란, 2013년 8월의 부활

당시 정부의 세제개편안에 대해 청와대와 여당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현오석 경제팀이 7개월간 준비했다는 세제개편안이었다. 하지만 각종 비판이 빗발쳤다. “증세가 아니면 뭐냐” “월급쟁이 잡는 세제개편안 아니냐”는 등의 논란이 불거졌다. 반발이 커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새 세제안이 발표된 지 나흘 만에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고, 하루 만에 수정안이 나왔다. 지금 일어난 연말정산 대란의 축소판이었다.

 
하지만 조정된 세법개정안도 여전히 논란거리였다.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일부 야권 의원들은 “부자감세를 철회하지 않고 월급쟁이들의 세금 부담만 늘어나는 불공정한 세제개편”이라며 “한국의 세제는 납세자의 동의를 구하는 세심한 행정과 공평한 세제를 도입해 국민의 공감대를 얻으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증세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데도 정부는 “증세는 없다”고 주장하고, 소득에 따른 적극적인 증세(부자증세)를 하지 않으니 세법이 이상하게 꼬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결국 심상치 않은 냄새를 풀풀 풍기며 다시 조정된 세법개정안은 여야의 합의 끝에 소득세 최고세율 과표구간을 3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내리는 내용을 덧붙여 합의하는 걸로 마무리됐다. 2014년 1월에 개정된 세법이 적용되려면 1년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8월 5일, 세법의 이상한 징후가 다시 포착됐다. 한국납세자연맹이 회원 1만682명의 연말정산 자료를 자체 분석한 결과, 연봉 3000만〜4000만원 구간의 근로소득자 1인당 평균 5만6642원을 더 부담하게 되는 것으로 나와서다. 정부의 세수추계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거였다. 당시 납세자연맹은 “정부가 국세통계연보를 토대로 16개 소득구간별 1명씩 가상의 인물을 두고 평균값을 내 세수증감 효과를 추계했다”며 “정확한 추계를 위해 국세청이 가진 실제 연말정산 자료를 토대로 표본을 추려 추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고 무시한 정부, 부메랑 맞아

그러자 국세청은 “정부는 국세청으로부터 전체 근로자의 급여구간이 상세히 구분된 통계자료를 받아 세수추계를 했고, 16개 구간 통계자료만 활용한다는 납세자연맹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개인별로 부양가족 여부나 공제 신청 내역 등에 따라 실제 공제액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정부가 3000만〜4000만원 급여 구간 근로자 159만명에 대한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1인당 평균 세부담 효과를 상세히 추계한 만큼 문제없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올 1월 납세자연맹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결론적으로 보면 이번 연말정산 대란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세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면 실제로 문제점이 있는지 살펴보고, 각종 외부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의 의견을 물어 검토를 하는 게 순서였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검토는커녕 “우려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일단 덮고 보자는 식의 국정운영이 세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거다. 전문가들이 이번 연말정산 대란의 가장 큰 원인을 소통 부재로 꼽는 건 이 때문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세무학) 교수는 “소득공제 방식을 세액공제로 바꾸는 건 세제의 틀을 완전히 바꾸는 건데, 공청회도 한번 하지 않았다”며 “더구나 국회는 비공개로 관련 세법개정을 처리하는 등 투명성이나 공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상현 납세자연맹 정책전문위원은 “세금 걷는 방식을 완전히 바꿨으면 당연히 이에 따른 문제점을 공유하고, 이를 해결할 과학적인 접근방법이 필요했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며 “세액공제 시 가족형태별로 혹은 소득구간별로 어떤 충격이 있을지 자료를 국회에 넘겨 검토하고 합의를 이끌 수 있도록 했더라면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통이 없으니 국회가 제 역할을 할 리도 만무하다. 2014년 1월 통과된 소득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6명 반대, 30명이 기권, 245명 찬성으로 통과했다. 본회의에서는 기껏해야 일부 야당 의원들이 부자증세를 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만 했을 뿐이다. 이상현 전문위원은 “시민단체의 충고를 귓등으로 흘리는 등 국민을 바보로 아는 관료주의의 폐해”라고 지적했다. 정책을 추진할 때 국회와 각계 전문가, 시민단체까지 머리를 맞대고 소통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는 “국민은 세금을 더 걷는다고 해서 무조건 조세저항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며 “세수 형평성에 기준을 두고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면 증세가 가능한데, 정부는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사실 진보진영에서부터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주장은 많이 나오고 있다. 조세형평성이라는 조건만 갖추면 충분히 증세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세수가 모자란다고 토로하는 정부로서는 반길 일이다.

세법, 어떤 법보다 쉬워야

그럼에도 정부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지 않고 여전히 “증세는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부가 국민을 속였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준구 서울대(경제학) 교수는 최근 칼럼을 통해 “지난해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세법개정은 큰 문제가 없다’고 했던 사실을 반성한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조세 부담만 이동하는 줄 알았다. 증세나 감세가 필요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세제 개혁은 조세 수입에 변화를 주지 않는 수준에서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매번 증세는 없다고 강조해왔다. 당연히 세법개정에 세수 중립성이 반영됐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정부는 증세가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세제 개혁을 추진했다.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다.”

전문가들은 “세법은 그 어떤 법보다 쉬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야 국민 전체로부터 공감대를 얻을 수 있어서다. 그런데 이처럼 이번 세법개정은 경제학자도 헷갈릴 만큼 복잡했다. 왜일까. 시나리오를 써 본다면 이렇다. 부족한 세수를 확보해야 하는 정부로선 증세가 불가피했다. 하지만 증세가 없다고 했으니 가장 쉽고 간편하지만 반발이 심한 직접세는 건드릴 수는 없었을 게다. 대신 복잡하지만 반발이 적은 방법을 택했다. 투명한 근로소득자들을 대상으로 한 공제 축소나 담뱃세 등 간접세 인상이 그것이다. 그러다보니 공감대를 얻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증세를 하게 된 게 아닐까. 지금도 늦지 않았다. 증세가 필요하다면 소득에 따른 부자증세를 말해야 할 때다. 
김정덕ㆍ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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