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낙관론자에게 고한다

초저금리 시대가 열렸다. 한국경제 사상 첫 1%대 기준금리 시대다. 한편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출금리가 낮아져 가계부채가 더 늘어나는 게 아니냐는 거다. 정부 관계자들은 “가계부채는 한국경제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론을 편다. 하지만 시장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를 키운 것도 ‘괜찮겠지’라는 낙관론이었다.

▲ 2007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저금리에 따른 가계부태 증가에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2010년 6월 18일. 미국 주택도시개발부가 ‘2010년 연례 노숙인 평가보고서’를 발표했다. 내용은 대략 이랬다. “… 2007~2009년 노숙인 보호소를 찾는 인구는 159만명에서 156만명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보호소를 찾는 가족 단위의 노숙인은 2007년 13만100명에서 2009년 17만명으로 30%나 증가했다….” 2007년 이후 거리로 내몰린 가족이 늘어났다는 거다. 2007년 10월 터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는 이렇게 미국의 가계를 흔들고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단초는 직전해 터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였다. 우리가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에 주목하는 건 한국의 현 상황과 비슷한 점이 많아서다. 시계추를 2000년대로 돌려보자.

2000년대 그렇게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졌다. IT버블이 붕괴한 것이다. 2001년 9ㆍ11 테러, 2002년 에너지 엔론을 포함한 기업의 분식회계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미국경제엔 ‘먹구름’이 몰려왔다. 미래경기가 불투명해지자 기업은 설비투자를 줄였고, 이는 고용감소, 투자심리위축으로 이어졌다. 이때 미국경제의 ‘구세주’로 등장한 이가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다. 그린스펀은 2000년 말 6.5%였던 기준금리를 2003년 6월 1%까지 인하했다.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경기를 되살리겠다는 구상이었다. 전략은 통했다. 금리가 내려가자 너나 할 것 없이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대출금리가 워낙 낮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풀린 돈은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갔다. IT버블 붕괴의 영향으로 부동산 시장이 투자의 대안으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기업의 설비투자를 기대할 수 없었던 금융회사는 주택대출의 확대를 부추겼다. 그 결과,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했고, 시장 안팎엔 집값이 계속 오를 거라는 전망이 형성됐다. ‘부동산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기대감은 신용도와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도 주택 자금을 빌려주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확대를 이끌었다. 서브프라임(sub-prime)은 말 그대로 프라임 대출보다 하위의 대출을 말하는 것이다. 당연히 신용도가 낮은 저신용 계층이 많이 이용하고, 담보가치에 비해 대출액이 크다.

그럼에도 모기지 회사는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근거로 위험한 대출을 늘려나갔다. 하지만 미국 금융회사의 탐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서브프라임 대출을 통해 구입한 주택의 ‘저당권’을 활용해 또 다른 금융상품을 만들었다. ‘주택저당증권(MBS)’이다. 쉽게 말해 집의 저당권을 다시 판매하는 것이다. 일종의 자산유동화증권(ABS)으로 미래에 받을 채권을 미리 현금화하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모기지론을 대출해 준 은행이나 모기지 업체는 여러 채권을 섞기도 하고, 위험을 회피하는 조건이나 구조를 만들어 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MBS는 여러 금융회사에 분산돼 팔렸다.
 
대출을 해준 금융회사는 현금이 빨리 들어와서 좋고 MBS를 산 금융회사는 담보가 확실한 증권을 사서 이익을 낼 수 있어 좋았다. 문제는 MBS를 매입한 금융회사가 회사채 등 다른 채권과 이를 섞어 부채담보부증권(CDO)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이 단계에 이르면서 CDO에 들어있는 각종 채권의 출처와 리스크를 파악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MBS와 CDO의 경로가 헛갈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리스크를 주목하는 이는 드물었다. 부동산 시장이 무너질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달콤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경기과열을 우려한 미국 정부가 2006년 6월 기준금리를 5.25%까지 끌어올리면서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기준금리가 인상되자 덩달아 모기지 대출금리가 올랐고, 대출자의 상환능력에 문제가 발생했다. 게다가 높은 금리의 영향으로 수요가 줄자 주택가격이 하락세를 띠었다. 높아진 금리 탓에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대출자가 속출하면서 주택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고, 주택가격은 더 떨어졌다. 급기야 대출금보다 주택가격이 싼 ‘깡통주택’이 속출하면서 수많은 대출자가 집을 잃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런 서브프라임 부실사태는 MBSㆍCDO 등 파생금융상품의 위기를 불렀고, 수많은 금융회사에 ‘빨간불’이 켜졌다. 어디서 부실구멍이 발생했는지, 또 어디까지 부실리스크가 번졌는지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서브프라임 부실사태는 투자은행을 파산으로 몰아세웠고, 금융업은 ‘마비지경’에 빠졌다. 바로 이게 2007년 미 서브프라임 사태의 대략적 내용이다.

이처럼 초저금리의 덫은 무섭다.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저금리는 빚을 부르고, 그 빚은 부실이라는 ‘위험한 인자’를 시장에 뿌린다. 박근혜 정부가 ‘부채주도성장’ 정책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지난 12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2.00%던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한국경제 사상 첫 1%대 기준금리다. 정부가 저금리 정책을 통해 노리는 효과는 분명하다. 시장에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거다. 여기서 시장의 중심은 ‘부동산’이다.

서브프라임 사태 주목해야 하는 이유

정부는 지난해 8월 지역별ㆍ금융권별로 다르게 적용되던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각각 70%, 60%로 상향조정했다.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면 소비여력이 늘어날 거라는 계산에서였다. 지난해 8월과 10월 두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러나 내수소비와 주택거래는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 아파트 거래량은 6월 이후 조금씩 증가하며 10월 1만905건의 거래량을 기록했다. 하지만 11월엔 6788건으로 전월비 37.8% 하락세를 기록했다. 정책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은 셈이다.
▲ 빚을 내 주택마련에 나섰던 서민층의 붕괴는 주택가격 폭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강세진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 이사는 “정부의 잇단 부동산 활성화 정책에도 주택거래량이 크게 증가하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주택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라며 “주택가격이 크게 오를 거라는 기대가 없는데 정부의 바람처럼 부동산 시장이 확 살아나겠는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의 증가 속도는 무척 빠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월과 2월의 주택담보대출 금액은 각각 2조5000억원, 4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2월 주택담보대출 금액은 지난해 8000억원 대비 5배 이상 증가한 금액이다. 정부의 정책이 가계부채만 늘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지는 이유다. 게다가 치솟는 전셋값에 떠밀린 서민이 ‘낮은 대출금리’를 발판으로 내집 마련에 나서고 있어,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를 우려하는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에 쏠리는 돈, 리스크 없나

물론 2007년 미국과 2015년 한국을 단순하게 비교하는 건 어렵다. 무엇보다 2015년 한국엔 2007년 미국처럼 복잡한 ‘파생상품’이 없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다행히 우리나라의 주택저당증권의 구조는 미국처럼 복잡하지 않다”며 “서브프라임 사태와 같이 주택저당증권으로 인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대출이 부실화돼 부동산 매물이 증가하고 금융사의 여신회수가 본격화된다면 충격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 이 문제는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한국금융연구소는 2011년 발표한 ‘가계부채의 증가원인 분석’ 보고서에서 “저금리 기조로 가계부문의 총부채 규모가 급증하고 있는 건 미국의 금융위기와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또한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와 확산으로 부동산 가격 변동이 금융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부동산 시장의 취약성이 전체 금융권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고 밝혔다. 초저금리를 이용한 부동산 경기 활성화 정책이 가계부채 증가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호균 명지대(경영정보학과) 교수는 “전월세난에 허덕이던 가계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내집 마련에 나서고 있다”며 “기준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대출금리가 상승하면 원리금 상환의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집 마련에 나섰던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붕괴되면 주택가격 폭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해결하기 힘든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가계부채가 ‘리스크’가 되지 않으려면 일정 기간 ‘초저금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시장에 돈이 풀려 거품이 생기면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 더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시기도 가까워지고 있다. 미 연준은 18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발표한 성명서에서 ‘통화정책 정상화(기준금리 인상) 착수에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부분을 삭제했다. 이에 따라 시장은 이르면 6월 연준이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국내에 투자된 글로벌 유동성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 우리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며 “총부채 수준이 높은 상태에서 금리가 오르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경제를 살리려는 정책에는 반드시 후유증이 발생한다”며 “경기가 살아나도 거품이 생기고 이는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가계부채 리스크 해소방안 마련해야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는 “국내 경제 여건상 금리인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제는 쉽게 금리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회복과 실질소득 인상 등으로 부채총량이 증가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며 “빚을 갚으면서도 소비가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내수소비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금리로 인한 가계부채의 증가세를 어떡해서든 통제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호균 교수는 “미국의 경우 주택담보대출 상환부담으로 가계가 파산하면 구입한 집만 포기하면 된다”며 “하지만 우리는 남은 빚을 끝까지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현상이 발생하면 내수소비 감소가 아닌 내수소비 붕괴를 겪을 수 있다”며 “이는 국가경제 파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저금리의 덫, 한번 빠지면 무섭다. 국가경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 혹자는 ‘우리나라는 괜찮다’고 말한다. 그런 ‘낙관론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부동산 때문에 리먼이 무너질지 알았습니까?” 저금리는 빚을 부르고, 그 빚은 파탄을 초래한다. 우리는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를 통해 이를 배웠다. ‘반면교사’, 현 정부에 필요한 사자성어다. 가계부채를 이기지 못해 파산하는 사례가 등장할 경우 가계는 물론 국가도 끝을 알 수 없는 경기 침체에 빠질 수 있어서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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