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자 교수의 探스러운 소비

혼전결혼계약서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결혼 전에 시댁·처가 관계는 어떻게 할지, 육아는 누가 맡을지 등을 약속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결혼은 장기적 상호서비스 거래계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결혼도 이젠 ‘사는 시대’다.

▲ 결혼도 계약서를 쓰고 하는 시대가 됐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강남에 사는 30대 여성의 45%는 싱글이라는 통계가 있다.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혼자서도 집값이 비싼 강남에 살 만한 여성들이니 아마도 교육수준이 높고 웬만한 직업이나 소득이 제법 높을 것이다. 결혼율이 낮아지고 결혼연령이 높아지는 게 세계적인 트렌드지만 특히 경제력 있는 싱글여성의 경우 그 트렌드가 더욱 뚜렷하다. 이들은 소비시장에서 골드미스라고 불리는데 소비성향이 강하고 자신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결혼적령기 세대는 얼추 제1세대 베이비부머들의 자녀세대인 제2세대 베이비부머에 해당한다. 이 연령층은 아래·위보다 숫자가 많다. 그러다 보니 여성은 전형적인 결혼파트너로 적절한 3~5세 나이 많은 남성보다 숫자가 많다. 남성 역시 결혼파트너로 적절한 3~5세 나이 적은 여성보다 많다. 이 때문에 일부 집단이 미혼으로 남는데, 여성의 경우 고학력 고소득 집단이, 남성의 경우 저학력 저소득 집단이 싱글로 남는 경우가 많다.

고학력 고소득 여성들의 결혼율이 낮아지는 것은 전통사회에서 결혼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경제적 안정이라는 혜택이 이들에겐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적 독립이 가능한 이들은 결혼으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안정보다 결혼의 심리적 비용이나 결혼·출산으로 잃어버릴 기회비용을 더 걱정한다. 일부는 배우자의 능력이나 경제력을 포기하고 대신 잘생긴 외모나 만만한 성격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남성이 연하인 커플이나 남성은 초혼이나 여성은 재혼인 커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형적이지 않은 결혼형태가 등장하면서 혼전결혼계약서라는 새로운 풍속도도 유행이다.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결혼을 법적 계약의 개념으로 보지 않았다. 이혼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다. 그러나 요즘은 결혼식 전에 혼전결혼계약서라는 것을 작성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서구의 결혼계약서에는 주로 이혼시 재산분할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결혼계약서는 경제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시댁·처가와의 관계, 가사분담을 비롯한 생활수칙, 자녀양육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한 결혼정보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고려하고 있는 미혼자들이 결혼계약서에 가장 포함하고 싶어하는 항목은 시댁·처가와의 관계와 대우에 관한 항목이라고 한다. 혼전결혼계약서의 등장은 전통사회에서 당연시됐던 남편이나 아내로서의 역할이나 의무가 결혼을 망설이게 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음을 나타낸다. 결혼은 사랑에 기반을 둔 약속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중매업체가 중개하는 장기적 상호서비스 거래계약으로 변화하고 있다.

결혼적령기 남녀가 계약서를 안 쓰고는 불안해 결혼을 망설일 정도라면 좀 마땅치 않아도 그리 해줄 일이다. 시댁과 처가에 1년에 몇번 가고 부모에게 각자 용돈을 얼마를 드릴지, 쓰레기 분리배출은 누가 할지, 누가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줄지를 구체화해서 서로 약속할 일이다. 시장에서 라면 하나를 사도 구성성분과 유통기한을 살펴보는 세상인데 결혼이라는 장기적 상호서비스를 어떻게 그리 쉽게 사겠는가. 더구나 이건 AS도 잘 안 되고 교환이나 환불도 어려울 텐데….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  kimkj@catholi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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