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하 한샘 회장

▲ 최양하 회장이 한샘이 파는 7000만원짜리 부엌에서 포즈를 취했다.[사진=지정훈 기자]
“한샘은 가구업계의 독보적인 1위 회사지만 우리가 파는 건 가구가 아닙니다. 우리는 부엌, 침실, 욕실, 거실 등의 공간을 설계해 판매하죠. 장차 주택 리모델링 시장에 진출할 거고요. 언젠가 세계 모든 아파트의 가구는 물론 인테리어를 한샘이 맡는 게 우리의 비전입니다. 인텔이 자사의 프로세서를 사용한 PC에 ‘인텔 인사이드’라는 마크를 붙이듯이 그때가 되면 모든 아파트가 ‘한샘 인사이드’가 되는 셈이죠.”

최양하(66) 한샘 회장은 “아파트도 브랜드 시대지만 래미안, 이편한세상 등의 브랜드는 사실 아파트 골조 브랜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한샘은 ‘인테리어 키친(IK)’으로 선점한 부엌은 물론 거실의 마루와 새시, 욕실 등을 직접 시공합니다. 부엌은 3일, 욕실은 하루이틀이면 해요. 욕실의 경우 도기, 타일 같은 자재를 우리가 만드는 건 아니지만 아웃소싱해 욕실이라는 공간을 구성해 줍니다. 욕실에 대해 소비자가 원하는 건 좋은 변기가 아니라 쾌적한 공간입니다. 마찬가지로 거실도 고객이 원하는 건 편안한 소파가 아니라 소파를 들여놓았을 때 폼나는 공간이에요.”

그는 이렇게 집안의 특정 공간 전체를 세트로 판매하는 회사는 한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침대가 아니라 침대, 사이드 테이블, 장롱, 화장대, 커튼 등으로 이뤄진 침실을 파는 것이다. 자동차 산업에 비유하면 단품 가구를 파는 회사가 자동차 부품 메이커라면 한샘은 완성차 회사인 셈이다.

“소비자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마음에 드는 자재들을 스스로 골랐다고 해서 이들로 꾸민 공간을 마음에 들어하는 건 아니에요. 아파트 리모델링도 취향ㆍ가격대별로 모델을 한 20가지 만들어 고객으로 하여금 그중에서 고르게 할 겁니다. 음식점 메뉴판 보듯 카탈로그에서 리모델링 모델을 보고서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거예요. 음식점에 가서 고추는 청양고추, 고기는 평창 한우 식으로 음식을 주문하지 않잖아요?”

✚ 공간을 판다고 했지만 결국 전문가로서의 안목을 파는 거군요.
“그런 셈이죠.”

그는 올해부터 수출을 확대하려는 중국이야말로 ‘한샘 인사이드’가 잘 맞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의 아파트는 한국처럼 모델하우스대로 시공하는 게 아니라 골조 공사만 마친 상태에서 분양을 한다. 모델하우스 분양으로 바뀌어가는 추세지만 현재 대도시의 경우 60%, 중소도시는 90%가 골조 분양을 한다고 했다. 아파트 건설 물량은 국내의 30배가 넘는 연간 1000만동 규모.

“중국은 집주인이 스스로 알아서 인테리어를 해야 합니다. 마이너스 옵션도 아니에요. 이렇다 보니 골조 공사가 끝난 후 입주하기까지 1년이 걸립니다. 리모델링 시장이 열릴 때도 됐고요. 이 리모델링 시장을 겨냥해 중국의 인테리어 소매 시장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2년 전 그와 한 인터뷰에서 최 회장은 ‘골조만 뺀 모든 것이 한샘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말했었다. 이 모델이 지향하는 가치가 ‘한샘 인사이드’라는 캐치 프레이즈에 잘 집약되었다고 할까.

✚ 스웨덴산 다국적 가구 기업 이케아가 국내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국내 가국업계의 판도가 어떻게 바뀔까요?
“과거 우리나라는 브랜드 가구보다 사제 가구의 비중이 더 컸습니다. 화정, 일산 등 수도권에 가구 단지들이 많았죠. 이들이 온라인몰과 홈쇼핑의 공세로 장사가 안 돼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습니다. 이케아의 시장 진입은 몇몇 브랜드 가구회사들에 기회일 수 있습니다. 온라인에 대응해 그새 가격 경쟁력을 갖췄거든요. 대량생산을 해 품질은 상대적으로 낫고요. 온라인ㆍ홈쇼핑의 득세로 사제 가구에서 브랜드 가구로 고객의 선호가 바뀌었다는 거죠. 이런 변화가 이케아의 가세로 가속화될 거로 봅니다.

이케아가 들어간 후 일본 가구시장도 같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제 가구 대기업들은 경쟁력 있는 협력업체와 손잡고 가격 경쟁력이 있는 제품만 생산해야 합니다. 우리도 직접 생산하는 물량은 20%밖에 안 돼요. 20~30%는 수입해서 팔고요. 영업이 취약한 협력업체로서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죠. 협력업체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가격은 중국산보다 싸게, 품질은 독일제보다 낫게, 디자인은 이탈리아 가구보다 뛰어나게 만들라. 실은 IMF 체제 때부터 제가 해온 얘기예요. 정작 직격탄을 맞은 건 중소 가구 회사들입니다.

이들은 고가품을 전문으로 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겁니다. 대기업을 따라 하려다가는 문 닫아야 할 거예요. 경쟁력 있는 몇몇 브랜드 가구는 더 성장할 거로 봅니다. 가구업계가 재편되는 거죠. 일본의 경우 이케아가 재진입한 후 닛토리라는 토종 회사가 상당히 성장했습니다. 인테리어 가구 시장 자체는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는 대기업ㆍ협력업체 간의 공조가 잘 이뤄진다면 국내 가구업계가 상생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케아도 국내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한국 시장의 특성에 적응해 배송과 시공을 외부 용역회사에 맡기려 한다는 것이다. “이들 업체는 가구 전문이 아닌데 이런 서비스를 얼마나 잘 해 줄지 모르죠. 이케아의 과제죠.”

협력업체와 손잡고 가격경쟁력 갖춰야

✚ 이케아가 국내 중소 가구 회사들과 제휴할 수도 있지 않나요? 한국을 생산기지로도 활용하는 거죠.
“중소기업들이 품질ㆍ가격 경쟁력을 갖추면 그럴 가능성이 있죠. 경쟁력이 있다면 국내 가구업체를 활용하지 왜 관세를 물고 수입을 하겠습니까?”

✚ 업종은 다르지만 과거 월마트, 까르푸 같은 유통 공룡이 한국을 떠났습니다. 이케아도 일본에서 철수한 전력이 있는데 한국 시장에서 손을 뗄 가능성도 있다고 보나요?
“철수 안 할 겁니다. 돈이 많고 장기 투자를 하는 회사입니다.”

✚ 이케아에 대한 한샘의 비교우위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영업사원을 비롯해 배송ㆍ시공 담당까지 일선 근무자가 많습니다. 고비용 구조다 보니 일견 단점이기도 하죠. 그런데 가구는 보통 100만원 이상 가는 고가의 내구성 소비재입니다. 생활용품과 달리 고소득자도 매장만 둘러보고 구매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영업 사원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는 거죠. 반면 이케아 매장에서는 일선 근무자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배송에서 시공까지 전과정을 커버하는 것도 우리의 상대적인 강점입니다. 문제는 서비스의 질이죠. 그래서 고객이 감동할 만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교육을 합니다. 반면 매장에서 직원을 찾기 어려운 이케아는 현행 판매 방식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고객을 감동 못 시켜요. 고객을 감동시키는 건 서비스 즉 사람이지 제품이 아닙니다.”

✚ 한샘만의 고유한 기업문화가 있나요? 한샘 구성원의 DNA라고 할 만한 게 있습니까?
“탁월함에 대한 도전 정신이랄까요? 그 도전을 탁월해질 때까지 합니다. 지난해 품질을 개선하기로 한 후 저도 새벽 4~5시에 나와서 몇 번 회의를 주재했습니다. 그 덕에 성장은 성장대로 하면서 불량률을 몇 분의 1 수준으로 낮췄습니다.” 그는 인센티브 체계도 잘 돼 있다고 덧붙였다. 실적이 좋은 IK 부문의 경우 입사한 지 2년이 안 된 직원 70~80명이 지난해 억대 연봉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혹독하게 일을 시킵니다. 이들 가운데는 입사 초기에 사무실서 자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 최양하 대표가 지난해 3월 한샘 플래그숍 목동점을 둘러보고 있다.[사진=뉴시스]
✚ 요즘 젊은 사람들은 집 장만하기가 어려워 이사를 자주 합니다. 품질은 떨어지고 디자인은 비슷비슷한 가구에 식상해 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값싸고 질 좋은 이케아 가구가 어필할 수 있는 조건인데요?
“젊은 세대의 경우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케아의 대형 매장에 온라인 판매로 대응하려 합니다. 가격이 다양한 우리 온라인 판매 제품은 이케아에 대해서도 가격 경쟁력이 있습니다.”

✚ 이케아의 영향으로 이케아가 강한 DIY(do -it-yourself) 가구 시장이 상당히 커질 가능성이 있지 않나요?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페인트칠을 직접 안 합니다. 심지어 전구를 갈아낄 때도 사람을 불러요. 조립 같은 일을 어려워하는 거죠.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도 하고요. 한국은 또 단독주택의 비중이 작습니다. 급속한 산업화로 주거가 아파트로 바뀐 첫 사례죠. 그 뒤를 중국이 따르고 있고요. 유학파 젊은이처럼 해외에서 이케아를 경험한 사람들이야 이케아를 동경할 수도 있겠죠.”

✚ 한샘의 글로벌 전략은 뭔가요?
“과거엔 지사가 나가 있는 중국ㆍ미국ㆍ일본 시장을 지사 중심으로 개척했는데 앞으로 본사 차원에서 중국과 동남아를 공략하려고 합니다. 내수만으로는 성장의 한계에 달했어요. 중국의 경우 100% 베이징北京공장(화북지역)에서 현지 생산합니다. 앞으로 상하이上海(화동지역)에 공장을 짓고 선전深圳(화남지역)에 공장이나 물류기지를 세우려 합니다.”

✚ 그밖에 올해 경영의 화두가 뭡니까?
“온라인ㆍ홈쇼핑 판매의 비중을 키우고 샤시ㆍ마루 등 미래의 먹거리인 건자재 쪽을 탐색하려고 합니다. 원룸ㆍ오피스텔은 건설사가 인테리어를 해주지 않습니까? 우리는 7000만원짜리 부엌도 홈쇼핑으로 팔아요. 오프라인 매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죠. 온오프의 시너지 효과입니다.” 2년 전 만났을 때 그는 이케아와 미국의 가정용 건자재 및 인테리어 제품 제조업체 홈데포를 결합한 기업 모델을 구상 중이라고 했었다.

최 회장은 21년째 한샘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그가 대우중공업을 거쳐 입사한 1979년 한샘은 매출액 15억원 규모의 부엌가구 회사였다. 당시 부엌가구 1위 회사의 매출액이 한샘의 대여섯 배 규모였고, 가구업계 1위 보르네오의 외형은 10배 이상 컸다. 2013년 한샘은 가구회사로서는 최초로 매출액 1조원 클럽에 가입했다. 대표이사 회장 7년차인 그의 방은 26㎡(약 8평)에 불과하다.

가전 회사는 부엌 회사의 종속변수

✚ 기업의 지속가능한 조건이 뭐라고 보나요?
“시장의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이죠. 세계적인 기업은 시장의 변화를 예측하고 나아가 시장을 바꿔놓습니다. 구글, 아마존 같은 회사죠.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기만 해도 우수 기업 소리를 듣습니다. 저 역시 시장의 변화를 쫓아가기에 급급해요. 시장이 바뀌는데 실기하고 못 따라가는 회사는 망합니다. 대학 시절엔 미국의 GE, 유에스스틸, GM 등 자동차 빅3에 대해 배웠습니다. 직장에 들어오니 마쓰시타, 도요타 등 일본 기업이 최고라고 하더군요. 이들을 벤치마킹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회사가 나왔죠. 기업의 영화란 영원히 지속될 수 없습니다. 흥망성쇠를 겪게 마련이고, 망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기업의 최우선 목표죠.”

✚ 가구 회사 한샘이 IT 업계의 기린아인 구글이나 아마존이 될 순 없지 않습니까?
“아마존은 과거 책과 CD를 팔았지만 이제 안 파는 게 없습니다. 하나의 플랫폼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죠. 한샘은 가구 회사가 아니라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하는 기업입니다. 주거환경과 관련한 비즈니스는 다 하니까 사업 영역이 굉장히 넓어요. 음식 장사, 옷 장사처럼 기본적으로 의식주 중 주생활을 커버하기에 산업 자체는 망하려야 망할 수가 없죠. 아닌 말로 삼성전자는 망할는지 몰라도 시장 변화에 적응하는 한 한샘은 망하지 않습니다.”

▲ “한샘은 가구 회사가 아니라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하는 기업이다”[사진=지정훈 기자]
✚ 공간을 설계해 판매하는 기업으로서 부엌에 이어 거실도 팔겠다고 했는데 그럼 장차 한샘이 거실용 TV를 팔 수도 있나요?
“그런 날이 올 수 있다고 봅니다. 부엌 공간을 팔면서 이미 빌트인으로 냉장고, 식기세척기, 전자레인지 등은 팔고 있어요. 우리 같은 부엌 회사는 냉장고를 끼워팔아도 가전 회사가 부엌을 팔 수는 없습니다. 냉장고에 맞춰 부엌을 꾸미는 소비자는 없기 때문이죠. 부엌 회사와 가전 회사 둘 중 어느 쪽이 종속변수인지는 자명해요.”

✚ 경영권 승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요? 후계자가 누군가요?
“우리 회사에 사장이 셋, 부사장이 둘입니다. 이들 가운데서 후계자가 나올 거고, 누가 되든 저보다 잘할 거로 봅니다.”

✚ 계속 전문경영인 체체로 가는 건가요?
“그럴 겁니다. 오너인 조창걸 명예회장도 같은 생각입니다.”

✚ 오너 2세 시대에도 전문경영인 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까요?
“2세 시대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가 과제죠. 일반적으로는 오너가 주주로 머물지 않으려는 게 현실입니다.”

✚ ‘땅콩 회항’ 사건으로 이른바 오너 리스크 문제가 대두했습니다.
“일찍이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뀌어 그런지 한샘엔 그런 문제가 거의 없습니다. 오너에 대한 의전이 늘 문제인데 조 명예회장은 의전이라면 딱 질색이죠.”

✚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요?
“한샘의 경우 미래에 대한 장기 투자는 오너가 맡고, 일상적인 단기 경영은 제가 합니다. 전문경영인은 단기 실적에 얽매여 사실 미래에 대비하기가 어려워요.”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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