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어떻게 진화했나

▲ 보이스피싱 수법이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정부와 금융회사가 근절대책을 수차례 내놨지만 보이스피싱은 수법을 바꿔가며 사람들을 농락한다. 특히 가파른 속도로 발달한 IT기술이 보이스피싱에 날개를 달아줬다. 발신번호 조작은 기본. 이전의 방식이 알려지면 주요전술과 기법을 즉시 변경했다. 보이스피싱의 진화를 살펴봤다. 금융사기범을 미치도록 잡고 싶지만 그들은 점점 똑똑해지고 있다.

지난 3월 10일 금융감독원이 ‘서민금융 지킴이 1호’를 발령했다. 금감원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사례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의 방법은 이렇다. 먼저 시중은행과 비슷한 번호로 전화를 건다. 통화에 성공하면 해킹 위험이 있으니 본인인증 절차를 밟으라는 내용으로 개인정보 입력을 유도한다. 전화를 받지 않아도 시도는 계속되고 다음과 같은 내용의 문자를 보낸다. ‘해외접속 결제시도 IP로그인 수집으로 고객정보 유출이 추정되니 금융안전을 위해 본인확인 인증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뒤를 이어 ‘금감원 은행전산보안팀 이동수 과장입니다. 해킹유출 연락드렸으나 부재중으로 연결이 안 됩니다. 빠른 보안강화 하세요’란 내용의 문자와 함께 그럴듯한 대표번호와 070으로 시작하는 직통번호가 안내된다.

이쯤 되면 으레 보이스피싱이라 생각했던 사람도 혹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개인정보를 입력하거나 통화를 하는 순간 보이스피싱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것이다. 특히 ‘금감원 이동수 과장’ 사례는 보이스피싱 범죄가 증가한다는 점을 역으로 이용했다. 안내문자에 ‘고객정보 유출이 추정되니 금융안전을 위해…’라는 문구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게다가 직통번호를 안내해 피해자 스스로 전화를 걸도록 유도했다. 보이스피싱이 진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2006년초 등장한 보이스피싱은 2008년까지 가파르게 증가했다. 2009년 국제전화 식별번호 표시제도의 시행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2011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피해를 막기 위한 정부ㆍ금융권ㆍ소비자의 노력이 이어졌지만 보이스피싱의 전략은 더 빠르게 발전했다. 굼뜬 단속과 규제의 손길을 비웃듯 보이스피싱은 진화를 거듭한 셈이다. 사실 보이스피싱하면 어눌한 중국동포 말투를 쓰며 금융기관과 정부기관을 사칭하는 게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금융사기범들은 명확하고 정제된 표준어를 구사한다. 발신자 제한이던 번호도 금융회사나 정부기관의 전화번호로 둔갑한 지 오래다. 불특정 다수 혹은 노인층만을 대상으로 하지도 않는다. 유출된 개인정보를 이용해 확보한 주거래 은행, 통장개설일자, 대출신청여부 등 정보를 통해 특정인을 유혹한다. 대출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대출 알선을, 취업이 급한 취업준비생에게는 일자리를 미끼로 접근한다.

범죄 수법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수법이 들통 나면 사칭기관과 유인방법에 변화를 준다. 국세청ㆍ금융회사ㆍ금융감독원ㆍ법원ㆍ검찰ㆍ이동통신사ㆍ우체국ㆍ택배회사 등 사칭이 가능한 기관은 모두 사용할 정도다. 가파른 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IT기술은 보이스피싱에 날개를 달아줬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사전에 스미싱(문자사기)과 파밍(허위사이트 유도)을 이용해 고객정보를 빼내고 이를 범죄에 사용한다. 해킹으로 확보한 메신저 아이디를 사용하는 ‘메신저 피싱’도 등장했다. 통장에 있는 돈만 노리는 것도 아니다. 휴대전화를 개통하면 대출이 가능하다고 속이고 개통된 최신 스마트폰을 중국으로 빼돌린 사건도 발생했다.

김두환 범죄예방연구소 소장은 “보이스피싱 수법이 진화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야 할지 모르는 금융소비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지만 다양한 사례를 전파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보이스피싱의 경우 어떤 수법이 통하면 유행처럼 번지는 경우가 많다”며 “일단 피해를 입으면 검거나 보상을 받기 어려운 만큼 스스로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