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3년차 단골메뉴 ‘사정’

▲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앞에서 검찰의 강력한 수사 촉구 집회를 열고 있다.[사진=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이 칼을 빼들었다.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비리를 뿌리뽑겠다’며 사정을 시작한 거다. 예상대로 전 정권인 MB정부의 인사들이 고구마 줄기 따라나오듯 줄줄이 검찰수사선상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수사 아이템은 새로울 게 없다. 포스코 영포라인과 자원외교 비리의혹은 MB정부 때도 검찰이 뒤적거렸던 거다. 뻔한 사정정국, 왜 시작된 걸까.

또 ‘사정정국’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7일 “방위산업 비리를 넘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비리를 뿌리뽑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비리문제를 두차례나 ‘범죄’라고 못박았다. 이어 “사회 각 부문에서 켜켜이 쌓여온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단호하게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기업의 참여와 협력을 독려하던 박 대통령이 ‘비리와의 전쟁’을 강력하게 시사하며, 사정칼날을 꺼내든 이유는 뭘까.

한편에선 무너질 대로 무너진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분석한다. 청와대 문건유출 논란이나 인사문제 등으로 잃어버린 정국의 주도권을 ‘사정’을 통해 되찾으려 한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세운 ‘4대 개혁작업’이 재계를 비롯한 각 분야 기득권의 저항에 밀려 지지부진하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사정카드’를 꺼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정치적 행동’의 결과물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최근 검찰의 예봉이 이명박(MB) 전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어서다. 아직은 초기단계지만 포스코, 자원외교, 방산비리 등에 대한 수사가 무르익을 경우, MB 측근들이 줄줄이 수사대상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MB와 포스코 = 포스코건설의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정준양 전 회장과 MB 측근과의 유착관계를 밝혀내는 데 힘을 쏟고 있는 듯하다. 포스코건설의 비자금 조성 의혹, 포스코플랜텍의 부실기업 인수ㆍ합병(M&A) 특혜 의혹, 철강유통업체 포스코P&S 역외탈세 의혹 등을 수사한 후 포스코그룹 전반으로 수사범위를 넓힌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정 전 회장은 지난 2012년 서울 양재동 복합물류센터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의혹사건이 불거졌을 때, MB 측근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시달린 바 있다. 검찰은 당시 물증을 확보하지 못해 수사를 중단했다. 검찰이 포스코 건설이 해외에서 조성한 비자금의 규모와 사용처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춘 이유다. 포스코건설의 비자금 꼬리가 검찰수사에서 포착될 경우, 2012년 당시보다 훨씬 진일보한 수사결과가 나올 수 있다.

포스코그룹이 무리하게 계열사를 M&A하는 과정에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MB정부 실세가 외압을 넣었다는 의혹에도 불씨를 댕겼다. 검찰이 성진지오텍과 삼창기업을 예의 주시하는 이유다. 두 회사는 경영상 어려움을 겪다가 포스코 계열사에 인수됐는데, 이 과정에서 박 전 차관, 이상득 전 의원이 힘을 넣었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성진지오텍 전 회장 J씨는 박 전 차관, 이두철 삼창기업 회장은 이 전 의원과 관계가 돈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박 전 차관, 이 전 의원은 MB의 세력인 ‘영포회(경북 영일ㆍ포항)’와 연관돼 있고, 이 영포회는 또 ‘포스코’와 밀접한 관계다. 검찰 관계자는 “포스코만큼 MB정권과 유착설이 난무했던 기업은 드물다”며 “아직은 수사 초기 단계라서 정확하게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가 분명하지 않지만 중요한 건 수사가 시작된 이상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말했다.

검찰 예봉 ‘영포회’에 맞춰져

◆ MB와 자원외교비리 = MB정부 시절 활발하게 이뤄졌던 자원외교에도 검찰수사의 초점이 맞춰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18일 자원개발 비리 의혹과 관련해 경남기업, 한국석유공사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경남기업이 석유공사가 추진한 러시아 캄차카 석유탐사사업에 대한 비리 정황을 잡고 수사 중이다. 이날 압수수색 대상에는 경남기업 대주주 성완종 회장의 자택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의 암바토비 사업을 둘러싼 의혹에도 검찰수사가 진행중이라는 말도 나온다. 암바토비 사업에서 철수한 경남기업의 지분을 광물자원공사가 고가에 매입, 116억여원의 손실을 입은 게 이 전 의원, 김신종 전 광물공사 사장 등 MB정부 실세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어서다.

제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지낸 성완종 회장은 대표적인 친이명박계(친이계)로 분류됐던 인물이다. 경남기업의 대주주인 그는 충청 출신 정ㆍ관계 인사와 언론인으로 구성된 ‘충청포럼’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또한 성 회장은 친이계의 큰형님격인 이상득 전 의원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도 알려졌다. 김신종 전 사장은 MB 최측근 인사로 꼽힌다. 이 전 대통령 해외순방을 9차례 동행하고 이 전 의원의 자원외교를 7차례 수행하는 등 MB 자원외교을 사실상 이끌었다. 성 회장과 김신종 전 사장은 MB정부 출범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국가경쟁력강화위 과학비즈니스벨트 태스크포스(TF)에서 민간자문위원으로 함께 활동했다.

검찰수사가 MB정부를 직접적으로 겨냥하자 MB 측근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자원외교 부정부패 척결 방침이 MB정권을 겨냥한 표적수사가 아니냐는 거다. 친이계 좌장으로 불리는 이재오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최근 것부터 수사해야지 5~6년 묵혔다가 다시 수사하는 건 수사원칙에 맞지 않는다”며 “검찰이 부패를 발견해도 가만 뒀다가 정권이 바뀌면 수사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검찰’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다는 거다.

누구를 위한 사정정국인가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은 “노태우ㆍ김영삼ㆍ김대중ㆍ노무현ㆍ이명박 정부 모두 딱 3년차에 접어들면서 전 정권을 수사했지만 실패했다”며 “이런 수사는 정권의 레임덕 현상을 반전시켜 보겠다는 의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의 ‘사정정국’을 이렇게 평가했다. “포스코, 자원외교, 방산비리 전면수사는 이명박 회고록에 대한 박근혜의 답변이다.박근혜 정부의 경제 살리기 등 실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은 상태에서 기강 다잡고 지지율 유지하는 최고의 방법은 ‘사정’이다.”
이호 더스쿠프 기자 rombo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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