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부지 인수전으로 본 기업 DNA
현대차가 지난해 9월 낙찰 받은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공사 빌딩(대지 포함 총 7만9300㎡ㆍ약 2만4000평). 현재 이 건물에는 현대글로비스ㆍ현대제철ㆍ현대파워텍ㆍ현대위아ㆍ현대종합특수강 등 현대차그룹 5개 계열사가 입주해 있다. 하지만 분위기는 아직 썰렁하다. 한전의 흔적도 많이 남아 있다. 건물 1층 로비에는 한전 스마트 전력 모형이 놓여 있고, 건물 밖에는 전력수급 현황판이 돌아가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입주를 환영합니다”라는 외환은행의 팻말이 없으면 달라진 점을 느끼기 어렵다.
이런 분위기가 감도는 덴 나름의 이유가 있다. 5개 회사가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조만간 건물을 비우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이르면 2016년 하반기 한전부지에 새로운 그룹 사옥을 지을 계획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한전부지에 업무시설(그룹 사옥 포함)ㆍ컨벤션센터ㆍ호텔ㆍ쇼핑몰 등을 건설해 세계적인 자동차 비즈니스센터로 조성할 예정”이라며 “이것이 현대차가 구상하는 글로벌 비즈니스센터(GBC)”라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올 1월 말 서울시에 한전부지 개발 구상과 사전협상 제안서를 제출했다. 코엑스~한전부지~서울의료원~옛 한국감정원~잠실종합운동장 일대(72만㎡ㆍ약 21만8000평)를 국제회의장과 관광숙박시설이 어우러진 국제교류 복합지구로 개발하려는 서울시와 사전 협의를 하기 위해서다. 현대차의 ‘GBC 프로젝트’가 3부 능선을 넘은 셈이다. 한전부지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진통이 따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진척률이다.
시계추를 한전부지 인수전 당시로 돌려보자. 2014년 8월 29일, 한전부지 매각 공고가 나왔다. 매각 형태는 최고가 경쟁 입찰, 마감은 9월 17일이었다. 서울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 땅’이라고 불릴 만큼 노리는 업체가 많았다.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감정평가액만 3조3346억원에 달했다. 입찰경쟁이 펼쳐지면 금액이 얼마나 오를지 전문가조차 쉽게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두 그룹은 입찰보증금을 놓고 고도의 정보전과 머리싸움을 펼쳤다. 한전부지 입찰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운영하는 인터넷 공매시스템 ‘온비드’로 진행됐다. 입찰규정에 따르면 입찰자는 가상 예금계좌에 입찰금액의 5% 이상을 입찰보증금으로 입금해야 한다. 삼성과 현대차는 입찰보증금을 단순하게 써내지 않았다. 상대방에게 최대한 금액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입찰금액 정보를 숨겨라
특히 현대차는 ‘더블 전략’을 택했다. 예상금액보다 더 많은 입찰보증금을 써내 경쟁상대에게 혼란을 주려는 목적이었다. 금융권과 인수ㆍ합병(M&A)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약 1조원을 입찰보증금으로 냈다. 10조5500억원에 한전부지를 낙찰 받은 현대차는 이 금액의 5%인 5000억원가량을 입찰보증금으로 입금하면 됐다. 그런데 2배의 입찰보증금을 써낸 것이다. 삼성이 입찰에 못 들어오게 최종입찰금액을 커보이게 만든 거였다. 반대로 삼성은 1회가 아닌 3회에 걸쳐 입찰보증금을 나눠 입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은 정보도 노출시키지 않겠다는 전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1차에 약 3000억원, 2차에 약 1000억원의 입찰보증금을 냈다. 3회까지 낸 금액을 포함하면 총 5000억원가량이다. 입찰보증금을 토대로 입찰금액을 계산하면, 삼성이 생각한 최종 입찰금액은 1차 6조원, 2차 8조원, 3차 10조원으로 추정된다.
삼성은 “지난해 한전부지 인수전이 끝난 후 삼성의 입찰가가 시장에 떠돌았지만 회사 측에서 인수금액을 공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전부지 인수전은 삼성과 현대차의 전략과 DNA를 엿볼 수 있을 정도로 뜨겁게 전개됐다”며 “한전부지가 그만큼 노른자 땅이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현대차는 치열한 입찰경쟁 끝에 한전부지를 끌어안았다. 2015년 9월 25일까지 남은 부지대금을 내면 인수 절차가 완전히 마무리된다. 한편에선 과도한 투자라는 논란도 제기된다. 그러나 “GBC의 미래가치를 보고 과감하게 베팅했다”는 게 현대차의 입장이다. 이를 현실로 만드는 것 또한 현대차의 과제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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