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냉장고가 동네가게 죽인다”
“큰 냉장고가 동네가게 죽인다”
  • 김미선 기자
  • 호수 128
  • 승인 2015.02.04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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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매물류 전문기업 아신 김홍규 회장

도매물류 전문기업인 아신 김홍규(67) 회장이 새해 들어 골목상권 살리기에 본격 나섰다. 대형 유통사의 위세에 눌린 동네슈퍼(나들가게)들이 되살아나려면 도매물류 전문기업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유통업의 발전방향과 한국경제의 문제점 등을 ‘유통물류’란 특유의 프리즘을 통해 해부하는 재능도 지녔다. 국내 유통물류 개척자이자 이 분야 1인자로 꼽히는 그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 김홍규 아신 회장이 나들가게에 상품공급을 통해 골목상권을 살리겠다고 선언했다.[사진=지정훈 기자]
지난 1월 26일 서울 논현동 아신 본사. 이날 아신 김홍규 회장은 입을 열자마자 “골목상권이 다 죽은 건 큰 냉장고 때문”이라고 했다. 기자의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다. 냉장고 크기와 골목상권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의 답변은 이렇다. “현재 시중의 냉장고는 쓸데없이 크다. 일반 가정도 큰 냉장고는 물론 김치냉장고까지 둔 경우가 많다. 이는 과소비로 연결되고 대형 유통사들이 클 수 있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오죽하면 ‘주부와 냉장고가 대형 유통사만 키웠다’는 말이 나왔을까.

냉장고 거품이 심해진 결과 골목상권이 다 죽게 됐다.” 커진 냉장고를 채우려다 보니 당장 편리한 대형 유통점만 찾게 되고, 동네슈퍼 등은 외면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은 미국과 우리나라가 비슷하다. 미국에서도 이미 동네슈퍼는 없어졌다. 일본의 경우는 그래도 동네슈퍼가 제법 살아 있다고 한다. 가정의 냉장고 사이즈가 비교적 작기 때문이라는 게 김 회장의 분석. 그는 단언한다. “냉장고 크기가 두부 값을 결정한다. 동네슈퍼에서 신선한 식품을 매일매일 사다 먹으면 골목상권이 살아난다. 대기업으로 넘어간 유통물류와 소비자 선택권을 되찾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아래 김 회장은 새해부터 유통물류 사업을 통해 골목상권을 살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의식과 행태는 쉬이 바꿀 수 없는 만큼 사업을 통해서라도 하루바삐 이 일을 해내야겠다는 생각이다. 좀 외롭고 견제도 받지만 아신 같은 업체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라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 왔는지 물었다. 그는 “아신은 2013년 10월 정부로부터 나들가게 물류공급(상품공급) 업체로 지정됐다. 지난해 준비와 시범사업을 거쳐 올해는 전국에 걸친 역점사업으로 이 일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나들가게는 전국에 9000~1만개가 있다. 중소기업청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등은 이들에게 포스단말기ㆍ간판 등 영업시스템을 지원한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 수단인 SSM(기업형 슈퍼마켓)에 대응해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뜻이다. 김 회장은 “정부가 자금 및 시스템 지원을 통해 나들가게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방향을 잘 잡아 주면 좋겠다”면서 “하지만 센터를 짓거나 제반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품공급 시스템 활성화란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신 같은 도매물류 전문회사가 광역별 센터를 지어 본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 사업의 주요한 밑천은 그가 30여 년간 국내 유통물류를 개척하면서 갖게 된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다. 아신은 현재 도매물류(60% 비중)와 3자 물류업(40% 비중)을 병행하고 있다. 도매물류업은 자신이 직접 구매자가 되어 제조사로부터 물건을 사서 물류창고에 들여온 다음 이를 다시 각 점포에 팔아 물류까지 책임지는 사업이다. 3자 물류업은 유통회사와 제조회사로부터 상품 공급을 위탁받아 유통시켜 주고 수수료를 받는 전문 유통물류 사업이다.

이를 위해 아신은 국내 최초로 개발한 소위 ‘SAM(샘)’이란 독자적인 도매물류 시스템을 활용한다. 동네슈퍼에 이를 접목하면 서로 윈윈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동네슈퍼에 재고를 최소화해 주는 JIT(Just In Time) 원스톱 서비스, 냉동탑차를 활용한 콜드시스템 등이 그것이다. 김 회장은 “아신의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나들가게의 고질적인 상품과다ㆍ재고부담이 없어지고 운영자금도 줄어들어 경영 효율도 함께 높아진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오전 10시쯤 나들가게로부터 발주를 받아 오전 11시쯤 제조업체에 상품을 주문한다. 당일 오후 제조업체로부터 주문한 상품이 입고되면 밤새 물건을 분류해 주문한 점포에 각각 보내준다. 점포들은 다음날 아침 8~9시 사이 상품을 진열하고 그날 장사에 바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아신 물류센터와 가게 모두의 재고를 최소화하는 시스템이다. 김 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영국에서도 우리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갔다. 연 4000억~5000억원대에 이르는 물량을 처리하려면 물류센터 규모가 3만3000㎡(약 1만평) 정도는 돼야 한다. 하지만 아신은 9900㎡(약 3000평) 규모로 이 물량을 모두 소화하고 있다.”

“나들가게로 골목상권 살리겠다”

김 회장은 직장생활을 하다 40세(1988년)에 유통물류 사업을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25년 동안 유통물류업을 파고들어 이를 우리나라에 전파한 집념의 기업인이다. 당시로선 생소했던 유통물류업에 젊음을 다 바친 만큼 그의 이 업業에 대한 애착과 열정은 남다르다. 1990년대 초 일본 산업시찰을 통해 그는 편의점 유통물류업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리곤 국내에서 이를 끝까지 밀어붙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그는 다시금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나섰다.

▲ 1. 2014년 겨울, 임직원들과 태백산에 등반한 김홍규 회장. 2. 아신 물류센터를 둘러보는 영국 테스코 관계자들. 3. 임직원 자녀에게 장학금을 수여하는 김 회장.4. 2012년 분당 서울대학교병원 발전후원금 전달식. 5. 올 1월 회사 시무식에서 우수사원에게 시상 중인 김 회장. 6. 김 회장이 '2007 전북세계물류 박람회'에서 회사 홍보 중이다. 7. 아신 30주년 기념행사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김 회장. 8. 2013 아신 남사물류센터 기공식.
동네슈퍼도 살고 도매물류 전문업체도 사는 길이 ‘나들가게 상품공급 사업’에 있다고 판단한 것. 여기에는 대형 유통사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이 숨어 있다. 오랜 체험에서 얻어낸 대형 유통사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이렇다. “현재 대형 유통사들이 사실상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된 소위 ‘상품공급점’은 골목상권까지 대형 유통사가 지배하려는 거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대기업이 유통을 장악하면 소비자들은 결국 물건을 비싸게 사게 되고 제조업체들의 경쟁력도 떨어지게 된다.”

국내 대형마트는 처음엔 창고형 할인점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백화점식 슈퍼가 돼버렸다. 업계에 따르면 25%가 넘는 판매마진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투자비ㆍ운영비 등에 쓰기 위해 상대적으로 많은 마진을 챙길 수밖에 없다는 것. 결국 소비자나 제조업체 모두가 대형 유통사에 종속돼 불리해진다는 해석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유통물류 전문회사가 많이 생겨나야 소비자의 선택폭이 넓어지고 제조업도 좋아진다고 주장한다.

회사와 직원 뜻 맞아야 성장

그는 이렇게 진단했다. “지역별 유통물류 전문회사들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에는 경쟁력 있는 세계적 물류기업이 없어 아쉽다. 외국에서는 대형 유통사들도 전문 도매물류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경쟁력이 강하다. 하지만 국내 유통 대형사들은 물류회사를 자회사로 만들다 보니 전문 도매물류업체가 성장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유통구조는 잘못됐다고 본다.”  아신은 350명의 종업원, 취급 물동량은 연간 6000억~7000억원 상당, 연간 800억원 상당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이다.

김 회장은 무엇보다 스킨십 경영을 중요시한다. 약속이 없으면 무조건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감성경영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그는 회사와 직원들이 뜻이 맞아야 서로 발전한다고 믿는다. 국내 도매물류업의 선구자인 그가 새해 벽두부터 골목상권 살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만큼 앞날이 기대된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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