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김차장의 우울한 하루

월급 빼곤 다 올랐다. 식료품 각종 세금과 식료품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연말정산대란’ ‘담뱃값 인상’ 논란으로 유리지갑 직장인을 더 힘들게 했다. 사교육비 부담과 주택담보 대출 상환 부담은 여전히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얇은 지갑이 더 얇아지고 있다.

▲ 오르지 않는 월급과 달리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하는 물가의 영향으로 서민의 삶이 더 팍팍해 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중소 제조업체(전자제품)의 해외영업팀 차장직을 맡고 있는 김영훈(47)씨. 외벌이를 하는 김씨의 월수입은 세후歲後 450만원 정도. 자녀는 중학교 1학년 하나와 초등학교 딸 둘이 있다. 그는 지금껏 월급이 적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소득으로 따지면 중산층 가정이다. 그런데 현실을 그렇지 않다. 김씨 혼자 버는 월급으로 네식구가 살아가는 한달 포트폴리오는 빡빡하다 못해 ‘마이너스’다.

지난 2월 23일. 김씨는 아내의 ‘불만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출근길 김씨는 생수 한잔을 컵에 따라 반쯤 마시고 남은 물을 싱크대에 버렸다. 그러자 아내 박미현(43)씨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마실 만큼만 따르지 왜 아깝게 버려.” 물 한잔에 아침부터 언성을 높이는 아내가 야속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됐다. 생수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올 1월 9일 롯데칠성음료는 음료제품 가격을 평균 6.4% 인상했다. 인상 품목에 포함된 ‘아이시스’ 생수 가격의 인상폭은 6.8%로 평균 인상폭보다 높았다. 게다가 생수 브랜드 1위 업체인 ‘삼다수’도 가격인상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어 생수업체의 잇따른 가격인상이 예상된다. 바야흐로 물 한잔 마시기도 부담스러운 시절이 왔다.

김씨의 출근 시간은 8시30분.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 집에서 동대문에 있는 회사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1시간20분. 월요일이면 교통체증 때문에 10분 정도는 미리 나와야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 광역버스를 타고 회사 인근에 도착한 시간은 8시 25분. 회사까지는 도보로 8~9분. 자칫 잘못하면 지각이다. 제 시간에 도착할 자신이 없었던 김씨는 택시를 타기로 결심한다. 요즘 회사 분위기가 흉흉해 1분이라도 늦으면 눈치가 여간 보이는 게 아니라서다.

맘놓고 물마시기도 어려워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했다는 기쁨도 잠시. 김씨의 얼굴은 금세 일그러진다. 출근에만 6000원(광역버스 2000원+택시비 4000원)을 지출했다. 최저시급 5580원보다 많은 비용이다. 월요일 아침,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회의 시간. 최근 내놓은 신제품 반응이 신통치 않아서인지 대표 표정이 좋지 않다. 최근 다녀온 중국 업체와의 계약건도 답보 상태다. 상황이 좋아지지 않아지면 회사를 관둬야 할지 모르는데, 답이 없다. 회사 내부에서는 신제품 개발을 맡은 팀이 해체될 수 있다는 소문까지 떠돈다.

이런 상황에서 연봉인상은 꿈같은 소리다. 김씨의 연봉이 동결된 것은 벌써 2년째. 회사의 대표는 “굴지의 대기업도 실적악화 영향으로 임금을 동결했다”며 “회사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으니 조금만 더 이해해 달라”고 부탁했다. 불현듯 중견 건설사에 다니다 실직자가 된 친구 권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권씨는 적자에 허덕이는 회사사정으로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회사를 나왔다. 친구에 비하면 나을 수 있지만 김씨의 사정도 특별히 좋지는 않다. 팀이 해체되고 회사 규모가 줄어들면 김씨의 앞날도 보장할 수 없다. 그는 하루살이 인생을 살고 있다.

김씨의 14살인 딸 나영이의 학원비를 내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김씨 가계의 포트폴리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교육비다. 나영이의 교육비로 50만원을 지출한다. 영어ㆍ수학학원에 보내는데 드는 비용이다. 다른 부수비용을 포함하면 50만원이 훌쩍 넘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때까지 다니던 피아노학원ㆍ미술학원은 더 이상 보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나머지는 둘째딸 가영이의 몫이다. 영어ㆍ피아노ㆍ학습지 등에 40만원을 사용한다.

가계 지출을 생각하면 교육비를 줄이고 싶지만 쉽게 그럴 수도 없다. 남들보다 더 시키지는 못해도 비슷한 수준의 교육은 받게 하고 싶어서다. 실제로 김씨와 같은 40대 세대주의 지출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교육비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40대의 53%가 자녀 교육비를 지출 1순위로 꼽았다. 이는 50대도 마찬가지다.

어느새 점심시간. 즐거워야 할 점심시간이지만 김씨는 돈 걱정이 먼저 된다. 30만원밖에 안 되는 용돈으로 한끼에 7000~8000원씩 하는 밥값은 부담이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나니 끊었던 담배 생각이 절로 난다. 매번 빌리기 민망했던 그는 큰맘을 먹고 담배를 한갑 사 피웠다. 김씨는 올 초 담뱃값이 4500원으로 오른 이후 한동안 담배를 끊었다. 하지만 김씨의 성격은 그 정도로 독하지 않다. 담배 한개비로 스트레스를 풀던 것도 김씨에겐 어느새 사치가 됐다.

교육비 가계지출 비중 1위

김씨 가계는 식품비에도 월 80만원가량을 쓴다. 특히 아내 박씨는 아이들의 먹을거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아토피를 앓고 있어서다. 박씨는 쌀ㆍ고기ㆍ과자 등을 구입할 때마다 대형마트의 유기농 코너를 이용한다. 과일ㆍ수산물은 재래시장에서 구매하고 라면ㆍ생수 등의 생필품은 소셜커머스를 이용해 한 푼이라도 싸게 사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도 아내는 불만가득이다. 월급은 안 오르는데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서다. 아내는 “유기농코너에서 구매하는 게 이제는 부담이 된다”며 “베란다에 텃밭이라도 만들어야 할까 보다”고 말한다.

퇴근 직전 김씨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2014년 소득분의 연말정산액이 반영된 월급명세표를 받아들었기 때문이다. 연말정산 환급액이 줄 수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막상 월급을 받고 보니 화가 났다. 월급이 한 푼도 오르지 않아 지출도 전년과 비슷하게 했는데 환급액은 크게 줄었다. 인사과 박 과장은 “환급금액이 지난해 75만원에서 20만원으로 줄었다”며 “연봉 5500만원 이하는 세금이 늘어나지 않을 거라던 정부의 말을 잠시나마 믿은 게 후회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퇴근길 친구 최씨에게 연락이 왔다. 최씨는 대학교 졸업 직후 금융사에 입사해 주위의 부러움을 샀던 고등학교 동창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회사 구조조정의 영향으로 회사를 떠났다. 퇴사 후 다른 직장을 알아보고 있지만 쉽지 않다. 회사를 떠난 지 벌써 8개월째. 최씨는 “퇴사 1년이 지나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도 힘들다”며 “아직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어 막막하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회사 근처 삼겹살집에 들어갔다. 하지만 음식을 시킬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삼겹살 1인분(150g) 1만4000원. 몇년 전까지 1만원 이하였던 거 같은 삼겹살을 최근에는 1만4000원, 1만6000원에 판매하는 곳이 적지 않다.

새는 돈 막고 또 아껴야

소주가격도 4000원으로 올랐다. 대부분 음식점의 소주가격은 3500~4000원으로 이제는 3000원에 판매하는 곳을 찾기 힘든 실정이다.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삼겹살 2인분에 소주 2병을 마시고 3만6000원을 지출했다. 일주일치 점심값이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무겁지만 애써 친구를 위로했다는 뿌듯함에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통 저축할 여력이 없다. 허리띠를 졸라매봐야 ‘빚’이 앞을 가로 막는다. 2009년 김씨는 1억2000만원의 부동산담보대출을 받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한 채(79㎡ㆍ약 24평)를 1억9800만원에 구매했다. 매달 은행에 갚아야 하는 금액은 67만원. 여기에 가계 신용대출로 받은 2000만원의 이자 10만원도 있다.

김씨는 월 20만원짜리 정기예금이 있지만 자유불입식이라 여유가 없는 달에는 그냥 넘어간다. 특히 경조사비 등 생각지도 못한 지출이 있는 달이면 예금을 건너뛰기 일쑤다. 마이너스 통장 1000만원짜리는 개설한지 1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500만원 가까이 지출했다. 그나마 김씨가 저축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이유는 얼마전 가계 포트폴리오를 정비했기 때문이다. 2010년에 구입한 배기량 1500cc 준ㆍ중형차에 월 30만원이 들어간다. 차량유지비용이다. 지난해까지 납부하던 자동차 할부금 45만원을 모두 갚아 부담이 많이 줄었다. 가족과 함께 이동하거나 급한 일이 아니면 잘 사용하지 않아 조만간 처분할 예정이다.
▲ 40~50대 가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지출은 사교육비다.[사진=뉴시스]
휴대전화 비용도 줄였다. 예전엔 중학생 딸까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한달 기본 30만원 정도를 사용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스마트폰 구매 약정이 끝난 딸은 기기를 피처폰(일반 휴대전화)으로 바꾸고 가장 저렴한 표준요금제로 변경했다. 아내는 스마트폰 요금 중 가장 저렴한 요금제(기본 3만4000원)로 김씨는 지난해 무제한 통화가 가능한 요금제(기본 6만9000원)로 바꾼 뒤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자 김씨 가족이 쓰는 휴대전화 비용은 부가세까지 포함해 15만원 정도로 줄었다.

얼마 전에는 아내와 아이 모두 합쳐 50만원 정도 들어가는 보험도 모두 정리했다. 몇년 동안 납부한 금액이 아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낀다고 아끼지만 여전히 김씨는 불안하다. 혹시 누가 아프거나 생각지도 못한 비용이 나갈 일이 많아서다. 실비보험이라도 들까 싶지만 조금 여유를 가진 후에 가입할 예정이다. 월급이 오르면 좋겠지만 당장의 미래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김씨는 내일부터는 도시락을 싸서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김씨의 사례는 대한민국 40대 가장의 자화상이다. 김씨처럼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은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8월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가 완화된 이후 크게 늘었다. 지난해 1분기 1조2000억원을 기록했던 주택담보대출은 2분기 5조5000억원, 3분기 11조9000억원, 4분기 15조4000억원 등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가계 소비를 줄이기 위해 보험 계약을 중도 해지한 사례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금융소비자연맹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생명보험사의 보험해지 건수는 350만건, 해약금액은 14조2415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 동기 267만건, 9조4408억원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가계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것은 ‘지출 줄이기’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보험업계 한 재무전문가는 “찾아보면 줄일 수 있는 부분이 더 많다”며 “유류비ㆍ통신비ㆍ커피ㆍ담배 등을 조금씩 더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득에 비해 교육비가 많은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며 “가계 생활에 악영향을 줄 정도의 지출은 과감하게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미선ㆍ강서구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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