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던 정지선 회장의 공격경영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정지선(43)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오랜 침묵을 깨고 통 큰 공격경영에 나서 화제다. 지난 2월 27일 김포에 대규모 교외형 프리미엄아웃렛 매장을 오픈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불과 20㎞ 거리의 파주 신세계·롯데 프리미엄아웃렛 매장과 일대 결전을 선포한 셈. ‘유통 빅3’로 불리는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간 유통대전大戰에 커다란 변수로 등장했다. 후발주자인 그가 과연 롯데, 신세계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재계는 10년쯤 전부터 롯데 신동빈, 신세계 정용진, 현대 정지선씨를 두고 ‘유통 황태자 3인방’이라 불러왔다. 세 사람 모두가 한국 굴지의 대기업 오너 2,3세들이기 때문. 이들은 그동안 경영경험을 많이 쌓았고, 자리도 높아졌다. 신격호(93) 롯데 총괄회장의 차남(오너 2세)인 신동빈(60)씨는 2011년 롯데 회장 자리에 올랐다. 최근엔 한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총괄회장 승계 유력자로 비치고 있다.

2009년 신세계 총괄 대표이사 부회장에 오른 정용진(47)씨는 삼성 창업자 고故 이병철 회장의 외손자이자 이명희(72) 신세계 회장의 외아들(오너 3세)이다. 정지선(43) 현대백화점 회장은 앞의 두 사람보다 나이는 아래지만 2007년(35세) 제일 먼저 회장 자리에 올라 경영권을 행사했다. 그는 고 정주영 현대 창업자의 3남인 정몽근(73)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의 장남(오너 3세)이다.

서로 시차는 좀 있었지만 독자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는 위치로까지 올라섰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을 얘기하면서 굳이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을 거론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3인 3색’ 색깔이 서로 다른 이들이 한국의 ‘유통 트리오 체제’를 구축하고 경쟁하면서 유통업계를 이끌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롯데 신 회장과 신세계 정 부회장, 두 사람은 그동안 비교적 국내외에 걸쳐 상당히 공격적인 경영을 해왔다. 할인점, 아웃렛, 편의점, 해외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활발히 넓혀왔다. 그와는 달리 정 회장은 사업 확장에 별로 나서지 않았다. 본업인 백화점 사업조차 확장하지 않았다. 2012년 충청점 개점과 2013년 서울 무역센터점 확장 정도 외에는 회장 8년 동안 눈에 띄는 확장이 없었다.
 
‘은둔 경영자’ ‘침묵의 경영자’라는 꼬리표가 붙을 정도로 소극적인 경영 행태를 보여 왔다. 재계에서는 “오너 3세 가운데 드물게 35세에 그룹 총수가 되다 보니 외부에 얼굴 내미는 것을 꺼리게 됐고 경영 또한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는 이가 많다. 자연스럽게 현대백화점 경영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가운데 유통업계 3위 자리를 굳히는 모양새를 보여 왔다.

하지만 올 들어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요즘 같은 불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 그랬냐는 듯 강도 높은 공격경영에 나섰기 때문[표 참조]. 경쟁업체 롯데와 신세계에 더 이상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모습으로 비친다. 호사가들은 현대가家 특유의 ‘불도저 DNA’가 그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2017년 회장 취임 10주년을 앞두고 ‘승부수를 던졌다’는 해석도 나왔다.

소극적이던 정지선의 변신

‘유통 빅3’ 간의 대회전이 다시 불붙으면서 관전 재미도 한층 더해졌다. 정 회장이 왜 공격모드로 전환했을까. 무엇보다 급변하는 유통 환경 때문으로 보인다. 키포인트는 백화점 사업 정체다. 업계에 따르면 백화점 시장규모는 최근 3년간 29조원대에서 맴돌고 있다[표 참조].

2012년 29조1000억원, 2013년 29조8000억원, 2014년 29조2000억원에서 횡보했고 더 이상 커지기 힘들다는 현실론이 지배하고 있다. 백화점 매출 감소는 10년 만에 처음이란 분석까지 나왔다. 경기 불황과 해외 직구(직접구매) 열풍 때문이다. 매출 정체 또는 후퇴는 현대백화점도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현대백화점 역시 최근 몇년간 연매출 1조5000억원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업이익도 4000억원 안팎에 머물러 있다. 이에 비해 아웃렛은 최근 날개를 달았다. 최근 3년간 시장규모가 8조7000억(2012년)→9조9000억(2013년)→11조2000억원(2014년)으로 연 평균 13.5%씩 급신장했다는 분석이다. ‘합리적인 소비 트렌드’에 힘입어 백화점 이월상품을 30~70%가량 싸게 파는 아웃렛이 인기를 끈 데 따른 것. 현대백화점이 위기 극복을 위해 아웃렛 진출을 더 이상 늦출 수 없었던 배경이다.

그래서 지난 2월 27일 탄생한 것이 현대프리미엄아웃렛 김포점이다. 정 회장으로써는 오랜 침묵 끝에 던진 회심의 승부수였다. 이 프로젝트에 엄청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교외형 프리미엄아웃렛은 이번이 처음으로 연면적 약 15만3800㎡(약 4만6600평), 영업면적 3만8700㎡(약 1만1727평) 규모다. 지하 2층~지상 3층으로 이스트와 웨스트 2개관 연결 형태다. 서울 도심에서 차로 30분 내 접근이 가능하며, 올림픽대로·강변북로·자유로·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와 인접해 있다. 수도권 전 지역에서 1시간30분 정도 걸리는 입지조건이다.

파주 초입에 위치한 롯데, 신세계 프리미엄아웃렛을 김포 길목에서 차단해 자신들의 고객으로 삼겠다는 전략인 셈. 따라서 서울 서부지역 상권을 놓고 선발 롯데, 신세계와 한판 승부가 불가피해졌다. 현대는 3000억원을 투자한 이 김포점이 프리미엄아웃렛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며 기대에 차 있다. 개점 초반의 영업 성적이 좋다며 언론 홍보에도 적극적이다.

현대 측은 ▲국내 프리미엄아웃렛 중 서울 도심과 가장 가까운 입지조건 ▲구찌·버버리·페라가모 등 총 54개 수입명품 브랜드 수도권 서부상권 내 최다 보유 ▲국내 아웃렛 첫 프리미엄 식품관 운영 등을 자랑하고 있다. 이 회사 김영태 사장은 “경쟁 아웃렛에서 경험할 수 없는 입지적 강점과 차별화된 MD, 가족단위(특히 30~40대)의 다양한 콘텐트 등으로 연 600만명의 고객을 유치해 개점 1년간 매출 4000억원을 달성하겠다”고 다짐했다.  현대는 김포점을 시작으로 오는 9월께 서울 송파구 장지동 가든파이브에 도심형 아웃렛 2호점을, 내년에 인천 송도에 프리미엄아웃렛 2호점을 잇따라 열 계획이다. 내년에 압구정 본점 증축도 예정하고 있다.

 아웃렛 이어 면세점 업계에도 도전장

▲ 정지선 회장과 임직원들이 1월 2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에서 열린 현대백화점 사랑의 연탄나눔 봉사시무식에서 연탄을 나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 회장은 요즘 각광받고 있는 면세점 신규 진출에도 열심이다. 지난 2월 초 별도법인 설립을 통해 서울시내 면세점 입찰에 도전키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내 면세점에 이어 공항 면세점과 해외 면세점으로 영역을 확장할 계획. 이를 위해 국내 대형 면세점에서 10년 넘게 마케팅 전략 및 영업을 총괄했던 임원을 영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그의 공격경영이 기대만큼 성과를 거둘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선발 롯데, 신세계 등이 이미 상당 정도 터를 닦아 놓은 분야(아웃렛 등)에 후발로 들어가 경쟁하기가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빅 이슈인 온라인사업 부진도 현대의 큰 약점이다. 롯데, 신세계 등이 각기 ‘옴니 채널’ ‘사이트 정비’ 등을 내세우며 온라인사업 키우기에 나선 지 꽤 됐는데 현대만은 별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 회장이 모처럼 시도한 공격경영을 통해 롯데, 신세계 등을 추격해 ‘유통 트로이카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될지 주목된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i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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