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름시름 앓는 유업계

우유재고량이 최대치를 찍었다. 가격을 내려 재고를 털어내는 게 순리인데, 녹록지 않다. 원유가격연동제에 묶여 가격을 조절하기 어려워서다. 재고물량이 포화상태인 것도 문제다. 재고우유를 다양한 유제품으로 만들 수 있지만 가격경쟁력이 없어 팔리지 않아서다. 국산 우유, 사방이 꽉 막혔다.

▲ 낙농업계가 늘어나는 우유 재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사진=뉴시스]
우유재고량은 지난해 사상 최대치인 23만2572t을 기록했다. 2013년 9만2677t 대비 2배 이상, 2011년(1만8467t)보단 12.5배로 늘어났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무엇보다 우유 소비가 많이 줄었다. 1인당 우유 소비량은 2012년 28.1㎏에서 지난해 26.9㎏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생산량은 최대치를 찍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1년 188만t이던 원유原乳 생산량은 지난해 221만t으로 증가했다. 기온변화폭이 크지 않은데다 온화한 날씨까지 지속되면서 젖소의 생육환경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유 소비가 줄어들다 보니 재고가 늘어난 거다. 또 다른 이유는 높은 가격이다. 2013년 8월 원유가격연동제가 시행되면서 우유 가격이 크게 뛰어올랐다. 당시 L당 원유가격은 834원에서 940원으로 12.7% 올랐다. 우유 제품가격도 평균 9.3% 인상됐다.  원유가격연동제를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우유값은 기본가격에 원유품질의 등급가격을 더해 정해진다. 기본가격은 낙농가의 평균 우유생산비와 소비자 물가상승률에 따라 결정된다.

3~5년 주기로 낙농가와 유업체간의 협상을 통해 원유값을 정하던 정부가 국내 낙농가 보호를 위해 원유가격 연동제를 적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낙농가는 보호하는 데 성공했지만 유업체는 타격을 입었다. 협상을 통해 원유값을 조절할 수 없는 탓에 우유가 남아돌아도 가격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한 유업체 관계자는 “우유값의 70% 정도가 원유가격일 정도로 비중이 높아 가격 인하가 쉽지 않다”며 “우유가 남아돈다고 원유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업체들은 2002년 만들어진 원유쿼터제에 따라 낙농가로부터 정해진 할당량만큼 낙농가로부터 원유를 일정 가격에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한다. 이렇게 구입한 원유로 만든 유제품이 잘 팔리면 다행인데 반대 상황이라면 재고가 쌓일 수밖에 없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재고처리능력이 부족한 것도 우유가 남아도는 이유다. 유업체들은 원유를 전지분유, 탈지분유 등으로 만들어 보관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분유는 아이스크림ㆍ빵ㆍ과자의 원료로 쓰인다. 그런데 이런 분유 역시 지난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박순 낙농진흥원 수급본부장은 “국내산 탈지분유 생산원가는 1㎏에 1만1000원, 수입산은 2500원 정도”라며 “제과ㆍ제빵 업계 시장이 커지면서 분유소비량이 늘고 있지만 정작 국내산 분유 소비는 줄어드는 이유”라고 말했다.

우유 남아 돌아도 가격 못 내려

▲ 코스트코에서 자체 브랜드(커클랜드) 우유 제품이 저렴하게 팔리고 있다.[사진=김미선 기자]
그는 “치즈의 경우 값싼 수입산 치즈(치즈 블록)를 가공하거나 원료를 사용해 만든다”며 “자유무역협상(FTA)에 따라 값싼 유제품 수입이 늘어난 것도 국산분유 소비를 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유가 남아도 전지분유 또는 탈지분유로 만들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유업체 관계자는 “남아도는 분유 탓에 여기저기 창고를 빌려 보관하고 있다”며 “다른 업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하소연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산 우유까지 국내시장에 등장했다. 코스트코는 지난 1월부터 자체 브랜드인 커클랜드의 흰우유를 들여와 팔기 시작했다. 2월 25일 기준 코스트코에서 팔리는 커클랜드 우유(1.89LㆍA등급)는 3990원, 서울유유(1L)는 2520원이다. 코스트코 우유는 100mL당 211원, 서울우유는 252원이다. 게다가 이 우유는 국내 우유와 달리 유통기한이 길어 판매 기간이 충분하다. 우유가 남아도는 시장에 수입우유까지 등장한 셈이다.

이런 이유로 남는 유제품을 수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국내 유업체들은 중국시장의 문을 꾸준히 두드리고 있다. 낙농진흥회 역시 우유시장이 덜 발달된 동남아 지역에 수출할 전략을 짜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녹록지 않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뉴질랜드나 미국의 젖소들은 초지에서 풀을 먹여 키운다”며 “하지만 초지가 부족한 한국의 낙농업계는 수입한 사료를 먹여 소를 키우기 때문에 이들과 경쟁해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해답은 내수시장에 있다는 얘기가 된다.

박상도 한국유가공협회 국장은 “관련 기관이나 기업들이 우유 소비 촉진을 도울 필요가 있다”며 “적극적인 우유 소비 홍보뿐만 아니라 산업체에 단체 우유 급식을 활용하는 등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건 소비자들이 우유를 찾게 만드는 것”이라며 “그러려면 가격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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