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라이언 일병 구하기 ②

▲ 영화‘라이언 일병구하기’는 전쟁의 참상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미국에서는 영화등급 판정이 주로 ‘폭력성(violence)’과 ‘선정성(nudity)’에 근거해 이뤄진다. 그런 미국에서 전쟁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여과 없이 담아낸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어떻게 ‘R(Restrictedㆍ성인용으로 제한하는) 등급’ 판정을 피했는지 의문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전쟁의 참상을 사실에 입각해서 보여준다. 일단 영화가 시작되면 독일군 진지가 만반의 ‘환영 준비’를 갖추고 있는 오마하 비치에 미군 상륙정들이 새까맣게 몰려든다. 바닷물 들이치는 상륙정 안에서는 새파랗게 젊은 미군 병사들이 달랑 소총 한 자루에 의지한 채 공포와 긴장으로 마치 사형장을 향하는 사형수처럼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상륙 명령을 기다린다. 보기만 해도 춥다. 몇몇은 십자가 목걸이에 입맞춤할 정신이라도 있지만 대부분은 표정조차 없다. 이미 그들은 시체와 같다. 드디어 상륙작전이 시작되고 독일군의 집중 사격이 시작된다. 많은 병사들이 땅에 발도 못 디뎌 보고 상륙정 안에서 죽어간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병사들의 몸을 무수한 총탄들이 관통하기도 한다. 바다는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든다. 요행히 그때까지 살아남은 병사들은 소총 한 자루를 들고 생사를 오로지 운에 맡긴 채 폭탄이 터지고 총탄이 그물같이 뒤덮은 해변을 그야말로 아무런 대책 없이 질주한다.

사실 이전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전쟁영화는 이런 전투 장면에서 항상 원거리 촬영을 해왔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그린 ‘지상 최대의 작전(The Longest Day 1962)’도 마찬가지였다. 원거리 촬영을 통해 전쟁의 끔찍한 ‘맨얼굴’을 피해 왔던 거다. 적의 진지를 향해 돌진하던 병사가 총에 맞아 고꾸라지고 폭탄에 몸이 튕겨져 나가는 모습이 원거리에서 조망될 뿐이었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발칙하게도 선수의 거친 소리와 땀방울까지 생생하게 잡아내는 새로운 스포츠 중계 기법처럼 병사들 하나하나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많은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몇차례의 총알을 맞고도 살아나거나 멋진 말을 남기고 죽는 그런 군인은 없다. 총에 맞은 병사는 결코 ‘우아하게’ 죽지 않는다. 배가 갈라지고 창자가 쏟아진다. 팔이 잘려 나간 병사는 떨어진 자기 팔을 주워 들고 망연히 해변을 헤맨다. 군의관을 찾아 팔을 붙여 달라고 부탁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파열된 수도관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듯 병사들 몸에서 피가 솟구치고, 카메라 렌즈에까지 핏방울이 튄다.

부상당한 병사는 죽지도 못한 채 공포와 고통에 비명을 지른다. 자기 손으로 자기 다리에 앰플(마취제의 일종) 주사를 마구 찔러댄다. 출혈로 얼굴은 창백해지고, 사지에는 경련이 일며, 자신의 끔찍스러운 부상부위를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그 부위를 더듬어보면서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고통과 공포는 극에 달한다. 그러다 결국 죽는다. 이런 전쟁의 ‘맨얼굴’을 직접 경험한 이들에게는 아마도 전쟁영화나 전쟁을 소재로 한 피 튀기는 오락조차 보기 싫지 않을까.
김상회 한국폴리텍대학 안성캠퍼스 학장 sahngwhe@kopo.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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