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승진자 비리 무엇이 문제인가

공기업 내부출신 수장들의 부정부패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이에 따라 곳곳에서 내부출인 인사도 돈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자조적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공기업의 비리는 잘못된 관행이 만들어낸 구조적 비리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장기적 관점에서의 정책이 필요하다.

▲ 공기업 내부출신 인사들의 부정부패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정부의 공기업 개혁에 빨간불이 켜졌다.[사진=뉴시스]

아직 시작 단계인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정책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공기업 내부출신 사장들의 부정부패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어서다. 김종신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조계륭 전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장석효 전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이 그들이다. 최근 공기업 사장들의 비리가 큰 주목을 받는 건 이들 모두가 내부출신 인사라는 점 때문이다. ‘관피아’ 논란을 막기 위해 내부인사를 등용했지만 그들 역시 부정부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원전비리의 ‘윗선’ = 억대 뇌물을 받은 김종신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지난 4일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이와 함께 벌금 2억1000만원, 추징금 1억7000만원을 선고했다. 김 전 사장은 한국전력공사로 입사해 한수원 발전본부 본부장을 거쳐 사장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원전부품 비리의 ‘윗선’으로 지목됐고 2013년 7월 구속됐다. 김 전 사장은 2007년 한수원 사장에 취임하면서 “원전 운영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며 “원전 안전 운영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 지역주민과 국민의 신뢰를 받는 원전이 되겠다”고 밝혔다.

이는 공염불에 그쳤다. 김 전 사장은 2009년 7월부터 2012년 1월까지 원전 수처리 전문업체인 한국정수공업의 이규철 전 회장으로부터 납품계약 체결 등 편의제공 청탁과 함께 1억3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2007년 12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한수원 부장급 인사 청탁과 함께 모기업 대표로부터 4000만원을 받았고 박영준 전 차관에게 700만원을 뇌물을 제공한 혐의도 받아들여졌다. 김 전 사장은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 받았지만 2심에서 징역 5년으로 감형됐다.

◆ 허위 매출 모뉴엘과 검은 거래 = 조계륭 전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은 1조원대의 허위 매출로 3조2000억원을 대출 받은 모뉴엘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조 전 사장은 2011년 6월 무역보험공사가 배출한 첫 공채 출신 사장으로 주목을 받았다. 1992년 한국수출보험공사(현 무역보험공사) 설립과 함께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자리를 옮겼다.  이후 홍보ㆍ비서실장, 무역사업본부장, 전략기획본부장 등의 주요 요직을 거치고 사장에 올랐다. 또한 평소 소신 있고 추진력이 강력하다는 평을 받았지만 ‘검은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연이어 터진 내부인사 비리

조 전 사장은 지난 2013년 5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모뉴엘 대표로부터 9100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출한도 늘려달라는 청탁과 함께 1000만원 상당의 기프트카드를 받았다. 본격적으로 뇌물을 받은 것은 무역보험공사 사장에서 물러난 이후부터다. 조 전 사장은 퇴직 후인 2013년 1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모뉴엘의 법인카드를 받아 2260만원을 사용했고 2880만원을 송금받았다. 또한 지난해 4월에는 모뉴엘 사무실에서 현금 3000만원을 직접 건네받기도 했다.

◆ 가스공사 공채 1기 CEO의 굴욕 = 장석효 전 한국가스공사 사장도 비리혐의로 지난해 12월 26일 불구속 기소됐다. 1983년 가스공사에 공채 1기로 입사한 그는 2011년 1월 자원사업본부 본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2011년 7월~지난해 7월엔 가스공사와 독점적 사업관계를 맺고 있는 ‘통영예선’ 대표로 재직했다. 가스공사 창립 30년만에 사장까지 오른 첫 내부 출신 인사였다. 하지만 2011〜2013년 모 예인선 업체 대표로 재직하면서 업체 이사 6명의 보수 한도인 6억원을 초과해 연봉을 지급하거나 자신의 가족 해외여행 경비를 법인카드로 쓰는 등 회사에 30억3000만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 또한 사장에 취임한 후에도 업체 법인카드로 1억5000만원가량을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 공기업의 구조적 비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기적 관점의 처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이처럼 공기업 사장의 잇단 비리 혐의가 밝혀지자 ‘관피아’를 막기 위한 선임한 내부출신 인사의 한계점이 나타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질적 내부 비리 문제를 안고 있는 내부출신 인사가 관료 혹은 정치인 출신 인사보다 나을 게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기업의 구조적 비리를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공기업의 구조적 비리를 잘 보여주는 사례는 지난해 발생한 한국농어촌공사의 공사발주 비리다.

 내부인사의 대안, 낙하산 아니야

지난해 11월 장비 납품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농어촌공사 전ㆍ현직 직원과 공무원, 브로커 등 27명을 구속기소됐다. 공사금액의 10~15%를 뇌물로 받는 비리가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여기에는 전ㆍ현직 지사장 7명이 포함돼 있었다. 현직에 있는 지사장은 수의계약으로 공사를 발주한 대가로 1500만원에서 최고 1억4700만원의 뇌물을 받아 챙겼다. 게다가 전직 지사장 3명이 납품업체의 브로커로 영입돼 현직에 있는 후배를 상대로 로비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비리를 저지르는 공사 관계자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는 방증이다.

내부출신 인사 비리의 가장 큰 특징은 ‘관행’이다. 공기업 관계자는 “영향력이 있는 자리에 승진을 하면 자연스럽게 관련 업체와 관계가 형성된다”며 “이런 구조적 관행에 계속 노출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의 일탈로 인한 비리가 아니라 허술한 내부통제와 잘못된 기업문화에 의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구조적 비리는 외부에 잘 노출되지도 않는다. 농어촌공사의 경우처럼 비루에 연루된 사람 이외에는 어떤 방식으로 구조적 비리가 발생하는지 잘 알 수 없다. 공기업의 구조적비리가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고 적발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기업의 구조적 비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기적 처방이 이뤄져야 한다. 문제가 있는 제도나 문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강력한 부패방지 제도를 도입한다고 할지라도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또한 처벌을 강화하는 장치를 만들어도 장기적 처방을 필요로 하는 구조적 비리를 제거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부승진 인사의 대안으로 관료나 정치계 인사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낙하산의 대안이 내부인사가 아니듯 내부인사의 대안이 낙하산 인사가 돼선 안 된다는 얘기다. 김상조 한성대(무역학과) 교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에 마련된 CEO 승계 프로그램과 같이 평소에 후보자 풀(Pool)을 만들어 관리해야 한다”며 “자격요건ㆍ검증방법ㆍ추천절차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해 투명하게 운영해야 낙하산 인사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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