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54)

노량에서 맹세로 약속을 정한 삼도연합함대는 이순신의 명령을 받기로 하고 따랐다. 원균 외 모든 이들은 순신의 지용, 은혜, 신의를 존경하며 하늘에 축도를 했다. 그러는 사이 노량목을 떠난 모든 함대가 창선도 앞바다에 도착했다. 또 다른 대첩이 시작됐다.

▲ 원균은 이순신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했다.[사진=더스쿠프 포트]

이순신은 이억기와 원균을 자신의 기함으로 불러들였다. 이번에 싸울 방략을 함께 논의하고 지도하기 위해서였다.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전라좌우도와 경상우도, 이른바 삼도연합군은언제든 통일된 행동을 취할 것, 부질없이 공을 다투지 말고 적을 멸시하지 않으며 신중히 지휘자의 명령에 따라 행동할 것….”

형식적으로 만들어진 삼도연합군이었기 때문에 방략의 지침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이나 이억기나 원균이나 동등한 관직인 수군절도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략을 알린 이순신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지금 성상이 몽진하시와 조정의 명령을 기다릴 수가 없소. 그렇지만 군중에는 일시적이라도 대장이 없으면 질서가 잡히지 않소. 그런데 우리 세 사람이 다 직위가 동등하니, 불가불 한 사람을 대장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오.” 이억기는 서슴지 않고 순신을 추천했다. “물을 것도 없이 대감(이순신)이 대장이 되셔야 합니다. 군사상 정세를 본다면 두말할 것도 없지요.”

원균은 이억기가 자신을 천거하지 않고 순신을 추천하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순신보다 나이도 많고 벼슬길에도 먼저 나섰는데, 뒤진 것이 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 패전으로 분함을 쉬이 표시할 수도 없었다. 원균은 억지로 찬성하며 “두말할 필요 없다”며 “좌수사 대감이 당당히 대장이 되시오”라고 말했다.

순신은 “두 영감이 그리 하신다면 사양하지 않겠소”라고 말하며 칼을 빼어 높이 들었다. 이억기와 원균은 칼을 눕혀 두 손으로 받들며 복종할 것을 표시했다. 맹세의 예식이었다. 노량에서 맹세로 약속을 정한 삼도연합함대는 이순신의 명령을 받기로 하고 따랐다. 원균 외 모든 이들은 순신의 지용, 은혜, 신의를 존경하며 하늘에 축도를 했다. 그러는 사이 노량목을 떠난 모든 함대가 창선도 앞바다에 도착했다.

이순신 총사령관 되다

이튿날 7월 칠석날 아침, 동풍이 크게 불어 파도가 산처럼 높았음에도 순신은 ‘배질을 하라’고 장령을 내렸다. 바람의 방향과 조수의 순역을 잘 알고 있는 순신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전군은 안심하고 신뢰했다. 순신의 함대가 창선도 앞바다에 도착하자 산에 숨어 있던 피난민들이 내려와 반겼다. 그중엔 김천손金千孫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순신을 만나고 싶다고 간청을 했다. 순신을 만난 김천손은 이렇게 밀고했다. “소인이 볼일이 있어서 거제지방에 갔더니 적선 대소 70여척이나 되는 대함대가 영등포 앞바다에서 나타났다가 고성 견내량목에 와서 닻을 내렸소.”

이 밀고는 군사상으로 중차대한 것이었다. 지금까진 적선의 소재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진군했지만 김천손의 보고로 말미암아 적선의 소재, 선척의 총수까지 파악했기 때문이다. 순신은 부서를 각각 정한 뒤 “누구는 모처에 매복할 것” “먼저 갈 자와 도전할 자” 등을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그리고 전쟁할 때 지킬 신조를 조목조목 명시하였다.

一. 결코 제 마음대로 행동하지 말고 약속한 대로 복종할 것
二. 먼저 득승하였다 하여 공을 다투지 말고 제 맡은 직분을 사수할 것
三. 애써 적병의 수급을 베려 하지 말고 많이 싸워 적을 죽이는데 힘쓸 것
四. 애걸하고 항복하는 자는 죽이지 말고 사로잡아서 대장에게 보고할 것


네 조항은 전공을 자랑하기 위해 수급을 베어 모으는 폐풍을 경계한 것이다. 순신은 싸울 때마다 수급을 증거로 보이지 않더라도 누가 잘 싸우는지 아는 것이니 머리 하나를 베는 동안에 적을 둘 셋을 죽이라고 훈시한 거였다.

▲ 이순신의 선봉대가 견내량으로 들어갔다. 적군을 유인하기 위해서였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렇게 정신을 무장한 이순신의 대함대가 기고당당하게 새벽녘의 바다물결을 헤치고 한산도 앞바다에 도착했다. 때마침 태양이 솟아올라 70여척 판옥대맹선의 돛 복판을 비추니, 찬란한 문채를 이루었다. 이순신 대함대의 의기는 충천하였다. 순신의 장령이 내려지자 70여척의 대맹선은 계획한 방향으로 조각조각 나뉘어 사라졌다. 오직 판옥선 6척만이 견내량을 향하여 달려갔다. 다른 배들은 순신의 미리 정한 대로 동서남북에 있는 산그늘과 섬그늘에 숨었다.

광양현감 어영담과 옥포만호 이운룡이 거느린 선봉대 6척은 적함이 정박하고 있는 견내량을 향하여 쏜살같이 달려갔다. 순신은 뱃머리에 올라서 북동쪽 견내량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신의 계획은 이랬다. “썰물에 적함을 한산도 속 바다로 유인해 끌어넣어 싸운다. 저녁이 되면 밀물이 밀려오니 바깥으로 달아나지 못한다.”

순신은 견내량에서는 적함과 싸우지 말 것을 선봉대에 당부했다. 만일 적이 따라오면 달아나 돌아오라고 일렀다. 하지만 한참 동안 선봉대 6척이 보이지 않자 순신은 근심을 했다. 혹시나 솟아오르는 용기를 억제하지 못하고 싸우는 게 아닌가 싶었던 거다. 그 무렵, 원균은 순신의 계획을 비웃었다. “견내량처럼 좁은 곳에 몰아넣고 싸우지 않고 넓고 큰 바다로 끌어내는 게 얼마나 어리석냐”며 코웃음을 쳤다. 날이 늦도록 선봉대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원균은 자기의 선견지명을 자랑하며 순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견내량으로 따라갑시다. 소인의 병선이라고는 7척뿐이니 대감께서 병선 30척만 소인에게 빌려 주신다면 오늘 해가 지기 전에 그놈들을 무찌르고 오리다.”

순신 계획 비웃는 원균

     
순신은 말없이 머리를 흔들며 원균의 말이 옳지 않다는 뜻을 표시하였다. 잠시 후 그 이유를 밝혔다. “견내량과 같이 암초와 얕은 여울이 많은 곳은 지키기에 편리하나 치기에는 마땅치 못하오. 설사 견내량에서 싸워서 이긴다 하더라도 적병은 배를 버리고 좌우에 가까운 육지로 올라 달아나기가 쉬우니 결국 적의 인명적 손해는 적을 것이오. 우리편의 전함도 좁은 목에서 일자로 진을 벌여 좌우로 공격할 수 없어 마치 구멍 안에서 단둘이 싸우는 것 같을 것이오. 우리 배가 혹여 풀등에 올라앉고 혹은 암초에 부딪히면 손해를 면치 못할 것이오.” 이 설명을 들은 제장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균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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