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열 박사의 slow 경영학

▲ 불명예 퇴진을 하긴 했지만 김우중 대우그룹 창업주의 기업가 정신은 지금도 유효한다.[사진=뉴시스]
경제가 워낙 주눅이 들어서 그런지 새해 들어 기업가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통령과 경제단체장들은 물론이고 삼성 같은 굴지의 기업들까지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고 나섰다. 마치 기업가 정신만 되찾으면 빈사상태의 우리 경제가 툭툭 털고 일어날 것처럼 보는 분위기다. 도대체 기업가 정신이 어디에 갔기에 이토록 애태우며 찾고들 있을까.  ‘기업가 정신’이란 무엇인가.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기술개발ㆍ기술혁신을 통해 ‘창조적 파괴’에 앞장서는 것이라고 했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과감히 도전해 기회를 사업으로 연결하는 노력들로 정의했다. 기업의 존재 이유인 이윤 추구나 사회적 책임을 다 하기 위해 갖춰야 할 자세나 정신쯤으로 볼 수 있겠다.
사실 2000년대 이전 한국경제 고도 성장기에는 기업가 정신이 상당히 왕성했다. 자원과 자본이 없었던 우리로서는 정부든, 기업이든, 가계든 ‘경제하겠다는 정신’으로 충일할 수밖에 없었다. 고故 정주영씨 같은 이는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준 인물이었다.

그가 1971년(56세) 우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 주며 바클레이 은행 롱바톰 회장을 설득해 유럽 차관을 얻어낸 일화는 유명하다. 지금 세계 1위 조선사인 현대중공업은 그래서 태어났다. 대우를 창업했던 김우중씨 또한 기업가 정신 하나로 수출한국을 견인했던 인물이다. 불명예 퇴진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세계경영’을 염원했던 그의 기업가 정신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런데 요즘은 왜 정재계가 한목소리로 기업가 정신이 실종됐다며 그걸 찾자고 난리들일까. 최근 10년간 횡보를 거듭한 한국경제가 도무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답답한 나머지 기업가 정신이라도 살면 나을까 싶어 그러는 것 같다. 요즘 유행하는 소위 창조경제나 창업 생태계 조성이란 것도 기업가 정신이 수반돼야 하니 더욱 아쉬워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1월 5일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기업인들이 불굴의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달라”며 “한강의 기적은 기업가 정신이 원동력이었다”고 강조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도 신년사를 통해 “우리 경제의 지속성장을 위해 기업들이 신新기업가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 역시 중소기업인들의 기업가 정신 발휘를 촉구했다. 한국 재계의 리더 삼성도 새해 슬로건으로 ‘기업가 정신 재무장’을 들고 나왔다. 이렇게 기업가 정신을 강조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 살아날 것으로 보는 건 단견短見이다. 말은 쉽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도 성장기에는 경제적 과실만 크게 얻어 내면 다소의 흠이 있어도 기업 행위를 사회가 용인해 줬다. ‘기업 활동은 우리를 잘 살게 해 주는 것’이란 일종의 사회적 신뢰와 지지가 있었다.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기업 활동도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때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최근 조현아씨 땅콩회항 사건은 비뚤어진 기업가 정신이 어떤 사회적 대우를 받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예전 같으면 회사일로 치부됐던 일로 그룹 오너들이 줄줄이 옥살이를 하는 시대다. SK 오너 회장 형제는 2년 가까이 교도소에 갇혀 있다.

한화 오너도 옥살이를 했고, CJ 오너는 아픈 몸을 이끌고 형을 살고 있다. 재계는 기업인들에 대한 가혹한 법적용이 투자와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킨다며 아우성이다. 그래도 정치권은 대중들 눈치만 보고 있다. 표 때문이다. 답답한 나머지 기업가 정신이라도 살려 보자고 외치지만 도무지 잘 될 것 같지가 않다. 기업가 정신이 살아나려면 규제 해제, 기업하기 좋은 여건 조성, 사회적 호의가 먼저다. 기업인들의 정신 무장만 강조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닐 것이다. 
이우열 건국대 경영대 겸임교수 ivenc@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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