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 빅3의 출혈경쟁

▲ 특허를 내세운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LNG선 수주를 싹쓸이했다.[사진=뉴시스]
조선업계의 불황이 깊다. 해양플랜트는 유가하락으로 발주가 뜸하고, 선박은 중국 업체의 가격경쟁에 밀린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를 대표하는 조선 3사(현대중공업ㆍ삼성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는 출혈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내 조선업체 빅3의 끝없는 출혈경쟁을 살펴봤다.

조선업계가 위기다. 업황의 침체와 중국, 일본을 비롯한 경쟁국의 약진 때문이다. 하지만 무서운 적은 내부에 있는 법. 최근 벌어지고 있는 국내 조선사간 출혈경쟁이 위험한 복병이다. 최근엔 특허싸움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최근 대우조선해양을 상대로 특허무효소송을 진행 중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천연가스(LNG) 연료공급장치(FGSSㆍ탱크에 저장된 천연가스를 엔진에 공급하는 기술)와 재액화 시스템(자연 기화하는 천연가스를 재활용하는 기술)에 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LNG를 사용하는 선박에는 꼭 필요한 기술이다. 대우조선해양은 2011년 이 장치를 자체 개발해 국내외에 특허를 출원했다. 특허 개수만 해도 200건(국내 127건ㆍ해외 73건)에 달한다.

천연가스를 활용하는 이 기술의 가치는 꽤 크다. 환경규제가 강화돼 선박 연료가 디젤에서 천연가스로 바뀌고 있어서다. 더구나 LNG선의 시장 규모는 연간 약 10조원에 이른다. 이런 시장의 길목을 대우조선해양의 특허가 떡하니 지키고 있었던 거다. 대우조선해양이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총 26척의 LNG선을 수주하며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건 이 특허를 이용한 영업 덕분이다. 업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의 LNG선박 시장점유율은 50%를 웃도는 수준이다.

경쟁 치열한데, 업계는 자존심 싸움

하지만 이 기술을 두고 국내외에서 특허무효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최근 대우조선해양을 상대로 특허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이미 업계의 일반적인 기술이라 진보성과 특허성이 없다는 게 이유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지난해 프랑스 조선사인 크라이오스타(Cryostar SAS)도 FGSS에 관한 특허무효소송을 제기했지만 유럽특허청은 이를 기각했다”며 “기술을 제대로 인정받지 않았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상한 건 특허무효소송이 제기되자 대우조선해양이 특허를 개방한 거다. 지난 2월 16일 대우조선해양은 국내 모든 조선소에 ‘LNG 연료공급장치(재액화 시스템 제외, 해외 조선사 제외)’ 특허를 완전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소송에서 불리해질 것 같으니 발을 뺀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더구나 현대중공업이 문제 제기한 재액화 시스템은 특허 공개에서 제외했다. 마치 ‘선량한’ 대우조선해양을 경쟁사들이 물고 뜯는 것처럼 여론몰이를 하고, 실리는 챙기려는 속셈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특허개방을 받아들이지 않고 소송을 밀어붙이고 있다. 선심 쓰듯 주는 기술을 받는 것과 특허가 무효라서 공유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조선3사가 논란이 많은 특허 하나 때문에 쓸데없는 힘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두고 조선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특허가 무효화되면 현재 특허사용료를 내는 외국 기업도 기술을 맘껏 쓸 수 있으니 국내 조선업계에는 좋지 않다. 특허를 계속 고집하면 가뜩이나 힘든 경영환경에서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니 그것 역시 국내 조선업계에는 득보다 실이 크다. 그러면 또 조선사들이 가격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중국과 일본은 똘똘 뭉쳐 불황을 타개하는 마당에 우리만 뿔뿔이 흩어져 물고 뜯으며 싸우고 있다.” 말 많은 특허를 앞세워 불씨를 지피는 대우조선해양이나 특허 공개에도 진흙탕 특허소송을 계속하는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나 매한가지라는 거다.

특허전쟁만이 아니다. 저가수주 경쟁도 심각한 문제다. 특히 현대중공업의 피해는 심했다. 현대중공업의 조선부문 수주량은 2010년 747만GT, 2011년 869만GT(전년 대비 16.3%), 2012년 666만GT(-22.3%), 2013년엔 1773만GT(166.2%)를 기록했다. 2012년에만 수주량이 조금 줄었고, 2013년엔 전년 대비 3배 가까이 수주량이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조6872억원에서 2조5001억원(-6.9%), 1조470억원(-58.1%), 125억원(-98.8%)으로 꾸준히 급감했다. 일반적으로 수주량 변화가 영업이익에 반영되기까지 약 2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해도 2011~2013년 사이 수주량 대비 이익률은 형편없이 떨어진 셈이다.

실제사례도 있다. 2013년초 나이지리아 선사로부터 LNG선박을 수주하면서 삼성중공업은 1척당 2억2500만 달러(현재기준 약 2479억원), 현대중공업은 1척당 2억1700만 달러(약 2390억원)에 계약했다. 선박 크기는 모두 17만5000㎥급이었다. 당시는 원화가 지금보다 약세였다는 걸 감안하면 약 100억원 가까이 낮은 가격을 제시한 것이다.

▲ 현대중공업은 저가수주로 영업이익이 곤두박질쳤다.[사진=뉴시스]
삼성중공업도 마찬가지다. 2012년 수주량이 크게 줄면서 영업이익도 비슷하게 감소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과 마찬가지로 2013년 수주량이 3배 이상 증가했음에도 영업이익은 급감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삼성중공업 전체 영업이익이 2013년 조선부문 영업이익의 20%에 불과했다. 지난해 4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삼성중공업에 대한 경영진단을 실시하면서 해양플랜트 저가수주로 1조원대의 부실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선3사 중 영업이익이 그나마 잘 나오는 대우조선해양도 2010~ 2011년 해양플랜트 부문 단가경쟁에 돌입해 수익성을 떨어뜨린 바 있다. 현재의 해양플랜트는 수주 단위가 크더라도 국내 조선사가 직접 설계를 하거나 주요 기자재를 납품하지 않는다. 때문에 수익성이 낮다.

최소한의 상도 지켜야 공생

저가수주는 불황기에 살아남기 위한 조선업체들이 적극적인 몸부림이다. 도크를 놀리는 것보다는 저가라도 일감을 받아 인건비를 충당하는게 더 낫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그럼 가격 담합이라도 하라는 거냐”라는 푸념이 나온다. 문제는 저가수주가 업계를 황폐화한다는 거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관계자는 “저가수주는 협력업체의 납품단가 인하 압박으로 고스란히 이어지면서 업계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더구나 발주사들의 입김이 세지면 업계에서 살아남더라도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조선업계가 중국의 추격과 일본의 부활에 대비하려면 최소한의 ‘상도商道’를 지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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