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동부그룹 구조조정 엇갈린 희비 쌍곡선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왼쪽)과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사진=더스쿠프 포토]
현대그룹과 동부그룹은 2013년 말 자구계획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현재 상반된 결과를 낳았다. 현대그룹은 계획했던 계열사와 자산 대부분을 매각하며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추후 되살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어 놨다. 반면 동부는 매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며 그룹 제조부문 핵심인 제철과 건설 계열사를 잃었다.

현대그룹과 동부그룹은 2013년 말 자구계획안을 발표했다. 그룹 핵심 계열사를 살리기 위해 재무구조 개선에 나선 것이다. 현재 두 그룹 모두 구조조정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대조적이다. 시계추를 1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스타트는 동부가 먼저 끊었다. 2013년 11월 동부는 자구계획안을 발표했다. 당시 동부는 “고강도 자구 계획”이라고 표현했다. 내용은 이렇다. “반도체부문의 향후 투자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동부하이텍을 매각한다. 또한 동부제철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인천공장을 매각하고, 동부건설의 자회사 동부발전당진과 동부익스프레스의 지분도 처분한다.” 시장은 환호했다. 특히 김준기 동부 회장이 그룹 성장동력으로 여겼던 동부하이텍을 매각한다고 나선 점에서 강한 구조조정 의지가 엿보였다.

약 한달 뒤 현대도 자구안을 시장에 내놨다. 현대는 “선제적인 구조조정”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적자에 시달리는 현대상선의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액화천연가스(LNG) 운송부문을 떼어내고, 해외터미널 지분 매각에 나선다”며 “그룹 금융 계열사인 현대증권ㆍ현대자산운용ㆍ현대저축은행도 매각한다”고 덧붙였다. 현대는 이를 통해 총 3조3000억원의 자금을 마련할 계획이다.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2015년 1월 현재 현대는 계획했던 계열사와 자산 대부분을 팔았다. 추후 다시 사올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어 놨다.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어 매각하고, 재투자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한 인수합병(M&A) 전문가는 “현대가 단기적으로 자금을 만드는데 성공했다”며 “현대상선이 살아나면 추후 되살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해운업이 언제 살아나느냐가 관건이다”고 설명했다.

2014년 7월 매각한 현대로지스틱스를 보자. 현대는 그룹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과 일본계 사모펀드인 오릭스가 공동으로 만든 SPC에 현대로지스틱스 지분을 매각했다. 매각 대금 중 일부는 다시 투자했다. 이 때문에 업계는 현대가 현대로지스틱스를 완전히 매각했다고 보지 않는다. 단기적인 유동성 확보 차원이라는 것이다. 또한 현대로지스틱스는 최근 2년간 현대상선이 보유하고 있는 해외 터미널을 인수하는 등 해외 사업에 집중했다. 현대상선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측면이 강했지만 그렇다고 기업 역량이 강화되지 않은 건 아니다. 이런 기업을 현대가 쉽게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른 계열사도 비슷하다. 2014년 2월 현대상선에서 떼어낸 LNG사업 부문은 회사명이 ‘현대LNG해운’이다. 물론 매각 후 일정 부분 재투자했다. 현대증권ㆍ현대자산운용ㆍ현대저축은행 금융 3사도 12월 오릭스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는데, 방식이 조금 다를 뿐 바이 백(buy-back) 형태를 띠는 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현대그룹 관계자 역시 “우선매수청구권과 비슷한 내용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반면 동부는 제조부문 핵심사업인 제철과 건설 계열사를 잃었다. 매각에 나섰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결국 동부제철은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를 체결했고, 동부건설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당초 계획과 달라진 부분이 많지만 어쨌든 구조조정은 마무리 단계에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갈등을 겪었고, 여전히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동부는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을 포스코에 일괄 매각하는 패키지 딜이 무산되면서 자구계획안이 비틀어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산업은행에 경쟁입찰을 제안했지만 포스코와 수의계약을 맺고 매각을 밀어붙였다. 결과적으로 딜이 깨졌고, 이후 동부그룹 계열사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김준기 동부 회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산은을 비판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모든 권한을 위임한 것은 정책금융기관 주도의 구조조정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경영 체질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1년이 경과한 지금 동부는 온갖 불합리한 상황을 겪으며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반면 산은은 기업 자체가 부실한 상태였고, 동부가 무리한 매각금액을 제시해서 거래가 깨졌다고 주장한다. 동부그룹 구조조정을 담당한 산업은행 관계자는 “매각의 성공 여부는 방식이 아니라 매도자의 의지가 중요하다”며 “동부는 기업이 부실한 상태인데도 유리한 조건만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동부 측에서 계열사가 헐값에 팔렸다고 얘기하는데 매각금액은 시장이 결정한다”며 “기업 가치가 높으면 가격이 올라가고 반대의 경우라면 가격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 ①현대그룹의 관건은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이 언제 살아나느냐다. ②동부그룹은 재무구조 개선 과정에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갈등을 겪고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이는 현대가 산은과 협조해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현대도 산은과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의견을 조율하며 매각 작업을 진행했다. 현대는 2014년 6월 금융 3사의 매각금액이 장부가 6000억원의 50~60%대에 머무르자 산은에 매각 연기를 요청했다.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가치를 올리고 매각에 나서기 위해서다. 산은 역시 “합리적인 판단”이라며 현대의 결정을 존중했다. 이후 12월 현대는 오릭스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고, 매각금액은 약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의 계산대로 흘러가지 않은 것도 있었다. 동부는 동부건설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자회사인 동부익스프레스를 2014년 5월 매각했다. 매각 대금 중 500억원을 재투자하며 경영권도 유지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동부발전당진이 예상했던 5000억원의 절반도 안 되는 2000억원에 팔리면서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동부건설은 12월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동부익스프레스의 경영권을 잃었다. 추후 되살 수 있는 콜옵션도 소멸했다.

결론적으로 현대그룹은 그들이 말한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시장이 관심을 가질 만한 기업을 매물로 내놨고, 매각금액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그룹 핵심계열사인 현대상선을 살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반면 동부그룹은 한발 늦은 구구조정으로 제철과 건설 계열사를 잃으며 그룹 제조부문이 대폭 축소됐다. 동부는 앞으로 금융을 중심으로 전자ㆍ농업사업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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