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마킹할 만한 해외 가족기업 문화

▲ 국내 대기업이 지속성장하기 위해선 해외 가족기업의 지배구조, 가업승계문화 등을 배워야 한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국내에선 가족기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가족기업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족기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경영이 가능하고,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등 장점이 더 많다. 문제는 국내 재벌이 악용한다는 점이다. 진정한 가족기업, 해외 사례를 통해 배워보자.

가족기업은 가족이 지배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이때 지배란 구체적으로 경영권이나 소유권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중소규모 가족기업은 경영권과 소유권을, 대규모 가족기업은 소유권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이든 재벌이든 보통 경영권과 소유권을 동시에 지배하는 형태를 띤다. 가족기업은 국가나 규모를 불문하고 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된 어엿한 기업의 한 형태다. 미국은 전체기업의 92%, 국내총생산(GDP)의 49%, 신규 고용창출의 78%를 가족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영국은 상위 8000대 기업의 76%가 가족기업이다.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의 3분의 1도 가족기업이다. 컨설팅업체 매킨지는 2025년에 이르면 매출 10억 달러(약 1조800억원) 이상의 대기업이 1만5000개(2010년 8000개)로 늘어나고, 이중 37%는 개발도상국의 가족기업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도 30대 재벌 중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을 제외한, 26개 재벌기업 모두 가족기업이다.

미국의 가족기업 전문지 패밀리비즈니스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규모가 큰 100대 가족기업(매출액 기준)을 조사해 발표했다. 샘 월튼과 그의 동생 제임스가 1962년에 창업한 월마트(유통)가 2013년 기준 4763억 달러(약 519조원)로 1위를 차지했다. 일본의 도요타자동차, 미국의 포드자동차는 2, 3위를 기록했다. 독일의 알디(유통), 스웨덴의 이케아(가구), 프랑스의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명품패션), 인도의 타타(자동차), 미국의 갭(의류)과 메리어트호텔 등도 순위에 들어가 있다. 우리나라 재벌 중에는 삼성ㆍ현대차ㆍSKㆍLG 등이 100위 안에 포함됐다.

가족기업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기업의 성장과정 중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경영체제도 아니다. 가족기업은 많은 강점을 지닌다.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점, 소유 중심의 경영체제, 품질과 투자수익률(ROI) 중시, 시장 변화에 따른 신속한 반응, 보수적인 자금 전략과 인내자본(patient capital) 등이다. 이것이 효율적인 기업경영을 가능케 하는 요인들이다. 최근 매킨지 조사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족기업의 매출 증가율은 연평균 7%로, 일반기업의 매출 증가율(6.2%)을 넘어섰다.

가문 특유의 철학과 가치관 필요

하지만 국내 가족기업은 다소 다르다. 강점도 있지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총수 1인의 황태자식 경영, 자녀에게 무조건적으로 이어지는 경영권, 가족구성원 간의 잦은 갈등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해외 가족기업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살펴보자. 국내 재벌이 배워야 할 점이다. 우선 가족기업의 특이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특이성은 가족구성원 간의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공유된 기업 철학을 뜻한다. 어떤 가족기업을 말하면 바로 떠오르는 그 가문 특유의 가치관이다. 스웨덴의 대표적인 그룹 발렌베리는 가문이 대대손손 지켜야 할 경영철학을 가족사명서(가훈)로 작성해놓고 실천하고 있다. 여기엔 “후계자는 해군장교로 복무해야 한다” “세계적인 명문대학을 졸업해야 한다” “애국심을 갖춰야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뚜렷한 지배구조도 마련해야 한다. 가족기업의 지배구조는 크게 가족과 기업 측면으로 이원화된다. 가족 지배구조는 가족회의(가족위원회), 가족이사회 등을 말한다. 기업 지배구조는 이사회, 주주총회가 해당된다. 독일 화학ㆍ제약업체 머크는 12대 340년 이상 경영을 이어온 우수한 지배구조를 지닌 기업으로 꼽힌다. 머크는 가족주주 전체로 구성된 가족총회에서 가족이사회(family board) 구성원을 선발하고, 이 가족이사회가 최고의사결정기관 역할을 한다. 실질적인 회사 운영은 전문경영인이 맡는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는 구조다.

가문만의 독특한 가업승계 규정을 성문화하는 것도 눈에 띈다. 중국 요리 소스 제조회사인 이금기李錦記는 현재 4세대가 공동경영을 하고 있다. 후계자인 5세대는 대졸 후 최소한 다른 회사에서 3년 근무한 후, 일반 직원처럼 입사시험에 합격해야 가족기업에 참여할 수 있다. 머크는 연령별 후계자교육(15~20세, 20~25세)을 철저하게 하고 있고, 발렌베리는 할아버지가 손자를 교육하는 격대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지속적인 대화로 가족구성원 간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족기업은 가족구성원 간의 화목과 조화가 중요한데, 이를 위해 가족구성원이 수시로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 발렌베리는 가족사명서에 “일요일 아침마다 자녀와 산책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기술돼 있다. 가족기업의 성공은 가족구성원 간 화합이 근간이 되고 그 위에 기업의 전략적 자원이 더해졌을 때 경쟁우위가 가능하다.

창업주의 주식 기부문화 배워야

지역사회를 위해 기부하는 문화도 국내 재벌이 배워야 할 점이다. 월마트는 창업주의 아내 헬렌이 사망하자 가족회의를 개최해 아내가 갖고 있던 주식 전부를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이로 인해 월튼 가문의 지분은 41%에서 33%로 감소했다. 하지만 국내 재벌의 주식 기부는 흔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경영권을 방어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어서다. 주식 기부의 활성화를 위한 한 방안으로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차등의결권이란 1주=1의결권 구조가 아니라, 오너나 최대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 수보다 더 많은 의결권(예 1대10 혹은 1대100)을 주는 제도를 말한다. 이를 통해 국내 재벌이 안고 있는 순환출자 시스템,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부조리 등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재벌이 이런 문제점을 고쳐 나가는 동시에 지역사회에 책임을 다한다면 비로소 국민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동시에 제2의 도약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남영호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nyh3850@k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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